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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법인 三法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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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idsee8512    
애국 (mcidsee8512)
제행무상 諸行無常 / 모든 것은 변한다.
제법무아 諸法無我 / 변하는 모든 것에는 실체가 없다.
일체개고 一切皆苦 / 변하는 모든 것은 괴로움을 낳는다.
여기에 열반적정 涅槃寂靜을 넣기도 한다.
때로는 이 네가지를 넣어 사법인 四法印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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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봉선사 일대기 35편

 





    효봉 스님은 2년 동안 선지식을 찾아 통도사에서 간도까지 두루 헤맸으나 별달리 소득을 얻지 못하고 금강산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 해가 불기 4260년(서기 1927년) 4월.

    스님은 신계사 미륵암에서 여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1년 동안 정진했으나 역시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보운암으로 옮겨 앉아 겨울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용맹정진에 돌입했다. 스님은 우선 장좌불와(長坐不臥) 오후불식(午後不食)하기로 결심하고 함께 좌선하는 대중에게 양해를 구했다.


    엉덩이가 짓물러 터지도록 좌선에 용맹정진

    “저는 반야(般若 :지혜)가 엷은데다가 불연(佛緣)이 없어서 늦게야 머리를 깎았으니 한가한 정진은 할 수가 없습니다. 입선(入禪)과 방선(放禪)과 경행(輕行)을 구별하지 않고 줄곧 앉아 있으려 하오니 허락해 주십시오.”

    좌선을 할 때는 대개 일정한 간격으로 좌선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정해서 하는데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좌정에 든 동안이 입선이요, 잠시 결가부좌를 풀고 쉬는 동안이 방선이며, 운동을 위해서 잠시 방안이나 뜰을 거니는 것을 경행이라 한다. 특히 경행은 입선하는 동안 피가 통하지 않거나 근육에 무리가 갈 수 있으므로 이를 풀기 위해서 반드시 게을리 하지 않아야 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방선과 경행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일체 운동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이러한 일로 인해서 참선하다가 건강을 해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효봉 스님은 스스로 약속한 대로 꼬박 석 달을 하판(아랫목) 뜨거운 자리에 앉아서 다만 하루에 두 끼니 아침 죽과 사시(巳時) 공양 드는 일을 위해서 잠시 자리에서 일어설 뿐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용맹정진에 돌입했다.

    겨울의 금강산은 예로부터 개골산(皆骨山)이라 불렸다. 한겨울 금강산에 눈이 쌓이면 개골산이라는 말 그대로 산봉우리와 골짜기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모두 봉우리요 모두 골짜기인 듯 보였다. 눈 덮인 금강산에 눈보라가 몰아치며 매서운 추위가 몰아닥치면 산짐승도 발자취가 끊기고 스님들도 장작불을 지펴서 절절 끓는 선방에 들어앉아 가끔 조는 사람을 깨우려는 장군죽비 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선방의 규율은 아주 엄해서 나이가 많든 적든 출가한 순서대로 선방의 어간에서부터 좌우 아랫목으로 자리를 정해서 차례로 앉도록 되어 있다. 윗목을 상판이라 하고 아랫목을 하판이라 하는데 산중의 선방은 큰 온돌방이라서 온돌방의 아랫목은 절절 끓고 윗목은 냉기가 돌기 일쑤다. 그러니 하판은 졸음이 올 뿐 아니라 뜨겁기조차 해서 견뎌 내기가 더욱 어려운 법이다. 스님은 나이가 비록 많다고는 하더라도 늦게 출가했으므로 맨 아랫목 신세를 질 수밖에 없어서 얇은 좌복(坐服-방석) 하나를 깔고 앉아서 졸음과 뜨거움을 견뎌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시(巳時) 공양 시간이 되었다. 모두들 점심 공양을 들기 위해 선방에서 나갔다. 그러나 스님은 식당으로 가는 것도 잊은 채 결가부좌하고 좌선삼매에 빠져 있었다. 처음에는 함께 좌선하던 수좌들이 식사 시간이 되었음을 환기시켜 주었으나 나중에는 좌선을 방해하는 게 아닐까 해서 공양 시간에 말없이 다녀오기도 했다.

