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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1988년 5월25일자 - 초파일 아침 서암스님에게 듣는다

불교신문 1988525일자 - 초파일 아침 서암스님에게 듣는다

 

다시 부처님오신날을 맞는다. 부처님은 2600년 전 이 땅에 오셔서 생명가치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셨다. 그러나 현실은 이같은 가르침을 배반한 채 날이 갈수록 전도된 삶으로 치닫고 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문경 봉암사 조실(祖室)로 있으면서 후학들에게 옳은 길을 일러주시는 서암스님을 찾아뵙고 바른 삶을 위한 법문을 청했다. (대담·정리=양범수 편집부국장)

 

- 스님께서는 구산선문 중에서 하나 남은 희양선문을 지키며 후학들을 지도하고 납자들을 제접하며 우리나라 선맥을 튼튼히 다져주고 계십니다. 우리나라 불교를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우리 당대에 와서 빛을 잃었다고 한다면 지나칠지 모르겠으나 쇠퇴해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생각됩니다.

 

부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면서 옛 조사 스님들의 유촉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근기가 약해서 뜻대로 잘 안 되는군요. 이 노장의 원력은 우리 불교가 새롭게 싹터 좀 제자리를 찾아주었으면 하는 것인데, 불교가 발전해야 국운도 성하는 것이거든. 원력이 부족한 것인지 힘이 없는 것인지 뜻대로 잘 안 돼요. 봉암사 선원을 지키는 것은, 나는 공부를 못했지만 후대 스님들이 신라 고려 때처럼 훌륭한 스님들이 많이 나오도록 원력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특히 오늘날 세태가 물질문명의 급속한 발달로 정신세계가 빈곤해지고 있는데 이것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부처님 사상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입니다. 지금 세계는 지구촌이라 불릴 만큼 가깝게 지내고 있으며 종교 문화 등 한마당에 놓여있습니다. 세계 인류가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사상을 절대 필요로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불교가 바로 서야 합니다. 인류문화 발전을 위해서 불교는 필연적이며 이 노장이 생명이 있는 동안 밑거름이 된다면 여한이 없어요.”

 

- 스님께서 가끔 도회에 나오시면 보고 느끼시는 것이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민주화의 물결 속에 정계는 여당세보다 야당세가 강하게 나타나고 그러한 여세는 국민들의 생활에 크게 변동을 주고 있는 듯합니다. 앞날에 대한 진단을 해주시지요.

 

여당이나 야당이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충정에서 행동한다면 별반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전인수 격으로 몰고 간다면 여·야를 막론하고 파국만을 자초하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 마음들이 있다면 서로가 협조체제를 갖추고 갈등해소에 노력해야 합니다. ·야가 노력한다면 민족발전에 획기적인 기대를 해도 좋을 것입니다. 과거 조선시대 사색당쟁과 같은 역사를 거울삼아 나라를 위한 마음으로 정치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 스님께서 선객으로만 일관해 오시다가 한때 총무원장에 취임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두 달인가 석 달 만인가 원장자리를 훌훌 털어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셨는데. 무슨 이유가 있었습니까?

(()무애의 수행을 해야 하는 것인데 이판과 사판이 다를 게 없습니다. 사실 이판보다 사판이 더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것을 공부한 졸업생이 사회에서 일하듯 사판이 이판보다 수준이 낮은 것으로 보는데 그릇된 것입니다. ()가 사()고 사()가 이()인 불이(不二)의 견지에서 살아가야 결함이 없다고 봅니다.” (스님은 총무원장을 그만 두신 일에 대해서 이사의 구별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으로 답변하고 웃으셨다.)

 

- 스님의 원래 고향은 어디십니까? 그리고 스님이 출가하실 때의 각오와 출가 후 오늘에 이르시기까지 후회 없는 삶이였는지요.

 

후회 많은 삶이었습니다. 전생의 업으로 생각하며 매일 매일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지요. 원래 내 고향은 경상도 풍기인데 선친께서 독립투사였어요. 그 관계로 하루아침에 집안이 파산되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발심하게 되었어요. 그때 중노릇 잘하려면 절에 가서 머슴살이부터 하라고 그러더군. 그래서 금룡사 위에 서악사라는 데로 들어가 인생을 개척하며 금룡사 강원에서 공부하다가 불교만 알아서도 안되겠다고 생각해 일본대학 종교학과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또 종교는 체험에 의해야지 이론이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져 선방으로 다니며 선()공부합네 하며 흉내만 냈지. 이름만 조실이지 부끄러운 생각 간절합니다. 나는 미숙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눈 밝은 불자가 나온다면 불교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고 조석으로 기원하고 있을 뿐입니다.”

 

- 견성오도(見性悟道)는 수행인이 체득해야 할 궁극적 목표입니다. 스님께서 정진해 오시면서 얻으신 것이 무엇인지요. 그리고 들고 계시던 화두는 깨침이 있으신지요.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화두란 팔만사천의 부처님 말씀을 화두에 뭉쳐 놓은 것이지요. 편린과 같으며 모든 말의 근본인 말머리를 일러 말하는 것인데 이 공부는 깨닫고 안 깨닫고 간에 자기가 꿈속에서 꿈을 깨어야 됩니다. 깨달았다 안 깨달았다 말할 순 없지만 남을 돕지 못해도 남을 그릇되게 하진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 스님의 가풍은 어떠합니까?

