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은 시인인가 독립투사인가 승려인가. 어떤 사람은 시인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독립투사라고 합니다. 그러나 불교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스님이라 합니다. 그래서 만해스님 또는 한용운스님이라 합니다.
서울 성북동에 가면 심우장이 있습니다. 심우장 가는 길은 매우 가파릅니다. 부자동네로 알려져 있는 성북동이지만 심우장은 가파른 작은 골목길을 올라 가야 합니다. 서울 빈민촌에서 보는 산동네달동네 분위기입니다.
만해스님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11년간 머물렀던 곳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1933년에 심우장을 지었다고 합니다. 올해로 85년된 집입니다.
8월 29일 심우장에 갔습니다. 심우장에서는 매년 이맘 때쯤 만해통일문학축전이라 하여 문학인의 잔치가 열립니다. 올해로 4회째입니다. 왜 통일이라는 말을 썼을까? 안내 책자를 보니 만해의 독립정신과 민족정신을 계승하기 때문이라 합니다. 남북통일에 일익을 담당하고자 통일문학축전을 열개되었다고 취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통일문학축전은 선진규선생이 주관하고 있습니다. 선진규선생은 80대 중반으로 큰 키에 매우 정정합니다. 선진규선생은 김해 봉하마을 정토원 원장입니다. 또한 한국불교문인협회회장이기도 합니다.
이번 통일문학축전은 한국불교문인협회, 만해사상실천연합, 대한불교청년회 주관입니다. 만해스님과 관련 있는 단체들입니다. 또 불교와 관련 있는 단체들입니다. 그래서일까 이날 참석한 사람중에는 혜총스님, 진관스님 등 스님도 몇 명 보였습니다.
통일문학축전의 꽃은 시낭송일 것입니다. 시인들이 자신의 시를 직접 낭송하는 것입니다. 시가 낭송될 때는 배경음악이 나옵니다. 주로 통일에 대한 것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정수미 시인의 ‘통일아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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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우러진 이땅에
그리던 봄이 찾아오면
만발한 봄꽃에 설레며
꽃등을 접어보아요.
바다를 건너는 저 배엔
평화의 돛을 달고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랑의 씨를 뿌려요.
연인들 잠 못 이루는 밤이 다시 오면
지나간 아픔은 서로의 가슴에 품고
고단한 흔적 애써 감추려 하지 말고
눈물과 상처를 보듬고 손잡고 가요.
아리아리~한강의 기적
스리스리~얼~씨구~
아~리랑~대동강에서도 이루어가요.
아사달 벌판을 달리던 말발굽소리
단군의 기상 받은 홍익인간 이화세계
두 손을 모으고 부르는 축복의 노래
하나 된 미래를 위해서 함께 불러요.
아리아리~한강의 기적
스리스리~얼~씨구~
아~리랑~대동강에서도 이루어가요.”
행사가 끝나고 심우장을 돌아 보았습니다. 심우장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85년 전에 집임에도 온전히 남아 있습니다. 살림집으로 사용되던 것을 1985년에 서울특별시기념물 7호로 지정했습니다.
심우장 (尋牛莊)이라는 말은 선종에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단계의 수행을 말합니다. 소를 찾는 것은 자기의 본성을 찾는 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날 통일문학축전에 걸린 플레카드에는 심우장에 대한 시가 있었습니다. 만해스님이 지은 ‘심우장1’이라는 시입니다.
“잃을 소 없건마는
찾을 손 우습도다.
만일 잃을 씨 분명타하면
찾은들 지닐소냐.
차라리 찾지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
심우장에서 다시 가파른 골목길을 올라갔습니다. 정상에 서자 탁트인 전망 좋은 경치가 나타났습니다. 85년 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해스님도 이곳에 올라서서 아래 세상을 내려다 보았을 것입니다. 80년이라는 시공을 초월하여 후배 문인들이 스님을 기리는 행사를 했습니다. 문학은 위대하고 생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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