    공양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온 수좌들은 방에서 나는 이상한 냄새에 코를 킁킁거렸다. 방안에 갇혀 있을 때는 냄새를 맡지 못했으나 밖에 나가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난 뒤라서 금방 냄새를 느꼈다.
    “무슨 냄새가 이리 고약할까?”
    “글쎄 말이야. 나도 아침부터 좀 이상한 냄새가 나는 듯해서 물어보려던 참이었네.”
    “뭐가 썩는 냄새 같기도 하고, 오물 냄새 같기도 하고 말이야.”
    방안 구석구석으로 냄새를 맡고 다니던 수좌들은 그 냄새의 진원지가 효봉 스님임을 알아내게 되었다. 그리고 수군거렸다.
    “저 운봉 수좌한테서 나는 냄새 같은데?”
    “저 사람, 앉아서 똥을 싸고도 모르는 게 아닌가?”
    그러한 소리가 호봉 스님의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마침내 수좌들이 효봉 스님의 어깨를 흔들었다.
    “여보게, 운봉수좌! 자네 이거 앉아서 옷에다 실례한 것 아닌가? 일어나 보게. 냄새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
    그제야 스님은 선정삼매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자기에게 무슨 문제가 발생했음을 깨달았다. 스님은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엉덩이에 방석이 달라붙어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방석 밑바닥까지 검붉은 피고름이 배어나 엉겨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사람, 이거 피고름이 아닌가?”
    “예? 피고름이라구요?”
    “이것을 좀 보게. 이게 피고름이 아니고 무엇인가?”

    뒤를 돌아본 스님은 한편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 이상하기도 해서 방석을 떼어내려 하였다. 그러나 방석은 엉덩이 살에 달라붙은 바지와 한 덩어리가 되어서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몇날 며칠을 앉아있는 동안 엉덩이가 짓무르고 상처가 생겨 피고름이 냄새를 풍겼던 것이다.

    효봉 스님은 겨울 석 달 동안 이렇게 한번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좀체 자리에서 일어날 줄 모르고 절구통처럼 앉아 있다고 해서 <절구통 수좌>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 이때 생긴 엉덩이의 상처가 탈 없이 아물기는 했어도 뒷날까지 상처로 남아있었다.

    “이 사람, 지난번에는 정수리가 터지더니만 이러다가 무슨 일 나겠어‥‥‥‥”
    며칠 전 참선삼매에 빠져 있던 스님의 머리에서 얼굴로 피가 흘러내린 적이 있었다. 그것은 참선을 하다가 기(氣)가 위로 치밀어 오르는 상기병(上氣病)에 걸려서 정수리가 터진 사건이었는데, 어렸을 적 인절미를 먹고 혼절했을 때 뜸을 뜬 흉터로 기가 뚫고 나와 피를 흘린 것이다. 그러나 정작 스님은 그것도 모른 채 선정에 빠져 있던 사건이 있었다.

    참선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석두 화상이 효봉 스님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제자를 불러 앉혔다.
    “엉덩이가 짓물러 터져도 모르고 좌선을 했더란 말이냐?”
    “아니옵니다, 스님. 죄송하옵니다.”
    “그럼, 자네 공부는 어찌 되었는가? 공부에 힘을 얻었는가?”
    “스님, 점점 깜깜해질 뿐 더욱 모르겠습니다.”
    “옛날 조사께서 이르시기를 참선 수행은 너무 조급히 서둘러도 아니 되고 너무 느긋해서도 아니 된다고 하였네. 옛 어른들께서 이르기를 수행하는 태도는 마치 거문고 줄과 같아야 한다고 하셨거늘 자네는 그 뜻을 알겠는가?”
    “하오나 스님 저는 늦은 만큼 배가하여 정근하지 않으면 끝내 제도(濟度)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공부나 수행이란 게 서두른다고 성취되는 것은 아닐세. 급할수록 둘러가라는 속담이 있지 않던가? 바쁘다고 바늘허리 매어 쓸 수는 없는 법이지. 그래서 부처님은 중도(中道)를 늘 강조하신 게야.”
    석두 화상은 《잡아함경》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거문고 줄의 비유를 들려주었다.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소오나[守籠那]라는 제자가 있었다. 소오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열심히 수행 했지만 깨달음을 쉽게 얻지 못했다. 그래서 마침내 초조해서 수행을 포기하고 차라리 집에 돌아가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짐을 챙겼다. 부처님께서 소오나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불렀다.