 

부처님 가풍이야. 허허. 부처님 흉내 못 내서 그렇게 항상 탈선하고 있어요. 그저 백장청규 선가의 규약을 들고 납자들이 공부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어지러운 사회에서 부처님 공부할 수 있도록 조성해보려는 노력뿐입니다. 나 혼자만의 힘보다 많은 스님들이 동참해서 많은 납자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여력을 태우고 있어요.”

 

- 우리 인간은 현실에 머물면서 미래를 지향하며 살고 있습니다. 중생들이 미래의 삶이 풍요롭고 고통을 벗어 던지고 살아갈 수 있는 방편을 일러주십시오.

 

자아각성의 길입니다. 아무리 물질문명이 발달해 필요한 물건이 풍요롭게 있는 환경에서 살지라도 마음의 핵심을 잃어버리면 초초하고 불안해서 못사는 것, 한끼 먹고 앉았더라도 마음이 편해야 바로 행복이지. 자기발견 다시 말해 산다는 의의를 찾아야 단 하루를 살아도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주체를 잃어버리고 객체에 이끌려 다니며 무엇을 얻을 것이며 얻은들 무슨 의미를 느끼겠어요. 물질보다 정신을 개발하고 앞서 말한 자아각성이 따를 때 정진 속에서 진실한 삶을 찾을 것입니다.”

 

- 불교는 혼탁한 사회를 맑고 밝은 사회로 만들 수 있는 묘약들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교단이 건강해야 많은 사람들에게 묘약을 전달할 수 있겠는데 대로는 융화가 깨뜨려져 제 기능을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부처님의 육화(六和)사상으로 뭉쳐야 합니다. 우리 불교는 화합이 근본원리입니다. 이제 우리 승단도 불행했던 그런 시대는 지나갔고 사회가 급변해 가는데 구태의연한 일에만 머물 수 없습니다. 서로가 각성하고 화합해서 이 시대를 위하는 길에 헌신해야지요. 또 불교를 위해서나 사회구조의 화합을 위해서 피아가 따로 있을 수 없고 불교교리는 투쟁이념이 없음을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직 불교인들은 ()’ 자 한자에 모여서 문중과 파벌의식을 버리고 산다면 불교가 흥한다는 것을 각성해야 됩니다. 그렇지 못하면 자멸할 것입니다. 불교가 설 땅을 잃어버린다면 이 나라 국민들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스님께서 평소 생각해 오셨던 중생들에게 귀감이 될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부처님 사상을 실천한다면 살아갈 길이 다 있습니다. 방법이나 교법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며 경··론 삼장 속에서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공연히 바깥에서 법을 구하려 말고 내면에 마련돼 있는 법을 찾아 지혜롭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나라에서 태어날 것입니다. 이 나라에 태어났다는 긍지와 빛나는 전통을 계승 발전시킨다면 전 세계인류를 향해 큰소리 칠 수 있는 기수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국민들도 배달민족의 한 사상으로 뭉쳐 과거의 역경을 역사의식 속에서 귀감삼아 두 번 다시 어떠한 역경도 불러들이지 않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남의 잘못도 내 잘못이라는 동포애로써 일체감을 갖고 비방과 투쟁을 불식하고 서로 손잡고 전진해야지요. 옥에도 티가 있기 마련입니다. 중생들은 결함을 갖고 있기 마련인데 그 결함을 좋은 쪽으로 승화시키는 밑거름 삼는다면 장래는 밝아질 것입니다.

 

서암스님은

서암 홍근(西庵 鴻根,1914~2003)스님은 1914년 경북 영주군 풍기읍에서 태어났다. 1932년 김용사에서 낙순화상을 계사로 사미계를 1935년 금오(金烏)스님을 계사로 보살계와 비구계를 받았다. 1938년 종비장학생으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1941년 귀국해 김용사 선원, 금강산 마하연과 신계사, 묘향산, 백두산 등 전국의 수많은 선원에서 수행열을 불태웠다. 1975년 조계종 제10대 총무원장을 맡아 어려운 종단사태를 수습하고 2개월 만에 사퇴했다. 1978년 이후에는 봉암사 조실로 1991년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1993년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됐지만 이듬해 종정직과 함께 봉암사 조실까지 사임하고 거제도, 삼천포, 팔공산 등지를 거쳐 태백산 자락에 토굴을 지어 무위정사(無爲精舍)라 이름하고 자유인으로 자적했다. 2001년 봉암사 대중들의 간청에 의하여 8년 만에 봉암사 염화실로 돌아와 한거(閒居)하다 2003329일 오전730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는 말을 남기고 열반에 들었다.

 

[출전 :불교신문3559/2020222일자]

 

 

2020.11.26 09:42:53 | 내 블로그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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