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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법인 三法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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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idsee8512    
애국 (mcidsee8512)
제행무상 諸行無常 / 모든 것은 변한다.
제법무아 諸法無我 / 변하는 모든 것에는 실체가 없다.
일체개고 一切皆苦 / 변하는 모든 것은 괴로움을 낳는다.
여기에 열반적정 涅槃寂靜을 넣기도 한다.
때로는 이 네가지를 넣어 사법인 四法印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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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원의 / 대념처경 강해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수행자가 대상을 볼 때 내가 보는 것이 아닙니다.

눈이라는 감각기관이 감각대상과 접촉해서,

그리고 빛이 있어서 대상을 아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처럼 보는 것 하나에

눈이라는 감각기관, 보이는 대상, 빛, 그리고 아는 마음이라는

네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네 가지 조건에 의해서 보고 아는 것이지 내가 아는 것이 아닙니다.

눈이 내가 아니며, 감각대상이 나의 것이 아니며, 빛이 나의 소유가 아니며,

아는 마음이 나의 마음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원인과 결과에 의해서 아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조건에 의해 보이는 것이지, 초월적 존재의 힘으로 보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어떤 특별한 사람의 힘으로 보는 것도 아닙니다.

볼 때는 단지 볼 수 있는 조건에 의해서만이 보는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지난 시간에 이어서 오늘도 계속해서 경전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세간적인 것에 아무 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세간적인 것은 다섯 가지 집착의 무더기인 오취온입니다.

집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란 집착하거나 움켜쥐는 대상들인 다섯가지 무더기를 뜻합니다.

물질의 무더기, 느낌의 무더기, 지각의 무더기, 정신적 형성의 무더기, 의식의 무더기입니다.

이것이 색, 수, 상, 행, 식의 무더기입니다.

 

요컨대 세상의 모든 것은 이들  다섯 가지 무더기 중 어느 하나에 속합니다.

사물의 참된 성품을 보는 위빠사나 수행자는 세상의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에도 집착은 말할 것도 없고 갈망이 더 이상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경전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리하여 호흡수행에 대한 가르침은 이제 마지막에 이르렀습니다.

호흡을 알아차리는 수행은 사마타 수행으로, 위빠사나 수행으로

두 가지로 할 수가 있습니다.

 

사마타 수행은 고요한 수행이라는 뜻으로 강한 마음집중, 즉 선정을 얻도록 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정신적 번뇌를 뿌리 뽑도록 인도합니다.

 

사마타 수행은 위빠사나 수행과 다릅니다.

호흡에 대한 사마타 수행을 할 때 마음을 호흡에 두고

호흡을 하나, 둘 또는 하나, 하나, 하나라고 셉니다.

이렇게 수를 셀 때 다섯 이하나 열 이상 세지 않습니다.

셈은 하나에서 다섯, 하나에서 여섯, 하나에서 열까지 무엇이든

수행자에게 더 적합한 것으로 합니다.

 

예를 들면 들어옴 하나, 나감 하나, 들어옴 둘, 나감 둘, 들어옴 셋, 나감 셋,

들어옴 넷, 나감 넷, 들어옴 다섯, 나감 다섯, 그리고 다시 들어옴 하나, 나감 하나 등

여섯까지 숫자를 붙이거나 열까지 숫자를 붙입니다.

 

처음에는 느리게 세어야 합니다.

숫자를 세는 목적은 마음을 대상에 머물도록 돕는 것입니다.

대상에 끈을 매는 것에 비유합니다.

숫자를 붙이는 것을 통해 집중을 얻어서 정신의 흩어짐이 없이

대상에 머무를 수가 있으면 숫자 없이 단지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처음에는 숫자를 붙이고 호흡이 분명해지면 숫자 없이 마음과 호흡을 연결하는 것,

또는 모으는 것을 수행합니다.

호흡에 대하여 단지 알아차림을 하면 그것은 더욱 미세해질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어떤 때는 수행자가 영상이라든가 환상을 볼 수도 있습니다.