    “소오나야, 너는 출가하기 전에 거문고를 잘 탔다고 들었다. 거문고를 탈 때 줄을 너무 늘어뜨리면 어떠하냐?”
    “소리가 잘 나지 않습니다.”
    “거문고 줄을 너무 조이면 어떠하냐?”
    “거문고 줄이 끊어지게 됩니다.”
    “그렇다. 공부도 거문고 줄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 조급해 하거나 게으르지 말고 알맞게 거문고 줄을 고르듯 중도에 따라 공부하면 반드시 도를 이루게 될 것이다.”
    소오나는 중도에 따라서 수행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석두 화상에게 거문고 줄의 비유를 다 듣고 효봉 스님은,
    “명심하겠습니다, 스님.”
    하고 물러났다.
    석두 화상의 방을 물러나온 스님은 우선 은사 스님 뵙기도 민망하지만 함께 수행하는 선배 수좌 스님들 한데도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절구통 수좌>라고 별명을 부를 때마다 어찌 들으면 심지가 굳다고 칭찬하는 뜻으로 들리기도 하였으나 어찌 들으면 무지막지하다고 비아냥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무튼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것이 스님으로서는 괴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화두 밖에 또 하나 신경을 써야 하는 화두 아닌 화두가 생긴 셈이 되어 마음은 늘 무겁기만 하였다.


    입문 4년 만에 도 깨치러 토굴정진 시작

    석두 화상이 화두를 내리며 일러준 설법 내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더욱 짓눌렀다. 스님은 무자 화두를 깨치기 위해서 금강산의 이곳저곳에 있는 암자에서 용맹정진도 해 보고, 선지식을 두루 찾아서 운수행각도 해 보았으나 끝이 그렇게 쉽게 보이지를 않아서 초조하기는 여전했다. 자신의 두터운 속세의 업장(業障)과 무능함을 한탄했다. 스님은 비장한 각오를 하고 다시 석두 화상을 찾아뵈었다.

    “스님께 한 가지 청이 있어서 왔습니다.”
    “청이라니? 그게 무언가 일러보게.”
    “예, 스님. 제가 반야에 인연이 엷은데다가 업장이 두터운지라 도무지 화두가 열리지 아니하옵니다. 하여서 스님, 다름이 아니옵고 토굴을 짓고 그 속에 들어가 사생결단을 하고자 하옵니다.”
    “사생결단?”
    석두 화상은 문득 눈을 크게 뜨고 효봉 스님을 쳐다보았다.
    “스님! 토굴에 들어가 일대사(一大事) 인연을 해결할 때까지는 바깥 세상에 나오지 않을 생각입니다. 허락하여 주십시오, 스님 !”
    “토굴에 들어가 깨닫지 못하면 나오지 아니 하겠다?”
    “예, 결단코 바깥 세상에 나오지 않겠습니다.”
    실로 놀라운 각오였다. 석두 화상은 효봉 스님의 얼굴빛에서 이미 그 각오를 읽었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석두 화상이 입을 열었다.
    “알았네, 자네의 각오가 정히 그러하다면 허락할 터인 즉 바깥 걱정은 말고 들어가게. 부처님도 설산에서 6년 고행을 하셨고, 달마 조사도 소림굴에서 9년 면벽(面壁)을 하셨지 않았던가? 그대도 꼭 한 소식을 얻어오시게.”

