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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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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mduck    
담덕 (damduck)
42-01차 하계수련법회 참가 수련생들의 공간입니다.
그때의 감동과 기억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신지요?
그때가 그리우면 그리운대로,
누군가 보고 싶으면 보고 싶은대로,
편하게 들렀다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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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덕
흉내내기(新무진기행) … 온전한 나에게로의 요란스런 여행④

꿈이 현실이 되다.(셋째날)

 

백팔 배

 기분 좋은 눈꺼풀의 나른함이 무심한 형광등 불빛에 허무하게 깨어지고 말았다. 당황스럽고 허망했지만 어찌 해볼 도리는 없었다.

 새벽 세시.

 형광등은 일초에도 수십 번을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며 나를 채근했다.

 ‘일어나. 일어나.’

 그 아래서 나는 전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먼 옛날의 기억을 익숙하게 되살렸다.

 ‘미쳤구나. 내가 내 돈을 내고 기어코 군대를 오고 말았어.

 실소가 터져 나왔다

 

 오랫동안 해왔던 것처럼 절하는 내 자신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의 경험이라도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 같았다. 처음의 막연한 두려움은 이제 용기가 되었고, 미숙한 부끄러움은 자연스런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두 번째 백팔 배를 하였다.

 

새벽 예불

 익숙함이 몸으로 느껴졌다. 내 자신이 오래된 수행자가 되었다. 그리 상상을 하였다. 어둠에 묻혀 있던 돌계단이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익숙한 듯 걸음을 옮기었다. 수 백, 수 천 번을 내 디뎠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걸었다. 계단은 내 발걸음에 안성맞춤으로 놓여져 있었다.

 세상은 어두웠지만 내 마음은 이제 더 이상 어둡지 않았다. 새벽하늘의 정기와 새벽별의 총기가 내 가슴에 들어왔다.

 

좌선

 ‘이 뭣고. 이 뭣고

 무한 반복이었다. 끝이라 생각하면 또 새로움이었다. 미처 도망치지 못하고 남겨진 졸음이 나를 괴롭혔다고단함이 나를 또 깨우치게 했다.

 ‘그래서 자성불이구나.’

 내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살면서 힘들었던 변곡점에서 나를 도와준 사람들을 생각했다.

 대학에 갈 수 있게 도와 준 작은 형이 생각났다. 군대 생활을 할 때 힘이 되어준 건축학개론친구가 생각났다. 큰 아들을 키워준 클래식친구가 생각났다. 자취 생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게 해준 쬐만한대학 친구가 생각났다. 내 소심함을 용기로 바꿔 주기 위해 애쓰던 건달선배가 생각났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졌다.

 어느 순간 고개가 숙여졌음이 느껴졌다. 허리가 구부정해졌음이 느껴졌다. 호흡도 정리되지 않았다.

 ‘이런, 이런.’

 다시 단전에 호흡을 모으고 긴 숨을 내 뱉었다. 한참을 쓰잘데기 없는 생각들을 함께 내 뱉으려 애를 썼다.

 어둠이 걷히고 있었다. 신선한 새벽공기가 내 이마를 닦아주었다. 의욕만 앞선 내 열정을 잠시 식혀주었다. 조급함에 헐떡이는 내 심장을 다독거려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아침 공양

 고기를 먹지 않아도 체력이 유지됨이 신기했다. 본래 마음 먹기 문제였는지 아니면 실제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만큼이 이 정도였는지 모르겠으나 식탐이 많던 내가 이제는 많이 먹고 싶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적당히 먹고 싶게 되었다.

 ‘내가 변했을까? 아님 나를 찾아 가고 있는 것일까?’

 오랜만에 기분 좋은 고민이었다.

  

자유 시간

 세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를 방치와 방만과 방종으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나도 적당히 따라 하였다. 그것이 세상 사는 요령이었고, 세상 사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여기서의 자유는 그러한 자유가 아니었다. 온전한 자유였다. 수련을 위한 스스로의 자유였다. 수련을 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준비했다. 몸을 준비하기 위해 방 청소를 했고, 세탁을 했다.  마음을 준비하기 위해 샤워를 했고, 옷을 갈아 입었다.

