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세번째, 서광 스님의 치유하는 금강경 읽기
3장. 우울에 늪에 빠진 사람들에게
08. 무아(無我)-반대쪽 그림자를 통해 자기를 치유하라.
<수보리야! 여래가 얻었다고 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실체도 아니고 허상도 아니다. 수보리야! 여래가 일체법이 다 불법이라고 말한 것은 이름이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일체법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비유하자면 사람이 몸이 매우 크다고 했을 경우와 같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사람의 몸이 매우 크다고 했을 때, 실제로 큰 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크다는 것입니다.”
“수보리야! 보살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만약 보살이 ‘나는 반드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리라’고 말한다면 그를 보살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보살이라고 할 만한 법이 실제로 있어서 보살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래는 모든 법에는 아도 없고, 인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자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나는 반드시 불국토를 장엄하겠다’고 말한다면 이는 보살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여래가 불국토를 장엄한다고 할 때, 실제로 장엄이라는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일종의 개념일 뿐이다.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무아의 법을 통달한 자라면, 여래는 그 사람을 참다운 보살이라고 부를 것이다.”>
0. 공의 의미는 있고 없음의 무(無)가 아니라 실체도 아니고 허상도 아니라는 것이다.
0. 불법, 보살, 중생, 깨달음 등의 일체 현상이 공하다는 말을 듣고 일체는 허상이라고 잘못 받아들일까봐 부처님은 계속 강조하고 계신다. 따라서 일체 현상은 실체도 아니지만 허상도 아니라는 것이다.
0. 중관학을 창시한 용수보살은 공(空)을 중도(中道)라고 하였다.
-. 있음과 없음의 양극단을 초월한 것이 중도이다.
-. 일체 현상은 실체도, 허상도 아닌 중도라고 하였다.
0. 반야심경은 양극단을 부정하고 있고, 승찬 스님의 신심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0. 용수보살은 현상을 두 가지 관점으로 보리고 하였다.
-. 절대적 차원의 진리인 진제(眞諦)로 이 관점에서 보면 일체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 상대적 차원의 진리인 속제(俗諦)는 일체현상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현상은 실체인 동시에 허상이라는 것이다.
0. 양극단에 치우친 사람들의 치유방법은 반대편의 양극단을 서로 보는 것이다.
-. 사랑에 집착한 사람은 사랑의 그림자인 미움을 보고, 미움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은 미움의 그림자인 사랑을 보는 것이다.
-. 우월감에 빠져있는 사람은 우월감의 그림자인 열등감을 보고, 열등감에 빠져있는 사람은 열등감의 그림자인 우월감을 보는 것이다.
0. 우리가 무엇이든 지나치게 주장하고 고집하는 이면에는 반드시 그 반대의 모습이 숨겨져 있다. 상대의 그림자를 보는 것, 그것이 양극단을 극복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그림자 역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알아차릴 뿐이다.<170-175쪽>
2017년9월17일 약간 서늘한 아침,
현담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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