    그런데 문제는 효봉 스님이 토굴에 들어가 있는 동안 시봉을 들어줄 시자가 필요했다. 석두 화상은 대중을 모아놓고 누가 효봉 스님의 시봉을 들어주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대중은 침묵을 지킬 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의 수행정진을 위해서 금강산까지 왔는데 남의 시봉이나 들면서 기약도 없이 몇 날 며칠을 허송세월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석두 화상은 하는 수 없이 보운암과 그리 멀지 않은 비구니 도량인 법기암(法起庵)으로 갔다. 이때 마침 다행스럽게도 효봉 스님의 시봉을 들어주겠다는 비구니 스님 한 분이 자원을 하였다. 법기암 원주인 대원(大願) 스님이었다.

    효봉 스님이 머리를 깎고 불문에 들어온 지 4년, 그의 세속 나이 마흔세 살 되던 불기 2474년(서기 1930년) 초봄. 깨닫기 전에는 절대로 바깥 세상에 나오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으로 무문관(無門關)토굴로 들어갔다. 토굴은 겨우 방 한 칸에 뒤쪽으로 용변을 볼 수 있게 구멍 하나를 뚫고, 앞쪽으로는 밥그릇 하나 들락거릴만한 창구멍 하나를 남겨두고는 드나들 수 없도록 사방 벽을 밖에서 봉해 버렸다. 토굴 안에는 입은 옷 한 벌과 방석 석장 뿐 아무 것도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다.

    “운봉 수좌님 ! 금강산의 추위는 이른 겨울부터 늦겨울까지 살을 파고드는 추위옵니다. 옷가지랑 이불을 더 가지고 들어가시지요.”
    “나는 잠자러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할 것이므로 이불은 필요 없고, 안에만 있을 것이므로 갈아입을 옷도 필요 없네. 다만 하루 한 번 군불이나 지펴주면 고맙겠네.”
    “그래도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스님.”
    “되었네, 밥은 하루에 한 끼만 먹을 터이니 창구멍 앞에 가져다 두고 가시게.”
    “정말 필요한 것이 없겠습니까? 제가 매일 들를 테니 언제라도 말씀만 주시면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말대답은 일체 하지 않을 테니 여기 와서 아무 말도 하지 마시게.”
    “묵언(黙言)정진까지 하신다구요? 잘 알겠습니다. 그럼, 소승 이만 물러갑니다.”

    스님의 토굴정진은 결사적인 각오였다. 일체 인간 세상과는 절연되어 시공(時空)이 정지된 무념무상의 상태였다. 봄이 오고 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 세상의 풍속도, 기쁨도, 슬픔도, 괴로움도, 즐거움도 모두 토굴 안으로는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토굴 안의 스님이 누워 있는지 앉아 있는지 춤을 추는지, 눈을 감고 있는지 뜨고 있는지, 숨을 쉬는지 숨이 끊어졌는지 토굴 밖에서는 종시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매일 하루 한 끼씩 들여보내는 공양 그릇이 그 이튿날 빈 그릇으로 나오면 살아 있다는 것을 짐작할 따름이다. 매일 스님께 공양을 나르고 저녁에 군불을 지피는 일을 맡은 시봉 스님만 토굴에 가 볼 뿐 날이 갈수록 다른 스님들의 기억에서조차 효봉 스님의 존재는 잊혀져갔다.


    죽음과의 싸움 선정삼매

    금강산의 밤은 깊어 겨울 삼경에 밤 짐승이 우는 소린지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는 소린지 알 수 없는 서릿바람 소리가 적막한 산사를 감싸 돌았다. 칠흑 같은 어둠은 금강산 산마루의 바위덩이보다 더 무겁게 산사를 짓누르고, 그 위압에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희미한 등잔불도 더욱 빛을 잃고 가물거렸다. 등잔불이 가물거리며 자지러지면 스님의 숨도 이내 등잔불처럼 깜빡 꺼질 것만 같이 느껴졌다.

