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이 시달려서 괴로워함, 또는 그런 괴로움으로 나온다. 이를 불교에서는 중생은 사물을 대할 때에 그것을 욕심내어 소유하려 하고, 본능으로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마음을 애태우게 되며, 경쟁하고 싸움하고 심지어는 살생까지 하게 된다. 이와 같은 복잡한 과정 속에서 마음의 평온을 얻지 못하여 생겨나는 정신적인 모순 모두를 번뇌라고 한다. 따라서 삶이 곧 번뇌요, 번뇌가 곧 삶이라는 논리까지 전개된다. 불교의 모든 법문은 이 번뇌를 다스리는 교훈이며, 번뇌가 다할 때 거기에는 해탈이 있다고 한다.
인간의 번뇌의 삶을 ‘인생고해’라고 한다. 괴로운 바다에서 둥둥 떠다니는 물체가 바로 인생이라는 것이다. 이를 현대적인 의미로는 ‘스트레스 천국’으로 비유할 수 있겠다. 삶이 왜 괴로운지, 인류진화의 관점과 뇌과학의 관점에서 한 번 살펴보자.
인류는 뇌에 쾌감을 주는 것에 접근하기보다는 불쾌감을 회피하는 데 더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이는 진화의 역사에서 불쾌한 경험이 유쾌한 경험보다 생존에 더 큰 영향을 미쳐왔다는 의미다. 인류의 원시 조상은 자신보다 몸집이 더 크고, 더 힘이 세며, 더 재빠른 포식동물로부터 부단하게 생존의 위협을 받아왔다. 따라서 언제나 주변을 경계해야만 했고, 작은 움직임이나 낯선 소리에도 과민하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도망갈 준비를 해야 할 만큼 불안하고 긴장된 삶을 영위했다.
뇌의 공간에 뭔가를 채워넣는 작업은 명상을 통해 할 수 있다.
이러한 위험에 대처하는 불안한 반응이 평화로운 반응보다 생존에 더 강력한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불쾌한 자극에 훨씬 더 강력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뇌를 만들었다. 그 결과 인간의 삶은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에 더 민감해졌다. 이런 괴로움에 더 민감한 부정적 편향성(negativity bias)은 오늘날의 우리 삶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우선, 인간은 쾌감을 주는 자극보다 고통을 주는 자극을 훨씬 빨리 받아들이고 학습한다. 뜨거운 스토브에 한 번 손을 대고 나면 다시는 그곳에 손을 올려놓지 않는다. 둘째, 공포나 불안과 같은 부정적 안면 표정은 행복이나 만족감과 같은 긍정적 안면 표정보다 훨씬 재빠르고 쉽게 인지한다. 셋째, 불쾌한 경험은 유쾌한 경험에 비해 쉽게 기억되고 오래 지속된다. 이것은 부정적 경험의 잔재들이 기억의 뇌 창고 속에 더 많이 남아 있다는 증거다. 넷째,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이미 갖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바둥거린다. 이러한 보존의 속성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배우고 창조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끝으로 인간관계에서 한 번 상처받은 마음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기 위해서는 몇 배의 긍정적 경험을 되풀이해야만 한다. 이렇게 인간의 뇌의 부정적 자극에 민감한 ‘부정적 편향성’은 진화를 통해 물려받은 것이다. 부정적 편향성은 과거 원시시대에는 생존에 유리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오히려 우리의 삶을 괴롭히는 존재로 변했다. 평소에도 불안하고 우울하며 긴장상태를 보이는 경향을 보이고, 쉽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며 슬픔에 빠지고 죄책감이나 수치심 등의 부정적 감정으로 얼룩져 있다. 또한 과거에 대한 기억도 끔찍하고 무서웠던 경험들에 보다 쉽게 점화될 수 있다.
요즘 명상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고 있다.
그러나 현대 뇌과학자들은 뇌에서 만들어낸 생각은 실재 현실과는 동떨어진 가상현실에 바탕을 둔 백일몽이나 공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불교에서도 마음이 어느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끝없이 방황하면서 만들어낸 온갖 생각을 번뇌라고 하며, 수양과 훈련을 통해서 이 번뇌를 다스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해서는 방황하는 마음을 어느 한 곳에 멈추게 마음의 동요를 막는 훈련, 즉 명상수련이 중요하다.
마음을 그대로 두면 끊임없이 과거로 돌아가 불쾌한 기억을 들추어낸다거나 미래로 나아가 실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불안을 붙잡아 이것들을 소재로 하여 온갖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괴로움을 끊고자 한다면 ‘괴로움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허상에 불과하다’는 기본인식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괴로움의 뿌리를 뽑아내고 행복한 세계로 가려면 흔들리는 마음을 ‘한곳에 붙잡아두어 방황하지 못하도록 하는’ 마음의 훈련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명상이다.
명상을 하는 기관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명상(Meditation)과 의학(Medicine)은 어간이 ‘medi’로 같다. ‘medi’라는 말은 라틴어의 mederi에서 파생된 말로 ‘치료하다’는 뜻이다. 같은 어근을 가진 두 개념을 해석하자면, 명상은 마음으로 괴로움을 치유한다는 뜻이고, 의학은 약물로 치료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겠다. 사실 현대의학이 있기 전까지 명상과 기도, 주술로 마음의 고통을 치료해왔다. 우리 고전 의학서인 <동의보감>에서도 ‘마음의 혼란에서 병이 생기고(心亂卽病生), 마음의 안정으로 병이 스스로 치유된다.(心定卽病自癒)’고 했다. 또 최고의 의사를 마음을 잘 다스리는 의사(心醫)라고 했다. 이처럼 전통의학의 핵심은 ‘마음의 힘으로 병을 다스리는 것’을 기본으로 했다.
뇌의 구조
이 전통의학의 핵심인 명상이 최첨단 과학시대에 다시금 각광을 받고 있다. 미국의 신경과학자이면서 심리학자인 데이비슨(Davidson, R, J) 박사는 명상을 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수 백 명의 환자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마음챙김(Mindfulness) 명상을 한 집단은 부정적 정서가 긍정적 정서로 변했으며, 업무에도 보다 적극적이고 열성적이었다. 또 면역기능이 보다 상승되어 감기에 덜 걸렸으며, 비록 감기에 걸리더라도 증상이 경미했다.
2011년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제이콥(Jacob, T, I)박사팀의 연구결과는 ‘명상이 수명에도 긍정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수천년간 이어온 명상수련이 고뇌에 찌든 인간의 삶을 보다 맑게, 보다 건강하게 치유하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뇌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있는 시대가 됐다. 그 뇌는 마음이 결정한다. 즉 ‘마음을 수행(명상)하면 뇌가 바뀐다’는 것이다. 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