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통일의 시작입니다]
"통일은 반드시 온다…진통은 감내해야 할 업(業)"
"통일되면 금강산 가서 공양" 맡겨진 유품, 통일나눔재단에
- 통일과 나눔 재단에 전달된 법정 스님의 봉투 3개.
통일과 나눔 재단에 전달된 법정 스님의 봉투 3개. 스님은 통일이 되면 금강산 신계사를 찾아 부처님 전에 이 봉투를 바치고 싶어 했다. /이명원 기자
21일 통일과 나눔 재단에 한지를 접어 만든 빛바랜 봉투 1개와 일반 편지 봉투 2개가 인편으로 전달됐다. 2010년 입적한 법정(法頂) 스님의 유품이라고 했다. 각 봉투에는 1만원권 지폐 10장씩이 들어 있었다. 한 봉투의 1만원권 10장은 1979년 발행된 지폐로 일련번호가 다양했다. 다른 봉투 2개에 든 1만원권은 각각 ″1440957가바아~1440966가바아″ ″KA0209691L~KA0209700L″까지 나란한 일련번호였다. 각각 2000년, 2007년에 발행된 지폐였다.
이 봉투를 갖고 온 사람에게 누가 보낸 것이냐고 묻자 "노(老)보살"이라고만 답했다. 칠순의 노보살과 전화가 연결됐다. 그는 "1985년부터 법정 스님이 서울 오실 때마다 뵙고 일을 도와드린 사람"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법정 스님은 생전에 한국은행에서 새로운 디자인의 지폐가 나오면 바로 1만원짜리 10장을 가져가 바꾸시곤 했어요. ″통일되면 은사인 효봉 스님이 출가한 금강산 신계사에 차 운전해서 가서 (새 지폐를) 부처님께 공양하자″고 하셨죠. 그런데 스님은 안타깝게도 통일을 못 보고 가셨어요. 최근 통일나눔펀드가 출범한 것을 보고 펀드에 기부하는 것이 스님의 유지(遺志)를 받드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일제강점기 판사로 일했던 효봉(曉峰·1888~1966) 스님은 1925년 금강산 4대 사찰 중 하나인 신계사로 출가했다. 법정 스님은 6·25전쟁으로 민족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참상을 목격한 후 1954년 효봉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했다.
- 생전의 법정 스님은“통일 과정에서 혼란과 진통이 있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감내해야 할 업(業)이다. 통일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다”고 말하곤 했다(왼쪽 사진). 효봉 스님.
생전의 법정 스님은“통일 과정에서 혼란과 진통이 있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감내해야 할 업(業)이다. 통일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다”고 말하곤 했다(왼쪽 사진). 효봉 스님. /이진한 기자(왼쪽 사진)
노보살은 "법정 스님은 통일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계셨다"고 했다. 법정 스님은 "통일은 이뤄지지만 독일 통일과는 다를 것이다. 독일은 준비도 많이 돼 있어서 혼란이 적었지만 우리는 굉장한 진통과 혼란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가 감내해야 할 업(業)이다"고 말했다고 노보살은 전했다. 노보살은 "첫째 봉투에 넣으시는 것은 직접 못 봤지만 두 번째, 세 번째 봉투에 새 지폐를 넣으시는 것은 목격했다"며 "법정 스님이 ″자, 봉투 여기 있어요. 잘 봐둬요″라고 맡기셨다"고 했다.
그는 "스님 모시고 신계사 갈 생각을 많이 했는데, 스님 입적 후 한동안 봉투의 존재를 잊고 지냈다"며 "통일나눔펀드가 출범하고 국민적 관심이 모이는 것을 보면서 문득 스님의 봉투가 떠올랐다"고 했다. 이어 "스님을 좋아하고 따랐던 많은 불자(佛子)들에게 (통일나눔펀드에) 동참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싶다"면서 "엊그제 스님이 마지막으로 머무셨던 강원도 오두막을 찾아 너럭바위에 절하고 (기부 계획을) 스님께 고했다"고 말했다. - chosun.com -
~ 2010년 3월 11일 오후 2시. 길상사에서 법랍 55세, 세수 79세로 입적하시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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