갖가지 환상들이 갖가지 사람들에게 옵니다.

수행자가 볼 수 있는 환상에 대하여 정해진 수나 정해진 종류가 있지 않습니다.

열 사람에게 물으면 열 개의 다른 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각각의 개인들은 다른 경향, 생각, 지각작용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의 환상은 모두 다릅니다.

 

경전에서는 환상들은 별과 같이 나타난다고 쓰여 있습니다.

수행자는 그것을 별과 같이 볼 수도 있습니다.

영상이 하나의 별처럼 또는 한 묶음의 보석이나 진주처럼 나타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비단 솜 씨앗처럼, 거친 촉감을 가진 적목질로 만들어진 말뚝, 길게 땋은 줄,

화관이나 꽃이나 한 모금의 연기, 팽팽히 쳐진 거미줄, 구름, 연꽃, 전차, 바퀴,

달이나 해, 둥근 모양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이들 영상이나 환상 중 어느 것이든 마음집중이 어느 수준에 달한 수행자에게 나타납니다.

수행자는 선정에 들어가고 선정에서 위빠사나로 전환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마타 수행의 목표는 선정입니다. 그리고 고요함입니다.

여기에서는 지혜가 없습니다.

사마타 수행은 다섯 가지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

먼저 대상과 하나가 되어서 깊은 선정의 집중을 체험합니다.

그러나 선정에서는 지혜가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라는 번뇌를 소멸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지혜입니다.

사마타의 힘으로는 그것을 없앨 수가 없습니다.

사마타의 힘으로는 일시적으로 그것을 억누를 뿐이지

근본적으로 그것들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위빠사나 수행의 지혜가 나면 이것들은 봄날 눈이 녹듯이 스스로 소멸합니다.

 

그래서 먼저 장애를 없애기 위해서 사마타 수행을 선택하신 분들은

반드시 사마타 수행에 그치지 말고 위빠사나 수행으로 전환하셔야 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으로 전환하실 때만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연기의 길을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만이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번뇌가 불타서

열반에 들어가게 됩니다.

 

수행자 여러분!

위빠사나 호흡 수행을 하는 수행자는 호흡을 세지 않습니다.

단지 호흡을 알아차리고 네 가지 방법에 따라, 길게 호흡하고 짧게 호흡하고

호흡의 온 몸통을 명백히 알아차리고 거친 호흡을 안정시키는 수행을 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수행자가 영상이나 환청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게 되면 단지 보는 것을 바로 알아차립니다.

얼마 후에 마음과 몸을 분명히 알아차릴 것이고

깨달음의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더욱더 정진할 것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대상을 표상으로 보지 않고 느낌으로 보기 때문에

모양을 만들지 않습니다.

모양이 나타나면 그 모양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관념으로 만들어진 것이라서 거기서 무상, 고, 무아의 법의 성품을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궁극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위빠사나 수행의 느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느낌에서만 법의 성품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 경전에서 강조하는 것은 위빠사나 수행이지 사마타 수행이 아닙니다.

일어나게 하는 요소들과 사라지게 하는 요소들을 알아차리는 것은

오직 위빠사나 수행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일어난 것과 사라진 것이 무상입니다.

이 무상의 단계에 이르러야 비로소 고(苦), 괴로움을 보고,

괴로움의 단계의 지혜가 나야 비로소 무아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의 무상은 열반에 이르는 열차를 탄 것과 같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사마타 수행에서는 대상의 일어남이나 사라짐을 알아차리지 않습니다.

단지 대상에 마음을 머물게 합니다. 그것뿐입니다.

일어나게 하는 것과 일어남, 또는 사라지게 하는 것과 사라짐에 대하여 알아차릴 때

수행자는 어느 것에도 애착하거나 집착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위빠사나를 뜻하지 사마타를 뜻하지 않습니다.

수행의 초기단계에서 사마타 수행을 할 수도 있지만

이 경전에서 모든 수행의 대상은 위빠사나를 향해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수행자는 호흡과 지금 이 순간에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하여 나타나는 모든 것에 그의 알아차림이 머무르게 합니다.

