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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 철안스님에 대한 진실을 밝힙니다

설산 철안스님에 대한 진실을 밝힙니다

 

귀의삼보 하옵고.

 

조계종 25교구본사 봉선사 전 교구장 설산 철안스님께서 종립선원 봉암사에서 동안거 결재 중일 때 스님에대하여 공권정지 6개월이라는 징계와 관련된 일련의 봉선사 사태에 대하여 월운 큰스님과 철안스님을 아끼는 도반스님들과 수좌스님들 그리고 철안스님을 아끼고 사랑했던 많은 사부대중께 있는 그대로를 밝히고 언론을 통해 접하고아쉬움을 금치못했던 부분들에 대하여 그동안 곁에서 철안스님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부대중의 모임인 '보현회'에서 진실을 전하고 사부대중께 이해와 불교계에서 앞으로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자 한자 썼음을 밝힙니다.

 

산이 좋아 설산(雪山)이란 호를 받으신 스님!

우리들이 아는 철안스님께서는 어려서 출가하여 현 봉선사 조실이신 월운 큰스님을 은사로, 故운허 큰스님의 손상좌로 사랑을 받았고, 많은 주변 분들께 자비를 베풀고 있으며 山만을 좋아하는 선방 수좌스님이십니다. 그래서 조실스님께서는‘雪山’이란 호를 지어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2003년 봄 봉선사가 지나친 문도 내분으로 인하여 약 7~8개월간 주지가 공석일 당시 봉암사 선방에서 올라오신 철안스님께서 문도들의 논의 끝에 만장일치로 추대되어 교구장이 되셨습니다.

당시 양평 용문사 주지를 마치신 준원스님께서는“운허스님 도량이 이래선 안된다”고 하시며 문도 화합과 교구 발전을 발원하시며 철안스님과 뜻을 같이 하여 천일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어려운 이웃과 주변을 먼저 생각하는 스님이기에 가능했던 일들 입니다.

2003년 10월 철안스님께서는 80여개의 말사를 거느린 교구본사 교구장에 취임하면서 내분으로 인하여 실망과 비탄 속에 흩어진 신도들과 소원해진 관공서 및 지역 등을 방문하며 아우르느라 동분서주하셨고, 주지진산식에는 한번 쓰고 버리는 화환 등은 허례허식에 불과하다는 스님의 소신으로 화환대신 20Kg의 쌀 750가마와 김장 280독을 보시 받아 남양주・구리시・양주시・의정부시 등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조금이나마 따뜻한 겨울을 지낼 수 있게 하였고, 교구장 재직시 매년 가을이면 쌀과 직접 담근 김장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이후 타 본사 및 말사 주지진산식과 일반결혼식 때에도 화환 대신 쌀을 모아 어려운 이웃에게 베푸는 것으로 이어지는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본사주지 임기 4년 동안 1명의 상좌(혜운 스님)만을 두었고, 많은 출가자들을 문도 스님들에게 소개하여 상좌를 삼게 하는 미덕을 보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실스님과 회주스님, 선배스님들을 공경하며 정기법회때에는 각 계파 수장들의 법문을 돌아가며 청하는 등 문도화합에 온힘을 기울이셨습니다.

 

교구본사 봉선사의 사격을 크게 올려놓으신 스님!

취임 당시 봉선사 큰법당 지붕에는 잡풀이 무성했으며, 각종법회와 기도를 하는 설법전과 삼성각・조사전・개건당・화장실 등의 지붕에는 비가 새고 있었습니다. 또한 불사가 중단된 봉향각은 여름내내 비를 맞아 검게 그을려 있었으며, 우물(水閣)과 장독대도 관리가 되지않아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였으며, 도량 여기저기에 버려진 차량이 있던 상태였던 것을 스님의 임기동안 봉선사 사격에 걸맞는 도량불사에 힘써‘운하당’복원,‘운허스님유물관(서암)’창건,‘봉향각’신축,‘일주문’조성,‘설법전’기와보수 및 서암・방적당・설법전에 부처님조성 등,‘연꽃유치원’리모델링,‘종무소’실내인테리어공사, 소방서・대형취수장 설치,『봉선본말사 성보문화재』도록발간,‘10대강백 초청대법회’등 실로 많은 불사를 하셨고, 해외에 계시거나 몸이 불편하여 절을 찾을 수 없는 불자들을 위해 사이버 법당인‘나만의 법당’을 개발하여 널리 보급하기도 하였습니다.