    이른 봄 진달래가 붉게 금강산을 수놓을 때면 귀촉도가 피울음을 울었다. 그렇다. 그것은 피울음이었다. 끊일 줄 모르고 밤마다 우는 저 새는 무엇을 찾으려고 저렇게 피를 토하며 밤마다 우는 것일까? 귀촉도 소리는 스님의 화두와 하나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낮에는 귀축도 소리와 교대하며 온갖 새들의 지저귐이 화두와 하나 되어 그야말로 자나 깨나 한결같은 오매일여(寤寐一如)요, 동정일여(動靜一如)요, 우주와 합일이 된 참선삼매의 경계에 마침내 들어선 것이다.

    스님은 뒷날 이때의 경계를 회상하며 이렇게 읊었다.

    동으로 흘러가는 저 물을 보라.
    도도히 흘러 멈추지 않네.
    만일 참선을 이같이 하면
    견성이 어찌 더디리오.

    請看東流水
    滾滾無停時
    參禪若如是
    見性何得遲

    해가 바뀌어 봄․여름․가을이 가고 다시 금강산의 겨울은 빨리 찾아오는 듯했다. 무더위가 가시고 찬바람에 단풍이 드는가 하더니 어느새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하는 금강산의 겨울은 동해의 파도 바람이 유난히 매서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부터 내리던 눈이 하루 종일 그치지 않고 그 이튿날도 또 그 이튿날도 내려 쌓여서 꼬박 사흘 밤낮을 내렸다. 눈은 사람의 키를 넘고 처마 끝자락까지 쌓였다. 방문 앞에서 법당으로 통하는 길과 해우소(解優所-변소) 가는 길만 겨우 터널처럼 굴을 뚫어서 다닐 뿐 외부 세계와는 완전히 두절된 상태다.

    효봉 스님의 아침 공양을 나르기 위해 토굴로 향했던 시봉 스님은 불과 몇 걸음 나아가지 못하고 되돌아오고 말았다. 평소에 다니던 길마저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더구나 법기암에는 힘이 약한 비구니 스님들만 있었으므로 큰절인 신계사는 물론 석두 화상이 있는 보운암으로도 연락이 두절 되어서 구원을 요청할 수도 없다.

    비구니 스님들은 생각다 못해 토굴 쪽으로 눈을 헤집고 굴을 뚫으면서 나갔다. 그러나 눈 속에 굴을 뚫으면서 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부지런히 눈을 헤집고 나가는 데도 사흘 동안 겨우 200미터를 조금 넘게 나아갔을 뿐이다. 토굴까지는 아직도 300미터도 넘는 거리다.

    이때 큰절에서 젊은 스님들과 함께 눈을 헤치고 석두 화상이 법기암에 나타났다.
    “토굴 스님은 어찌 되었느냐?”
    “길이 막혀서 사흘이나 공양을 나르지 못했습니다. 군불도 지펴드리지 못했습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난 석두 화상은 어이가 없어서 목청을 높였다.
    “토굴 속의 스님은 하루 한 끼밖에 먹지 못하는데 사흘씩이나 공양을 나르지 않았다면 어찌 목숨을 부지하란 말이던고! 우리는 토굴에 들어간 스님과 약조를 했었다. 하루 한 끼 공양과 군불을 지펴 주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 약조를 깬대서야 어찌 수행인이 취할 태도라 하겠느냐? 그러고도 너는 네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 가더냐!”
    “큰스님, 저희들이 눈 속을 헤집고 나갔으나 토굴까지 당도하지 못했습니다.”
    석두 화상도 화를 내기는 했으되 어찌할 수 없는 사태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더 이상 꾸지람을 한다고 지나간 과거가 바로 되는 것도 아니다. 일 분 일 초라도 서둘러 토굴로 가는 일이 급했다. 석두 화상과 젊은 스님들은 힘을 배가하여 눈 속을 헤치고 앞으로 전진 하였다.