어떤 것을 보면 수행자는 그것을 알아차립니다.

어떤 것을 들으면 수행자는 그것을 알아차립니다.

어떤 것을 생각하거나 산만하게 하는 것이나 망상이 있을 때

그것들도 역시 똑같이 알아차립니다.

이것이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의 차이입니다.

 

사마타에서는 수행의 대상만 알아차려 머무르고 다른 모든 것들을 무시합니다.

그러나 위빠사나에서는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것, 이 순간에 두드러진 것을

모두 그 즉시 알아차립니다.

이 경전에서 수행자는 명상의 각 주제가 위빠사나를 향해 유도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각 절의 끝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어나게 하는 요소를 알아차리면서 지내고

그는 사라지게 하는 요소를 알아차리면서 지낸다.” 라는 구절로서

모든 것이 위빠사나로 향해져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수행자는 대상을 겨냥하고 그 대상에 마음을 머물게 해야 합니다.

마음을 대상에 머물게 한다는 것은 관심을 가지고 그곳에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머문다는 것은 수행자가 알아차림을 지속시켜 이렇게 생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지낸다’ 라고도 합니다.

 

이때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지내서는 안 됩니다.

결코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머물게 해서는 안 됩니다.

단지 알아차릴 대상이라서 단순하게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알아차림이 지속되는 순간에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침범하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마음과 몸이 청정해져서 차츰 대상의 성품을 보는 지혜가 생깁니다.

알아차리면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상관없이 어떤 대상이나 관용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알아차릴 때만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아 걸림이 없습니다.

 

수행자가 대상을 알아차릴 때 처음에는 거친 대상을 겨냥합니다.

통증, 망상, 졸음, 거친 호흡 등을 겨냥해서 마음을 붙입니다.

이렇게 수행을 해서 어느 정도 집중력이 생기면 대상이 미세해집니다.

이때는 미세한 것을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미세한 대상을 알아차릴 때는 거친 대상을 알아차릴 때와 다른 노력을 해야 합니다.

현미경으로 보듯이 더욱 공손하게 마음을 모아서 겨냥해야 하며

변화를 알아차리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거친 대상이나 미세한 대상이나 알아차리는 마음은 같지만

기울이는 정성이나 공손함은 다릅니다.

 

수행자 여러분!

알아차릴 때는 마음을 공손하게 모아 대상에 머물게 해야 합니다.

마음을 모은다는 것은 마음을 가다듬어 정성을 다 하는 것입니다.

대상에 머문다는 것은 마음을 대상에 그대로 두고 알아차림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모아 대상에 머무는 것이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노력을 해야 이루어집니다.

수행은 마음이 하는 것이므로 일하는 마음을 알아차려야 하겠습니다.

 

탐욕이 있는 마음, 성냄이 있는 마음,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

관용이 있는 마음, 자애가 있는 마음, 지혜가 있는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불선심도 알아차리고 똑같이 선심도 알아차려야 합니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불선심이 더욱 커집니다.

관용, 자애, 지혜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선심이 불선심으로 바뀝니다.

 

있는 마음이 있을 때, 일어난 마음이 있을 때, 하려는 마음이 있을 때,

아는 마음이 있을 때, 어떤 마음이나 알아차려야 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모르면 없는 것을 있다고 하고, 있는 것을 없다고 합니다.

모르면 틀리게 말하고, 남의 말을 그대로 믿습니다.

알면 없는 것은 없다고 하고, 있는 것은 있다고 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알면 바르게 말하고, 남의 말에 속지 않습니다.

모르면 당하고 알면 당하지 않습니다.

알아차림을 대상을 겨냥하는 단순한 행위입니다.

집중이 되지 않고 혼란한 것은 단순하게 알아차리지 못한 것입니다.

 

바라거나 없애려고 하면 단순하게 알아차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단순함만이 무지의 벽을 허물고 감추어진 지혜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위빠사나 수행의 이익입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10.31 14:16:41 | 내 블로그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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