 

선조들이 물려주신 소중한 문화재를 찾는데 큰 힘을 보태셨습니다.

본사 주지취임과 함께 시작한 『봉선본말사 성보문화재』편집과 관련하여 본・말사 성보문화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성보문화재가 여러가지 이유로 방치・훼손・유실되었던 것을 바로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철안스님에 의해 가능하였고, 잃어버린 문화재 환수작업도 이때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특히‘현등사 삼층석탑 진신사리와 사리구의 반환과 일본이 약탈한 유네스코지정 기록문화유산인 국보「조선왕조실록」‘오대산사고본’을 국회의원・중앙신도회・월정사 등과 뜻을 함께하여 일본왕실과 동경대 등을 수차례 오가며 어렵고 힘겹게 되찾아오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또한 양주 회암사지 발굴권과 함께 유물 23만점도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봉선사에서 벌여온‘문화재제자리찾기’사업은 사회에도 큰 영향을 주어 MBC의‘문화재제자리찾기’라는 프로그램이 신설되는 등 우리나라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일익을 담당했으며, 지금도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일본 왕실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반환과 '회암사문화재제자리찾기'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잃어버릴 위기에 있던 말사‘내원암’은 수차례의 촛불집회와 헌법재판소의‘위헌신청재청’을 통해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 결과‘내원암’과 토지 5만 7천여 평을 지킬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봉선교구에‘망실재산위원회’를 설치하여 약 37필지의 토지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본사 형편상 운전기사 없이 손수 운전대를 잡으셨던 교구장스님!

주위 분들과 신도님들이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철안스님께서는 봉선교구장 4년의 소임을 보시면서 본사형편상 단 한번도 운전기사를 쓰지 않으셨습니다. 공식적인 자리에 참석하실 때에는 그나마 할부로 마련한 승용차(SM5)를 직접 운전하였고, 사적인 일을 보실 때에는 교구장 취임 전부터 타고 다니시던 4륜구동 트럭을 이용하셨으며 지금도 그 트럭을 이용하고 계십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사중일에 사용하는 판공비를 스님께서 가입한 오래된 보험까지 해약하여 사용하셨다고 하니 참으로 봉선사의 살림살이가 얼마나 열악한지 알 것 같습니다.

 

노후복지기금 출연과 함께 아름답게 회향을 하셨것만...

스님께서는 주지 임기가 끝날 무렵 조실스님과 문도들이 재임을 권유하자 훌륭한 스님네가 많이 계시니 본인은 뜻이 없음을 밝히셨고, 주지 재임시 모아놓은 쌈지돈・법문비・생일축하금・방문금・보시금・해외 출장시 스님들께서 보태주신 달러와 상품권 등 수천만원을 스님의 지인들께서 마련한‘작은음악회 (07년 8월 25일 아프리카 문화원)’를 통하여 조실스님과 문도스님들께 큰절을 올리며“승려들의 불화 중 제일 큰 원인은 노후문제”라며‘봉선교구 수행스님들의 노후 복지기금’으로 전액을 기부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25년의 역사를 가진 봉선사 합창단에 좋은 피아노가 없는 것을 아시고 그랜드피아노 1대를 기증하셨으며, 관내 구리노인복지관에는‘노인건강종합진단기’와 일용품, 쌀 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남들이 할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을 하셨는데도 고발이라니...

