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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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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mduck    
담덕 (damduck)
42-01차 하계수련법회 참가 수련생들의 공간입니다.
그때의 감동과 기억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신지요?
그때가 그리우면 그리운대로,
누군가 보고 싶으면 보고 싶은대로,
편하게 들렀다 가시기 바랍니다.
일반게시판
 담덕
흉내내기(新무진기행) … 온전한 나에게로의 요란스런 여행⑤

모든 것이 아쉬워지다(넷째날)

 

백팔 배

 한 단계 올라간 자신은 그 이전의 자신을 제대로 가늠할 수 없다. 가난한 자가 부자가 되어서 가난한 시절을 회상함은 자신의 편의에 의해 편집된 회상이지 그 가난의 정도를 온몸으로 체득하던 그 가난은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과거에 무얼 많이 하여보았다 하는 것은 그저 현재의 자신을 부각시키기 위한 자랑거리 그 이상은 아닐 것이다

 내일이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제 익숙해졌던 일상은 금새 아쉬움으로 변해갔다. 마지막 백팔 배는 그렇게 다시 간절해졌다. 언젠가를 기약한다는 것은 부질없었다. 절을 통해 감사해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마음껏 감사해 하고 싶었다. 한 번, 한 번의 절마다 진지함을 담으려 애썼다. 그러자 어색함이 정성이 되고, 지성이 되는 것 같았다.

 

새벽 예불

 그들의 일상이 이제 내게는 아련한 추억이 될 것이었다. 사물의 소리는 이제 내 기억 속에서만 울릴 일이었다. 아쉬운 미련이 온 몸으로 더 느끼고 기억하려 애쓰게 했다. 그들의 수행정진의 수고로움을 기억 속에서나마 함께 하고 싶어했다.

 이들과 같이 있고 싶다. 한때의 객기라 하더라도.’

허튼 생각을 하여 보았다. 그러나 그러기엔 세상의 내가 세상에 남길 고통이 너무 큼을 깨달았다. 아니 내가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난 그것을 감내할 수 없음을 이미 경험한 바 있었다.

 왜 결혼했을까?’

 가족이 중요시되는 이념과 사상은 개인과 사회의 정상적 발전을 저해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좌선

 며칠간의 수행 때문인지 이제 아쉬움이 미련스레 조바심으로 변하지는 않았다. 한결 내 마음이 차분해졌음을 느꼈다. 항상 나는 고민하고 살았었다.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지.’

 그 고민을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이 뭣고.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뭣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섞어서 되뇌어 보았다.

 ‘부처가 된다는 것은 참다운 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닐까? 진정한 참 사람이 되는 것이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닐까?’

 길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난 헛되게 살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호흡을 길게 내뱉었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침 공양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 이제는 특별한 의미를 다시 가지게 되었다. 처음엔 처음이라는 이유로, 이제는 마지막이라는 이유로.

 언제 다시 절간에서 아침공양을 해 볼 것인가, 이 평온하고 경건하고 엄숙한 식사를. 세상 속에서 이 공양을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워할지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얼마 못 가 먹고 살기 위해서라며 아귀처럼 허겁지겁 주린 배를 채워가겠지?’

 눈 앞에 며칠 뒤의 모습이 선하게 보이는 듯 했다. 순간 이 고요가 더욱 안타까워졌다.

 

자유 시간.

 빗자루 질을 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행자의 기본적인 일거리가 빗자루질이었다.

 ‘내 언제 절간 앞 마당을 쓸어보겠는가.’

 낙엽을 쓸며 내 마음도 쓸어보기로 했다. 마당을 쓰노라니 내 마음을 어루만지듯 마음이 편해졌다.

 ‘마당을 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쓰는 것이었구나. 누구의 칭찬을 들을 필요도 없고 누구에게 자랑할 이유도 없지만 내 마음이 행복해져 내가 좋으니 그것으로 이미 그만이구나.’

 가족들에게 많은 것들을 힘들게 하는데 왜 내게 고맙다고 하지 않는지 억울해 했었다.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하는데 왜 내게 잘한다고 하지 않는지 억울해 했었다. 억울함에 혹시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안고 살았었다.