    다행히 눈은 그치고 천지가 온통 은세계를 이루어 바람마저 멎은 금강산은 새소리조차 끊어지고 적막하기가 이를 데 없다. 다만 간밤에 내린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소나무 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간간히 ‘찌렁-찌렁-’ 산골짜기를 울릴 뿐이다.

    영하의 날씨 속에서 꼬박 사흘 동안 물 한 모금 먹지 못한 효봉 스님은 어떻게 되었을까? 더구나 제대로 지은 집도 아닌 토굴 속에서 스님은 온전할까? 토굴에 다다른 일행은 우선 스님이 성한지 어떤지가 궁금했다.

    “스님 ! 스님 ! 괜찮으셔요, 스님?”
    “………”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다. 한 수좌가 급한 나머지 공양 그릇을 들여보내고 빈 그릇을 받아내는 창구멍의 덧문을 열고 속문을 통해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스님은 방 한가운데에 결가부좌를 튼 채 절구통처럼 그대로 앉아 있다. 살아 있음을 비로소 확인한 수좌가 여러 대중에게 이 사실을 알렸을 때 대중들의 입에서는 일제히
    “나무 관세음보살.”

    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러나 효봉 스님은 이때 심한 동상에 걸렸다. 창구멍을 통해서 안을 들여다 본 수좌는 스님이 결가부좌한 것만 보았지 몸이 퉁 퉁 부어 있었던 사실은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윽고 부엌에 군불을 너무 뜨겁게 지펴서 갑자기 더워지자 스님의 몸이 녹으면서 온몸이 가려워 오기 시작했다.

    그 동상의 후유증은 너무 컸다. 일단 부었던 몸은 다시 빠졌으나 발가락과 귓바퀴에 박힌 얼음은 쉽게 빠지지 않아서 토굴에서 나온 뒤에도 해마다 겨울이 되면 동상이 재발하여 고생을 해야 했다.
    이렇게 효봉 스님은 토굴 속에서 또 한해 겨울을 견뎌냈다. 자연의 순환은 어김없어서 얼어붙었던 시냇물이 졸졸졸 녹아 흐르고 지난해 피었던 산동백 가지는 노랑 꽃망울을 맺었다. 지순한 순환의 진리를 우리는 해마다 보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토굴 속의 효봉 스님은 이 자연의 순환 법칙을 잊은 것일까? 아니면 순환조차 멎은 것일까? 토굴을 감싸 도는 공기는 토굴 속 스님처럼 그저 묵묵할 뿐이다.

    그러던 여름 어느 날.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공양을 날라 간 시자가 깜짝 놀랐다. 어제 창구멍으로 들여보낸 공양 그릇이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창구멍으로 매일 들여보내는 공양 그릇이 이튿날 비어 있는 것으로 바깥에서 생사를 확인하였는데 그날은 공양 그릇이 그대로 있지를 아니한가! 공양을 가져간 시자는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문득 불길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스님! 스님! 왜 공양을 드시지 않으셨어요? 어디 편찮으셔요?”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스님! 스님! 어찌된 일이옵니까, 스님!”
    울음 섞인 목소리로 불렀으나 안에서는 언제나 그랬듯이 아무런 대꾸도 없다. 시자는 공양을 들여보내는 창구에 귀를 대고 숨소리를 찾았다. 그러나 숨소리는커녕 선뜩 무서움이 그 창구멍으로 와락 쏟아져 나왔다.

    시자는 두려움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온몸이 굳어져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문을 막 나서려는 찰나,
    “험! 험!”
    하는 기침소리가 들렸다. 시자는 다시 한 번 놀라서 가슴이 뛰었다. 스님의 헛기침은 시자의 근심스럽고 두려운 마음을 다 안다는 듯, 그래서 안정시키기 위해서 하는 기침이 틀림없었다.

    효봉 스님도 처음 시자가 와서 외쳤을 때 비로소 어제의 공양이 창구에 그대로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그 전날부터 공양이 온 줄도 모르고 선정삼매(禪定三味)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2022.11.23 22:06:07 | 내 블로그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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