교구장 재직시 일어난 사패산 회룡사 문제도 2003년 12월 23일 종정 예하 큰스님의 지시로 관계했던 환경단체가 자진 해산하였으며, 그 후 7~8개월 동안 미해결된 상태로 남아있던 것을 회룡사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본사인 봉선사에 거듭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에 당시 교구장이신 철안스님께서는 12명의 위원을 두고 당시 전문변호사(심학무)와 총무원장이신 故법장 큰스님과 협의를 거쳐 15가지 이행항목과 20억원(회룡사・총무원・환경단체・본사・25교구 환경장학회로 분배)의 수행환경기금을 만드는데 주도적 역할로 과로가 겹쳐 당시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지경까지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일각에서 불교계가 국책사업(천정산 도롱뇽 지눌스님 등)마다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며 1,650억원의 손해 배상을 청구하려는 것을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여 관과 민, 종교계와 회사, 의정부사암연합회(회장 종명스님) 등을 30여 차례가 넘게 뛰어다니시며 의정부사암연합회와 함께 '화합기원제’를 현장에서 여러차례 공동주최하는 등 화합을 이루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된 환경단체와 함께 했던 보성스님(현 봉선사 총무를 보시는 보인스님의 사제) 등이 수시로 찾아와 자신들의 공이 크니 수행환경기금으로 받은 돈을 서로 자기들 것이라며 협박과 공갈을 일삼았고, 금품을 여러차례 갈취해간 것도 모자라 급기야 봉선교구의 중요한 말사를 내어달라고 까지 하였답니다. 주지스님께서 거절하자 도리어 회룡사와 봉선사를 상대로 검찰・경찰에 고발하여 수차례에 걸쳐 경찰서와 검찰에 불려 다니시며 곤란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의 철저한 조사 끝에 결국 무혐의 처리되었고, 당시 故 법장 총무원장 스님께서는 교구의 문제이니 교구 내에서 처리하라는 위임장과 함께 회룡사의 법적 위임, 전문자문변호사의 위임, 환경단체・본사・회룡사 등 12명의 위원들을 모두 인정하셨습니다.

 

철안스님께서는 왜?

현 봉선사 집행부에서는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괴문서・진정고발・성명서・투서 등 12차례에 걸쳐 끊임없이 벌이고 있는데 반하여, 스님께서는 그동안 본사주지 재직시부터 지금까지 종단호법부와 경찰・검찰에 여러 차례 조사를 받으셨고 무혐의 판결을 받았음에도 상대들에게 명예훼손이나 맞고소를 한 번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퇴임 후 철안스님께서는 본사주지 재임시 천일기도 입재식때 준원스님과 신도님들에게 약속한대로 히말라야 제일 높은곳에 위치한 사원(탱보체마나수츄리)에 천일기도 동참신도님들의 축원문을 봉안하였고, 기도를 하는 자리에서도“본사주지가 잘 되어야 문도발전이 있다”하시며 교구장이신 인묵스님 이름으로 3년 기름등을 올리셨답니다.

 

이러한 스님께 공권정지 6개월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철안스님과 후임 본사주지에 당선된 인묵스님과의 인계인수 과정에서 실무자들이 다섯 번을 대조해가며 서로 검증을 거쳤고 매년 행하는 감사를 받았는데도 후에 느닷없이 전 집행부의 업무관련 표적재감을 받아 징계를 올렸다고 합니다. 설령 전 집행부에서 일처리 미숙으로 잘못이 발생하면 책임은 당시 교구장이 지는 것은 마땅하겠습니다만 인계인수를 무리없이 마무리한 후 이제와서 벌이는 일련의 일들은 다분히 정치적 보복이며, 징계를 주기 위한 고의적인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상식적으로 이해 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철안스님께서 지금 봉암사 선원에서 결제 중이신데 종단 관계자와 조실스님과 종단어른들 등 뜻있는 분들의 화해 권고도 물리치고 봉선사 국장스님들이 징계를 바라는 문서에 서명 날인하여 총무원에 보냈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설령 잘못한 일이 있을 지라도 제집식구는 서로 감싸고 선처를 바라는 탄원을 하는 것이 도리일진데 제 얼굴에 침뱃기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까닭에 현 봉선사 집행부에서 이런 일을 자행한 것인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옛 어른들께서도 돌아앉은 장수에게는 칼을 들이 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철안스님께서 본사 재임기간 중 대내외적으로 이루어낸 일들을 돈으로 환산하자면 수천억도 더 될 것입니다.