 면도기를 일부러 가져오지 않았었다. 버리러 온 나의 여행이 그저 모든 것을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왠지 거울에 비치는 수염이 지저분하고 거슬려 보였다.

 ‘…’

 한참 동안 거울을 노려 보았다.

 

강의(계율)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갖는 것이었다. 수행은. 나 자신을 찾는 것은. 그리하여 온전히 세상을 사는 것이었고, 온전히 나를 위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진정한 자유가 방종을, 방만을, 방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듯 온전한 나도 방탕한 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었다.

 ‘오계’라 하였다. 지금껏 내 삶에 이렇듯 기준선을 정해 놓았던 적이 없었다. 그저 항상 적당히 타협하며 적당히 넘어서며 적당히 즐겨왔다. 그런 나를 사람들은 넉살이 좋다고도 했고 임기응변이 뛰어나다고도 했다. 하지만 뒤에 남는 것은 없었다.

 ‘나만의 오계를 만들어보자.’

 머릿속이 빠르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좌선

 어머니가 보였다. 아버지가 보였다.

 ‘왜 그렇게들 사셨어요?’

 조용히 물어보았다. 하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나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내게도 부모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한심한 놈.’

 갑자기 호흡을 놓쳐 버렸다. 숨이 헐떡거렸다. 자세를 풀고, 긴 한숨을 내쉬어 보았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였다. 새삼 계곡의 물소리가 격하게 나를 꾸짖는 것 같았다.

 

포행

 사찰을 돌았다. 뜨거운 태양이 나의 안일함을 다시 깨뜨렸다. 뭔가를 생각한 듯 하였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많은 걸음을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다시 제자리인 것 같았다. 아니 난 계속 제 자리에 서 있었을지도 몰랐다. 제자리 걸음을 하며.

 ‘난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뭉게구름이 갖가지 모양을 만들며 여유롭게 하늘을 노닐고 있었다.

 

자유 시간

 얼마나 이 자리에 앉아 유유자적하고 싶었던가. 스님네들이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항상 궁금해했었다. 이 곳에 앉아 세상을 보면 어떻게 보일까 궁금해했었다.

 난 아무도 없는 대웅전에 앉아 있었다. 절터는 생각보다 좁았다. 다닥다닥 붙어 세워져 있는 법당들에게서 여유를 찾을 수는 없었다. 답답한 건물들 속에 답답한 나를 또 앉혀놓았다. 그리고 난 또 답답한 생각을 하였다.

 ‘어떻게 살 것인가?

 책만 보고 살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공부만 하며 살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오로지 이 스님네들과 수행만 하며 인생을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이렇게만 산다면 내 인생 후회가 없을 듯 텐데. 죽으면서 만면에 웃음을 띠며 죽을 수 있을 텐데.’

 짙푸른 녹음이 한 가득 시야에 채워졌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한 줌의 햇볕이라도 더 받으려 고개를 내미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그 억척스러움이 그 고단함이 일제히 내게 달려들었다.

 ‘한가한 소리 하지 말아라’

 나의 여유로움을 나무랐다. 난 미소를 지어주었다.

 

저녁 예불

 일상이 단조로워졌다. 반복은 금새 나태함을 가져왔다. 당연한 것은 이제 더 이상 신비로움을 주지 않았다. 감동이 사라진 자리를 당연함이 대신했다.

 시간은 내게 똑같은 의미를 주지 않았다. 시간은 나를 변질시켰다. 시간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변질시켰다. 금새 나와 내 주변의 것은 다시 없었던 것이 되어 사라졌다.

 ‘다 어디로 갔을까?’

 

좌선

 ‘이 뭣고. 이 뭣고

 주변의 어수선한 동작들이 느껴졌다. 힘들어 하는 수련생들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마주 앉은 여자를 보았다. 나이에 비해 대단한 정신력이었다. 강의나 좌선시간에 절대로 허튼 짓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수행의 반려자였다.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고맙읍니다. 님이 원하시는 모든 것 이루시고 돌아가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마음으로 합장하고, 진심으로 반 배를 하였다.

 

취침

 요령이 여유를 가져왔다. 몸은 금새 적응하여 간사하게도 절박함을 버리고 있었다. 처음의 간절함은 이제 그저 당연한 현실이 되었다

담덕 | 2012.08.29 02:55:59 | 조회수(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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