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도 여행3.28-4.3.(1)
델리, -바라나시,(샤르나트) -자이푸르, -아그라, -델리
3.28-29. 인천-델리(호텔 투숙)-(국내선항공)-바라나시
(5-1)바라나시 시내, 갠지스강(순례자, 많은 사람들, 자동차 등 경적 소리, 혼잡한 시내, 개. 소. 돼지& 사람 그리고 이릭샤.자동차.자전거.자전거인력거 등이 혼재)
인천공항
델리공항
가이드 안내방송(호텔 가는 중)
가이드: 인도 사람으로 이름은 '아카스'로서 델리에서 대학을 다니는 도중에 서울대학교 어학당에서 6개월간 유학을 하였다고 하였다. 한국말이 유창하였으며 여행내내 친절한 설명과 유머로 안내를 잘 하였다.
델리 udman 호텔
델리공항-바라나시를 가기 위하여
바라나시공항
amayaa 호텔에서 점심 후 간단한 피로연
이릭샤를 타고 바라나시 거리를.....
10정도 걸어서 갠지스 강으로
갠지스 강에서 배를 타고...
많은 힌두 사원들
꽃을 띄워 보내며 소원을...,
화장터
바라나시 밤거리-역시 수맣은 인파, 소&개
인도 델리에서 출발하여 인천공항에는 6시간 만에 도착하였다. 공항버스를 타고 일산에 도착하니 거리가 새삼스럽게 너무 깨끗한 것 같았고 집에 오는 20여 분 동안에 자동차 경적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인도는 동남아 나라들 보다는 쉽게 가보지 못하는 나라이다. 나도 불교의 발상지로서 성지가 있는 인도에 한 번은 가리라 생각하였는데 이번에 기회가 있어서 경친회회원들과 부부동반으로 인도를 다녀왔다. 인도는 전에 우리 절에서도 성지순례를 갔었지만 그때는 여의치 못해서 가보지 못했다. 인도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은 13억 인구에 다양한 종교, 카스트제도, 도시빈민들, 다양한 인종, 화장실이 없어 아무데서나 보는 용변, 갠지스강에서의 목욕과 화장터 등이 연상된다. 또 신들의 나라로서 여러 수많은 신들을 믿고 있으며 많은 수행자들이 있는 나라이다.
3월28일 17시25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인도 델리(인디라간디 공항)에는 8시간 45분이 소요된 23시10분(우리시간 2시40분)이었다. 공항에 내리니 인도의 수도답게 공항은 넓고 웅장하였다. 비자를 발급 받기 위하여 대기를 하였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또 비자비를 내는데도 카드로만 계산하여 이 또한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수속을 받고 약 30분 거리에 있는 호텔에 도착하니 어느덧1시30분이 되어 대충 여장을 풀고 02시30분에 잠에 들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벌써 기상할 시간이어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하고 05시30분에 기상하였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08시40분에 델리공항으로 가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11시45분에 출발하여 바라나시에는 13시20분에 도착하였다. 바라나시는 < 북부 우타르프라데시 주, 갠지스 강의 왼쪽 기슭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이 거주해온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현재 인구 약 406만명으로 갠지스 강 중류에 아리아인들이 처음 정착한 것이 시작이 되었다. 석가모니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카시 왕국의 수도였으며 가까이에 있는 사르나트는 그가 처음으로 설법을 한 곳이다. 1194년부터 3세기 동안 이슬람교도가 점령하고 있을 때 힌두 사원들의 상당수가 파괴되었고 학식있는 학자들이 다른 지방으로 피신하는 등 쇠퇴의 길을 걸었다. 18세기에는 독립왕국이 되었다가 뒤이어 영국의 지배를 받은 시기에는 상업과 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신앙심이 깊은 힌두교도들은 누구나 일생에 한번 바라나시를 방문하여 그 길을 걸어보고 가능하다면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를 소망하므로 매년 100만 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방문하며 수많은 사원이 있다. *출전:Daum백과>
현재 기온은 약33도로 제법 더웠으며 햇살이 강렬하였다, 호텔에 투숙하여 점심을 먹고 간단하게 일행들과 반주를 곁들였다. 휴식을 취하다가 17시에 바라나시 시내와 갠지스강을 보러갔다, ‘이릭샤’라는 3륜오토바이를 4명씩 타고 갔다. 거리에는 발디딜틈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으며 자동차, 이릭샤, 자전거인력거등의 탈 것들과 사람, 소, 개들이 사방에 널려 있으며 길 한복판에서도 잠을 자고 있었다. 모르고 밟을 것같아 불안하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돼지도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수많은 경적소리...., 순서도 없이 먼저 들이미는 차가 우선이었다. 습관적으로 빵빵 거리며 달렸다. 물론 인파와 탈것들로 빨리 달릴 수는 없지만 제법 속도를 내었으며 계속하여 경적소리를 울려 됐다. 지금도 귓소리에는 경적소리가 맴돌고 있다. 비단 바라나시 뿐만 아니라 델리, 자이푸르 아그라 등 모든 도시들이 경적소리에 휩싸이고 있었으나 특히 바라나시는 심하였다. 교통신호도 없고 횡단보도도 없었으며 아무곳에서나 사람들이 건너다녔으며 탈것들도 사고없이 교묘하게 빠져나갔다. 거리도 쓰레기와 동물들의 분뇨로 더러웠으며 우리의 60년대의 거리를 보는 듯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사람들은 불편하지 않는 것 같았으며 아무런 불만도 없는 것 같았다. 그저 순응하며 살고 있지나 않나 생각되었다. 또 수많은 순례자들-힌두교도들과 불교신자 등 종교신자들 등 이었다. 또 많은 아이들과 여자들이 ‘원 달러’를 외치며 구걸을 하였다. 가이드는 절대로 주면 안 된다고 하였다. 진짜 거지가 아니라 누군가가 시켜서 쉽게 돈을 벌려는 행동이라고 하였다. 한 번 주기 시작하면 많은 구걸자들이 모이기 때문에 돈을 주지 말라고 하였다. 구걸하는 아이들의 눈망울은 맑고 순진해 보였으며 구걸하는 행동에도 전혀 꺼리낌이 없었다. 구걸도 바라나시 뿐 아니라 우리가 방문했던 모든 도시들이 그러하였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기념품등을 사라고 달려들어서 여간 불편하지가 않았다. 갠지스 강에 나가보니 많은 순례자들이 목욕도 하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강변 곳곳에도 역시 소나 개들이 걸어 다니거나 누워있었으며 사람들에게 짖지는 않았다. 그저 인파에 아랑곳하지 않고 잠을 자고 있었다. 구석진 곳에는 사람들도 누워있거나 자고 있었다. 배를 타고 갠지스강을 유람하며 목욕하는 것도 보았고 특히 사진이나 보도로만 보던 화장터는 경이로웠다. 성스러운 강 갠지스에 오니 감회가 새롭고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하였다. 화장터는 24시간 계속 화장을 하고 있다고 하였으며 우리가 화장터 근처로 배 타고 가니 역시 여러 군데에서 화장을 하고 있었다. 정말로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있었으며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였다. 많은 사람들과 소,개들의 숲을 헤치며 호텔에는 19시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일행들과 간단한 술자리를 한 후에 잠자리에 들었다.
2019년4월3일 밤 현담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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