현 봉선사 집행부에서는 포상상신은 못할망정 4년 전의 몇천만원 영수증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비상식적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징계를 올려 현재 봉암사에서 동안거 수행정진중인 가운데 결국 공권정지 6개월이라는 징계를 받게 하여 스님께서 목숨같이 지켜온 명예를 더럽히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철안스님께서 피와 땀으로 일궈놓은 봉영사!

교구장 퇴임 후 사셨던 봉영사는 故 손해경노스님이 부인과 자식들을 거느리고 49년을 사셨던 곳으로 철안스님께서 10여년전 소임을 맡을시 속가 자식집에 계시던 노스님을 모셔와 천일염불기도 하시게 하시면서 지극정성으로 보살펴드렸습니다. 돌아가신 후에는 장례와 49재를 여법하게 모셨으며, 부인이신 강 보살님까지도 돌아가신 후 봉영사에서 49재를 모셔드렸습니다.

또한 다 쓰러져가던 봉영사법당과 도량은 철안스님께서 직접 중장비를 배워 불사를 손수하다시피 하셨으며, 법당에 쓸 목재를 3년이나 응달에서 정성들여 건조하여 불사하셨을 뿐 아니라, 10명이 넘는 철안스님의 상좌 스님들이 출가한 원찰이며 거주처 입니다. 지금도 어린스님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컨테이너지만 산악성인 엄홍길 법당과 후원회가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은사이신 조실스님의 명예는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철안스님의 은사이신 월운스님께서는 동국역경원의 설립자이신 故운허 큰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1965년 역경위원으로 선임되셨고 1993년부터 동국역경원장직을 맡아 15년간 역경보살로 칭송되며 평생의 사업으로 인재양성과 조계종단의 3대 역점사업 중의 하나인 역경사업에 총력을 기울이셨습니다.

철안스님께서 교구장 재직시 조실스님의 이러한 공로를 알려 2003년 조계종 포교대상, 2005년 대원상과 정부은관문화훈장 서훈, 2006년에는 지훈상(芝薰賞) 등을 수상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철안스님께서 동안거 결재 중인 지난해 12월 동국대로부터 동국역경원장직 일방해임을 통보 받으셨습니다.

역경보살인 조실스님께서는 2010년까지 제2의 역경불사인 전산화불사의 회향을 앞두고 계셨는데 이번 일방해임으로 평생의 숙원사업인 역경사업을 중도에서 하차하게 된 것뿐만이 아니라 종단의 어른스님께 대한 크나큰 결례로 조실스님께 큰 불명예를 안기게 되었습니다.

저희‘보현회’에서도 철안스님과 조실스님의 명예회복과 역경불사의 원만회향을 위해 함께 기도정진 할 것입니다.

 

철안스님에 대한 오해는 반드시 꼭! 풀어져야 합니다.

철안스님께서는 결제중인 봉암사로 상좌스님께서 찾아가 이러한 사태에 대하여 스님께 알려드렸으나 "차라리 당당한 죄인이 될지언정 중의신분으로 비겁한 싸움은 하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상좌스님들을 돌려세우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설산 철안스님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임인 '보현회'에서는 철안스님에 대한 모함과 이번 공권정지라는 판결과 관련하여 오해를 받고 있는 철안스님의 진실을 알려드려 흑백을 가리고 작은 오해라도 풀어드려 그동안 철안스님께서 수좌로서 살아온 목숨과도 같은 명예를 지키고 회복하기 위해 본 글을 쓰게 됨을 헤아려 주시기를 두 손 모아 바랍니다.

‘보현회’에서는 앞으로도 철안스님의 명예를 지키고 스님께서 올바른 수행자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활동을 펼칠 것입니다. 또한 위에 열거한 내용들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며 차후 본 카페 등을 통해 자세한 내용을 밝힐 것입니다.

두서없는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나무석가모니 불 나무석가모니 불 시아본사 나무석가모니불

 

불기 2553년 2월  일

 

설산 철안스님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임 '보현회’합장

http://cafe.daum.net/108bohyun

2009.02.19 23:18:43 | 내 블로그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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