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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인도 여행(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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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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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당(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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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뜸 미나르(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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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센 키 바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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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에서 인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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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거리

마하트마 간디 박물관(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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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나라 국기가 새겨져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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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인도 여행(5-5)

 

2019328-43

 

42-3일~아그라 출발~델리 관광

 

2일 아침 호텔에서 아침을 먹은 후 0740분에 델리로 출발하였다. 같이 간 자운성이 속이 좋지 않다고 하여 약을 먹었고 다행히 큰일은 없었다. 델리 가는 도중에 휴게소에서 잠깐 쉬었는데 광장에 원숭이들이 무리 지어 다니고 있었으며 사탕을 던져 주니 잘 까서 먹었다. 델리에는 12시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한식당으로 갔다. 김치찌개, 오징어볶음 그리고 김치, 총각김치 등 반찬이 한국에서와 비슷하게 맛있었다. 심부름하는 종업원들이 모두 동남아 사람 같아서 물어 보니 인도 사람으로 미얀마 접경지대에서 온 사람이라고 하였다. 점심을 먹고 나서 델리시내를 관광하였다. 수도답게 많은 차량과 사람들로 혼잡하였고 거리는 여전히 지저분 하였다.

델리(Delhi)<연방직할주는 올드델리로 널리 알려져 있는 델리와, 남쪽에 있는 뉴델리(1912년 이후 인도의 수도), 가까운 농촌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올드델리가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경제 중심지인 반면에 뉴델리에는 행정관청이 집중되어 있다. 직할주 전체가 중북부 인도로 가는 화물수송 중심지 역할을 한다. 델리는 여러 제국 및 왕조시대를 거치면서 계속 수도로 있던 곳이다. 여러 번 터를 옮기기는 했지만 이곳들은 모두 델리 트라이앵글(Delhi triangle)이라고 부르는 지역 안에 속해 있다. 갠지스 강 지류인 야무나 강 서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연방직할주는 우타르프라데시 주, 하리아나 주(서쪽)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델리 서쪽에는 델리 능선이라고 하는 아라발리 산맥 북쪽 연장선이 뻗어 있다. 이 도시와 능선은 히말라야 산맥 남쪽편 약 160되는 곳에 있다. 매우 건조한 기후로, 여름은 아주 덥고 겨울은 춥다. 여름이 지난 다음에는 몬순 계절풍의 영향을 받는다. 델리에서는 공무원이 최고의 직업이다.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부문은 서비스업이며 2번째가 공업, 그 다음이 상업이다. 현대에 와서 델리는 전기제품·공업기술제품·자동차부품·전자제품을 생산하는 중소규모 제조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수공예와 의복은 물론 상아공예·그림·놋쇠기구·구리제품 같은 전통 수공예품도 여전히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 델리는 여러 세기 동안 인도 북부의 무역·상업중심지였으며 인도 준비은행 본부이자 증권거래의 중심지이다. 수송, 저장, 도매·소매 무역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올드델리의 나선형 도로망과 뉴델리의 질서정연한 대각선 교통망은 큰 대조를 이룬다. 뉴델리 인구밀도의 2(몇몇 지역은 5)나 되는 조밀한 인구를 가진 올드델리에 비해 북쪽에 있는 뉴델리는 부유층 거주지역 특유의 탁트이고 조용한 느낌을 준다. 올드델리의 경우 다른 주와 이웃한 여러 나라에서 이주자들이 들어와 사회구조 전반이 더욱 이질화되었지만 아직도 일부 지역에는 '이웃감정'(mohalla)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뉴델리에서 가장 두드러진 곳은 동서방향으로 축을 이루는 중앙 비스타 공원이다. 공원 양 옆으로는 정부 건물과 박물관, 연구소가 늘어섰으며 큰 길을 중심으로 주요 쇼핑센터가 있는 북쪽 구역과 거주지역인 남쪽 구역이 나누어진다. 델리에서 눈길을 끄는 유적들은 거의 인도 역사 전시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인도 이슬람 양식이 두드러진다. 파슈툰 양식으로 정교하게 만든 쿠트브 미나르, 쿠와트울 이슬람 사원이 그 예이다. 붉은 요새와 자미마스지드는 무굴 건축의 뛰어난 본보기이며 의사당은 영국이 통치하던 시대에 세운 건축물이다. 고등교육기관으로는 델리대학교(1922), 자와하를랄네루대학교, 농업·기술·의학 연구소, 예술 아카데미가 있다. 적당한 대중교통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델리의 도로는 우마차·자전거·자동차·트럭이 뒤섞여 상당히 혼잡한 편이다.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인도 북서쪽에서 동부 평원에 이르는 모든 육로, 5개의 국도와 철도선 몇 개가 연결되는 교차점 역할을 한다.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과 그 가까이 있는 팔람 국내선 공항은 항공교통 중심지로서 큰 몫을 하고 있다. 출전 :Daum백과>

 