 한참을 빗자루질을 하였다. 빗자루질은 이제 부드러워졌고, 속도도 훨씬 빨라졌다. 그렇지만 힘은 더 들지 않았다. 땀도 더 나지 않았다. 황토 흙 위로 깔끔히 생겨나는 빗질 자국이 예뻐 보였다. 점점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웃음이 실실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거구나.’

 억울함이 사라지고, 답답함이 풀어지고 있었다. 빗자루질은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사찰 답사

 송광사 방문이 지금은 처음이지만 또한 이번으로 마지막일 수 있었다. 때문에 박물관장 스님의 설명에 더 집중하였다. 절의 역사를 들으며 고문 번역에 대한 열정이 다시 살아났다. 한번의 시행착오로 인생을 끝내기에는 너무 무모하다 생각했었다.

그런 후회를 더 나이 먹기 전에 하기 싫어 이곳에 왔다. 그리고 다시금 그 생각을 확신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

 

 내친김에 불일암까지 방문하였다. 며칠 전에 급히 방문하였을 때 보다는 훨씬 자세히 살펴 보고, 차분히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후박나무를 보고, 텃밭을 보고, 기워 신은 고무신을 보았다. 그리고 시간이 멈춘듯한 고요를 보았다. 존재하는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듯 한 적막을 보았다.

 내가 아는 모든 곳은 시간이 항상 흘렀지만 이곳만은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내가 아는 어떤 곳보다 소중한 것들이 많이 있었지만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시간이 멈춘 곳. 아무것도 없는 곳. 그곳이 불임암이었다.

 

점심 공양

 시간을 붙잡을 수 없는 안타까움이 서서히 불안감으로 변해갔다. 기어이 흘러가고야 마는 시간의 무심함은 누구의 의지로도 영원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들 익숙해진 자세로 발우공양을 했다.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이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점심공양이 될 것이다. 묵언 속에 수련생들의 진지함은 오히려 첫날보다 더 진지했다. 다들 떠날 때를 준비하는 듯 했다.

 ‘이들은 누구인가?’

 또 궁금해졌다.

 

자유 시간

 철야정진이 있다고 했다. 백팔 배와는 차원이 다른 그 열 배인 천팔십 배였다. 체력은 항상 자신해서는 안되었다. 군대생활에서 배운 경험이었다. 또한 절대 자신을 자신해서는 안되었다. 또 조심하고 염려해야 했다. 가벼운 샤워로 긴장감을 떨치고, 오수를 즐겼다.

 

강의(수심)

 대학 신입생 시절 철학개론을 교양 과목으로 수강한 적이 있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물질의 속성과 본질에 대한 이야기가 한참 진행되었다. 그러다 종국에는 란 무언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물고 물리는 질문의 연속이었다. 수련생들의 표정은 점점 더 진지해졌다.

 

 기어이 손을 들고야 말았다.

 “스님. 제가 불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우리가 불 난 집에 살고 있는 자식들이라는 말씀을 하시잖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모든 것이 잠시 스쳐 지나가는 나의 것이 아닌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심지어 우리 몸조차도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불 난 집이라는 세상에서 살아야 하고, 그 잠시 스쳐가는 내 것이 아닌 몸뚱이를 나름 찰나라고 하는 평생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데 모든 것을 버리라고만 하시면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우리가 스님들처럼 모두 절간에 와서 나름 초월해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긴장을 했기 때문인지 특유의 재수 없는 잘난 체 때문이었는지 말이 길어졌다.

 “누가 버리라 했습니까?”

 스님의 질문이 되려 날아왔다.

 “…”

 세속이었다면 눈에 힘을 주고 많은 이야기를 하려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름 긴 묵언의 영향 때문인지, 아님 어떤 깨달음이 있었는지, 더 이상 말을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불교는 버리는 것이 아니었나? 모든 것을 버려야 해탈하는 것이 아니었나?그래서 나도 버리러 왔는데?’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세상에서의 그 수많은 복잡 다난한 것들을 정리 하고 털어버리러 왔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번져갔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잠시 후 어리석은 부끄러움이 밀물처럼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그렇지만 머릿속은 소나기가 지나간 여름 하늘처럼 맑아졌다. 그리고 그 동안 나를 괴롭히던 기우들도 깨끗이 사라졌다.

