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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스님 북 콘서트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
<2019년12월27일 19시-21:20분
정혜사 대웅전>
요지-
전체가 하나로, 곧 허공이다. 허공은 들어갈 수도 없고 나갈 수도 없다. 나에 대한 집착, 중심성을 벗어나면 전체를 느끼게 된다. 나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는 법은 정해진 법이 없으며 모든 것이 방법이다. 모든 분별은 같이 생겼다가 같이 사라진다. 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면 눈앞이 따라다닌다. 즉 전체로 사는 것과 같다. 눈앞이 느껴진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집착이 없이 허공과 같은 것이다. 탁한 분별과 맑은 분별이 있는데, 탁한 분별은 시기, 선악, 애증 등이며, 맑은 분별은 집착이 사라져도 분별이 사라지지 않는 것으로 컵은 컵으로, 탁자는 탁자로 그 역할로 분별이 된다. 분별은 경험과 기억의 모임으로 고통이 된다. 아이에게는 고통이 없으며 나에 대한 존재감, 나에 대한 집착으로 인하여 고통이 생기며, 동시에 남에 대한 배타심도 생긴다.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으리’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이미 최선을 다한 사람은 최선을 다 안 해도 된다는 뜻이다. 즉 힘을 좀 빼도 된다는 것이다. 나의 원칙과 기준을 상대방에게 적용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정작 상대방은 개의치 않는다. 나의 기준을 강하게 하면, (강요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은 불편하게 된다. 수행은 힘을 빼야 하며 여유에서 힘을 쓰게 된다. 육조 혜능 스님은 수행을 무수지수(無修之修)라 하여 닦은 바 없는 수행이라 하였다. 즉 수행이라고 미리 정해 놓으면 그 외 다른 것은 소용이 없게 된다. 나를 비워낸다는 것은 허공성과 닮아가는 것이다.
2019년12월27일 밤, 현담 정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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