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는 사려 깊은 불자 되는 길
중생들의 마음속에는 ‘가아(假我)’와 진아(眞我)’
이 두 가지가 늘 함께 존재한다
. ‘가아’란 거짓된 나이며
‘진아’란 참된 나, 즉 ‘불성(佛性), 반야(般若)·생명·중도(中道)’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을 두고 마음이라고 하는데
마음은 곧 ‘나’라는 존재의 주체이며 육신(肉身)을 이끈다.
108산사순례는 부처님께 참회의 기도를 올리고, 남을 위한 보시를 하여
거짓된 나인 ‘가아’를 버리고 참된 나인 ‘진아’를 찾아
나의 육신을 바르게 이끄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108산사순례기도회’를 이끄는 목적이며 주된 원력(願力)이다.
인생은 한 생각을 ‘잘 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크게 좌우된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불가(佛歌)에서는 ‘심즉시불(心卽是佛)’ 즉 ‘마음이 부처’라고 했던 것이며
선종(禪宗)이나, 팔만대장경의 중요 골자(骨字)도
모두 ‘마음’이라 했는지도 모른다.
청담 큰스님도 인간의 마음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음은 모든 것의 주체다. 참된 마음은 아무 것에도 걸림이 없다.
부처님이나 진리에도 걸려있지 않기 때문에 이놈이 자유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천지의 근본이 마음이고 만사(萬事)의 주체가 이 마음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여의고는 만법이 존재하지 않으니
오직 마음을 의지하여 만사를 자재할 수 있는 영원무궁한 대자유인이 되어서
만중생의 구세주가 되어야 하겠다.
그리고 높고 큰 원력을 굳게 다짐하여야 할 것이다.”
내가 9년간의 대장장정인 108산사순례를 나선 것도 청담 큰스님께서 항시 말씀하셨던
‘원력(願力)을 굳게 세운다면 못할 것이 없다’는 강한 믿음 때문이었다.
나에게 이와 같은 굳은 결심이 없었다면 차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젠 절반의 장정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우리 회원 개개인들도 나와 함께 108산사순례를 반드시 회향하여
‘108염주’를 꿰겠다는 강한 원력을 마음속에 저마다 가지고 있다.
나는 이와 같은 굳은 결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회원들이
늘 자랑스럽고 부처님처럼 존경스럽다.
우리는 늘 입으로 불법(佛法)이나 성불(成佛)을 외치지만
이 모든 일들은 마음을 깨치는 공부에 지나지 않는다.
결코 마음을 깨치지 않고서는 성불은커녕
불법(佛法)을 배울 수도 이룰 수도 없다.
원래 인간은 욕망과 망집(妄執)을 함께 가지고 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괴로워하는 것은 이 두 가지에 갇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괴롭히기 때문인데 이를 버리고
마음을 정화(淨化)시키는 일이 곧 부처님의 사상이다.
물론 부처님이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스스로 고행을 통해
성불을 이루는 것에 비견(比肩)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108산사순례를 나서는 일은 부처님의 사상을 따르며
욕망과 망집에 둘러싸인 거짓된 나인 ‘가아’를 정화시켜
참된 나인 ‘진아’로 가기 위한 긴 장정이다.
또한 산사순례는 자신과 가족을 정화(淨化)시키는 것은 물론,
남을 돕고 보시를 하며 마음속의 즐거움을 구해 부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장엄하고 위대한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순례에 나서 108참회를 하는 것은 곧 마음속의 ‘가아’를 정화하여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애욕과 쾌락을 버리고
남을 위하는 사려 깊은 불자가 되기 위해서이다.
12월, 산사순례는 동해 두타산 삼화사(三和寺)이다.
긴 거리 때문에 티베트나 중국의 불교성지순례를 가는 것처럼
오랜만에 밤 열시 야간열차를 타고 이동할 예정이다.
열차여행은 버스 여행보다 즐겁고 편안하며 새로운 추억을 남긴다.
기착지인 정동진역은 아침 일출이 장관이어서 한해를 마감하고
신년을 맞이하는 우리 회원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안겨 줄 것 같다.
또한 예전, 젊었을 때 맛보았던 여행의 기쁨을 다시 한 번 만끽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번 산사순례는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빠짐없이 순례에 동참하였으면 한다.
선묵 혜자 스님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주·도선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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