 스님이 말을 계속했다.

 “스쳐간다 해서, 내 것이 아니라 해서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잘 활용해야 합니다.”

 

좌선

 ‘그렇구나. 내 버리기만 하려 했구나. 이 몸뚱이마저 그저 버리려고만 하였구나.’

 어리석은 후회가 좌선 내내 머릿속을 드나들었다.

 ‘내가 소중한 것들을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구나.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너무 평범하게 생각하였구나.’

 내 인생의 수많은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지나갔다. 버려진 소중한 사람들. 버려진 소중한 나의 기억들.

 ‘내가 너무 많이 버렸구나.’

 갑자기 마른 하늘에 이슬비가 내렸다.

 

자유 시간

 나 혼자 온 여행이기에 나 혼자 이곳을 찬찬히 돌아보고 싶었다. 나 혼자 어떤 의미를 부여해 주고 싶은 우쭐함도 생겼을 터이었다. 각 법당들을 차분한 걸음으로 돌아보니 미처 단체 생활을 하며 챙겨 볼 수 없었던 구경거리들이 많았다.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지장전에 들렀다. 항상 쑥스러워 지나쳤던 그곳에 이제는 마음 편히 내 온 몸을 엎드려 제법 익숙해진 동작으로 절을 하였다. 오랜 빚을 갚는 기분이었다.

 ‘…’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엎드려 있었다. 진한 향내가 폐 속 깊숙이 들이켜졌다. 이제 제대로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저녁 예불

 산사의 무더위는 여전했다. 법고를 두드리는 사제의 손놀림은 여전히 빨랐다. 어제와 오늘이 의미가 없었다. 이 순간이 이전부터 영원히 반복되고 있는 듯 하였다. 시간은 영원함을 허락하지 않을 텐데 난 또 어리석게 영원을 생각하고 있었다.

 눈이 파란 사미스님은 그 이질적인 모습에 진지함을 더하니 경건함이 배가되는 것 같았다.

 ‘대체 저 스님은 여기서 무얼 얻고자 하는 것일까?’

 문득 어리석은 생각이 들었다.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한 사람이 이 가치를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해하더라도 자신의 문화권에서 그것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궁금했다.

 ‘이해와 인정은 내 몫이 아닌 것을.’

 또 다시 어리석음에 후회를 하였다.

 ‘근데 저 스님은 어디로 갈까? 여기 생활이 끝나면.’

 또 궁금증이 도졌다. 내 어리석음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차 한 잔을 나누며

 어제 좌선 전에 질문지를 나누어 주었었다. 유나 스님께 하고 싶은 질문에 대해서 적으라고 했었다.

 ‘세상에 살면서 힘이 들고 의지하고 싶을 때 참 스승을 찾습니다. 하지만 그 스승이 끝내는 무언가는 꼭 실망하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여러 번 스승을 찾으려 하였으나 찾지 못하였습니다. 어찌하면 참 스승을 찾을 수 있을까요?’

 내 질문은 대략 이랬었다.

 유나 스님이 질문들에 답하기 전에 먼저 말씀하셨다.

 “제가 받은 여러 질문 중에는 여러분이 몇 일 또는 몇 년 후에 왜 이런 질문을 내가 했을까 하며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런 질문들은 오늘 제가 답변하지 않고 배제하도록 하겠습니다.”

 ‘?’

 내심 어려운 질문을 했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굳이 하지 않아야 할 질문이었다는 생각도 복잡하게 교차하고 있던 차였다.

 ‘! 그런가? 내가 내 질문의 답을 알고 있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불현듯 생각이 번뜻 스치었다.

 ‘내가 또 집착했구나. 이 어리석은 놈아.’

 또 다시 후회가 밀려왔다. 아직도 정제되지 않은 생각은 항상 후회만 남기고 있었다. 스님께 큰 결례를 한 것 같았다. 죄송스런 마음에 내 자신을 한참을 부끄러워했다.

 

천팔십 배

 막연히 우리 사는 세상과는 다른 고차원의 무언가가 있겠지 하며 동경만 하던 절 문화였다. 백팔 배는 내 의지로 충분했다. 비록 땀은 많이 흘렸지만 체력적으로 문제될 것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천팔십 배는 자신할 수 없었다. 천 팔십이라는 숫자는 숫자로도 제대로 세어본 적이 없었다.