최초의 이슬람사원인(당초는 힌두 사원이었음) 꾸뜹 미나르를 관광하였다. <꾸뜹 미나르는 술탄 꾸뜹 우딘(Qutbuddin)1193년 델리의 힌두 왕조를 패배시킨 기념으로 건설한 승리의 탑이다. 탑의 바닥 직경은 15m, 꼭대기는 2.5m로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지는 모양을 하고 있으며 높이는 73m에 이른다. 술탄꾸뜹은 그의 생에 첫 번째 층 밖에 짓지 못했고, 지금의 5층 탑은 후대 왕들이 증축한 결과물이다. 1~3층은 붉은 사암, 4~5층은 대리석과 사암을 사용했다. 기록에 의하면 탑의 상층부는 지진으로 인하여 두 번의 복원 작업을 거쳤다고 한다. 하지만 표면에 새겨진 섬세한 조각과 층을 구분하는 발코니는 지금까지도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다. 출전 :Daum백과>

사원 안에는 현지인들과 외국관광객들도 많았다. 먼저 탑이 웅장하게 높이 솟아올라 중심을 잡아주고 있었으며 주변에는 많은 붉은색 유적들이 산재하고 있었다. 여행 중에 많이 걷다보니 다리가 이내 피곤해져 그늘에 쉬면서 천천히 관람하였다. 다음에는 델리시내에 있는 아그라센 키 바올리라는 계단식 우물을 관광하였다. 먼저 보았던 아바네리 찬드 바오리 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꽤 웅장하였다. 비둘기기 들이 무리를 지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다음은 인도의 큰 위인인 마하트마 간디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인도 사람들은 간디를 무척 존경하고 있는 것 같았으며, 거리 곳곳에 간디가 쓰고 다녔던 안경을 문양으로 만들어 표시한 표식들이 많았다. 박물관은 아담한 건물로 간디가 사용하던 물건과 각종 보도자료들이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자운성이 좀 피곤해 하길래 시원한 의자에 앉아서 간간히 사진촬영을 하며 소폭으로 움직였다. 다음에는 영국이 1차세계대전 전승기념으로 세워줬다는 인도문을 갔다. 당초에 영국은 1차세계대전에 참전해 주면 독립을 약속해 주어 인도 사람들이 참전하였으나(12만명이 참전하여 7만명 전사), 전쟁이 끝나도 독립을 시켜주지 않고 이 인도문을 세워서 벽면에 전사자 명단을 세워주어 위로케 하였다고 한다. 인도문은 대통령궁과 연결된 아주 넓은 광장에 우뚝 솟아 있으며 현지인, 외국인들이 뒤섞여 혼잡한 광장이었다. 군데군데 잔디가 깔려 있었으나 대부분은 맨 땅이어서 심한 먼지가 일어났으며 역시 상인들이 기념품을 사라고 쫓아다녔다. 몇몇 분들이 1달러에 물건을 구입해 주었다. 인도 같은 큰 나라는 이런 기념적인 광장에 충분히 잔디를 깔 수 있는 여력이 될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다시 버스에 올라 옆에 있는 대통령궁을 차량에 탑승한 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인도는 아직은 모든 면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나라로 여겨졌으며, 있는 그대로의 삶을 불평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광장을 나와 인도 기념품점으로 갔다. 나는 가게 안을 잠깐 보고 나왔지만 자운성을 비롯한 일행들은 물건을 사기 위하여 쇼핑하기 시작했다. 가게 바깥에 있으려니 젊은 아낙과 아이 셋이서 연신 원달러를 달라며 졸라대었다. 우리는 가이드에게 배운 대로 절대로 주지 않았다. 마침 옆 가게 2곳은 주류를 판매하는 곳으로 와인과 맥주를 팔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구입하고 있었다. 인도는 아무데서나 술을 팔수가 없고 허가를 받아야 판매할 수가 있다고 하여 우리나라에서와 같이 술을 사기는 쉽지가 않았다. 일행들이 쇼핑한 물건 한 짐 씩 들고 나오고 있었는데 자운성도 치약과 관절에 좋다는 식품 몇 개를 사가지고 왔다. 쇼핑을 마치고 인근 무굴식 식당으로 갔다. 식사는 구운 닭고기, 소스에 끓인 양고기 등 인도식이지만 무굴시대에 즐겨 먹은 음식이라고 하였다. 맥주를 곁들이며 인도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21시쯤 델리 공항으로가서 수속을 마치고 한참 휴식을 취한 후에 0050분에 델리를 출발하여 인천으로 향하였다. 나는 잠깐 눈을 부치긴 했으나 거의 자지 않고 영화 2편을 보고, 아침에 나온 기내식과 맥주를 함께 먹으며 여정을 마무리 하였다. 43105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찾고 일행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후에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와서 점심으로 우리 음식을 먹으며 우리나라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껴보았다. 꿈같은 67일이 바람처럼 지나간 시간들이었다. 먹는 물 걱정을 했는데 호텔에서 500ml 한 통씩, 버스에서도 1통씩 그리고 추가로 주기도 해서 물은 충분히 먹을 수가 있었다. 피곤하기도 하고 더위에 좀 지치기도 하였지만, 비록 좀 못살고 남루하기도 하고, 무질서 하게 보이기도 하고, 지저분하기도 했지만, 인도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고 돌아왔다. 아이들의 순박한 눈망울, 새까만 손과 함께 순수함이 머리속에 각인되고 있었다.

 

201946일 저녁, 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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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트마 간디 동상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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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성지를 지도에 표시하며 설명해 줌


인도문(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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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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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굴식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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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사용 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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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6 16: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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