 

 과일과 감자를 야식으로 준비해주었다. 세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하루 종일 내심 걱정하고 체력 안배를 위해 충분한 휴식도 취했건만 막상 닥치니 긴장감이 고조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 혼자만이 생 초보라는 생각이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내 의지로 왔기에, 내 자신만을 위하고 싶었기에 난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었다.

 삼백 배씩 세 번 하고, 백팔십 배를 한다고 했다. 중간, 중간 쉬는 시간이 있다고 했다. 아무리 등산을 잘하는 사람도 모르는 산을 처음 올라갈 때는 호흡도 잃고 체력안배도 실패하기 마련인데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 , .”

 긴장감 때문인지 죽비 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했다. 드디어 시작이었다. 아무 경황이 없었다. 일단은 정신 없이 따라 했다. 숫자를 헤아리는 짓은 애당초 관심이 없었다. 그저 죽비 소리에 몸을 맡겼다.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였다. 지금까지의 나를 살게 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고마워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기로 하였다. 참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번 고마워 했다. 그러나 시간은 더디만 흘러갔다. 다른 수련생들은 무표정하게 무심히 절을 계속하고 있었다. 다들 언제 끝날지 애당초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윗옷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뒤편에 남겨진 수박을 여럿이 나누어 먹었다.

 ‘난 할 수 있어. 아주 잘했어. 그렇다고 너무 자신하지는 마. 항상 긴장해.’

 수박을 베어 물며 내 자신에게 위로를 했다. 하지만 주위의 누구도 나만큼 땀을 흘린 이는 없었다.

 

 다시 죽비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내 마음의 고요도 다짐도 다시 시작하여야 했다. 혹시나 절을 하는 요령이 있을까 꾀를 부리고 싶어졌다. 어떤 자세가 조금 힘이 덜 들지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요령이 있을까? 요령이 있겠지?’

 몸을 숙이며 바로 손을 바닥에 짚는 것이 나름 편할 듯 하였다. 도중에 몇 번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헛일이었다. 힘이 더 들었다. 바른 자세만이 몸이 제일 편해 했다.

 앞으로의 내 각오를 다지기로 하였다.

 ‘내 이제 내일 세상에 나가면 다시 힘을 내 열심히 살겠다.’

 ‘내 마음을 겸손하게 다잡겠다.’

 ‘공치사를 바라지 않고 오로지 내 행동에 만족하겠다.’

 ‘내 하고 싶은 것은 최선을 다해 해보겠다.’

 ‘억지로 가지지 않으며 억지로 버리지도 않겠다.’

 그렇게 많은 다짐을 계속 반복하였다. 그 반복은 또 계속 반복되었다.

 

 이제는 바지가랑이에서 땀이 흘렀다. 내 방석은 그 두터움에도 뒤편까지 흠뻑 젖어 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이 법당에서 이리 땀을 흘리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유난스러움의 극성을 떨고 있는 것이었다.

 

 어제 점심공양이었던가? 메밀국수를 더 먹고 싶어하던 여자가 있었다. 묵언 중이라 더 먹고 싶어도 말을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당번을 온갖 손짓으로 불러 그녀에게 보내 주었었다. 그녀는 감사의 합장과 더불어 아름다운 미소까지도 함께 선물로 주었었다. 그 미소가 내 마음에 들어와 기쁨이 되었고, 참으로 오랜만의 설렘이 되었다.

 그녀가 많이 힘들어 하고 있었다. 자리에 엎드려 쉬고 있었다. 그녀에게 수박 한 조각을 가져다 주었다.

 ‘힘 내십시요.’

 마음속으로 미소와 함께 말해주었다. 행여 마음을 흘릴까 싶어 얼른 고개를 돌렸다.

 

 “, 다시 시작하겠읍니다.”

 일순 법당 안이 술렁거렸다. 그러나 죽비 소리가 단번에 그 동요를 진정시켰다.

 “, , .”

 더 이상 다짐할 것도 쉬이 생각나지 않았다. 내 인생의 매듭이 되었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랐다.

 부모님을 떠올렸다.

 ‘좋은 곳에 잘 계십시요. 잘 계세요.’

 

건축학개론을 보라던 대학 친구가 떠올렸다. 윤복희여러분이란 노래를 잘했던 친구였다. 한때 연인이 되고자 하였으나 그 시절의 어리숙함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었다. 대학 졸업 후 십 년이 넘어 최근에서야 연락이 된 그녀는 가족의 건강이 많이 안 좋아 고생을 한다고 했다. 이곳에 온다고 말했을 때 그녀의 목소리에는 부러움이 너무 진하게 묻어났었다.

 ‘친구야.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 미안해.’  

 

 형을 떠 올렸다. 그리고 누나를 떠 올렸다. 내 가족도 떠 올렸다. 늦둥이 아들이 해맑게 웃어주었다.

 ‘사람 되어서 와.’

 아내가 농담을 하였다.

 많은 사람들을 떠 올리고 부탁하였다.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정신력으로 준비하여야 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싸움이었다. 집단으로 움직일 때는 주위의 사람들과 필사적으로 보조를 맞춰야 했다.

 바로 옆은 성실하게 일정을 잘 소화하던 여자였다. 그녀 덕분에 나도 온전히 수련에 잘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도 진작부터 지쳐가고 있는 기색이었다.

 

 버스에서도 법회에서도 연신 재잘거리던 여자가 대각선 방향으로 눈에 띄었다. 여기에 올 이유가 없을 듯한 그녀였다. 법당 안의 수련생 중 유독 그녀만 땀 한 방울 옷에 배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절을 빼먹는 것도 아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저 여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내 자리는 이미 땀으로 흥건하여 흡사 누가 물을 부어 놓은 듯 하였다.

 ‘땀 한 방울 안 흘리다니.’

 민망하였다. 신경 쓰지 말자 하였다. 하지만 그 여자로 인해 나의 수고로움이 가치를 잃고 있었다. 나는 힘들어할 수 없었다.

 시계를 보았다. 걸리는 시간이 대충 비슷할 터이니 시간을 보면 어느 정도 남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음의 반복일 뿐이었다.

 ‘멍청한 놈. 멍청한 놈.’

 내 의지는 시간을 초월해야 했다. 난 다시 시간을 잊으려 애썼다. 무릎은 천팔십의 반복에 한계를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땀 한 방울 안 나는 여자로 인해 생겨났던 부끄러움도 민망함도 사라졌다. 그럴 여유가 이제 없었다. 그저 힘들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몸의 감각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나도 내 몸이 걸레처럼 느껴지게 될까?’

 후에 들은 얘기지만 이때 삼백 배는 이십 배 정도 더 하였다고 했다.

 

 내친김에 끝내야 했다. 이제 큰 고비는 넘긴 것이었다. 마지막을 즐길 일만 남았다.

 절을 할 때 끓어 앉으면서 발을 포개었다. 양말이 젖은 상태에서 오른 발등을 왼 발등 밑으로 포개는 동작을 계속하다 보니 엄지와 중지발가락 윗부분 껍질이 벗겨졌다. 그러나 그 쓰라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몸의 고통을 초월하는 건가?’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마지막이라는 것과 삼백보다 작은 백팔십이라는 숫자가 내게 평안을 주었다. 정신이 맑아지고, 몸이 가뿐해지기 시작했다.

 ‘누가 이런 경험을 해 보았겠는가?’

 내인생의 새로운 무용담이 쓰여지는 순간이었다. 난 이 무용담을 죽을 때까지 써 먹을 것이었다

 

 , , .”

 드디어 죽비 소리가 나를 반갑게 날아와 축하해주었다. 해냈다는 기쁨이 고통을 잊게 했다. 아니 고통 따윈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음이 뿌듯해지며 참으로 오랜만의 행복을 느꼈다. 그렇게 나의 유난스런 천팔십 배는 끝이 났다.

 

 밖으로 나오니 무척이나 오래 기다린 한밤의 선선한 공기가 왈칵 내 몸을 감싸 안았다.

 ‘대견하다. 대견하다.’

내 등을 두드리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담덕 | 2012.08.29 03:08:53 | 조회수(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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