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은 어떤 것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인 나름의 존재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다른 현상에 의존해서 존재할 뿐 입니다.
분노와 애착이 생길 때, 분노와 애착의 대상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굳건한 것처럼 보여집니다.
강한 분노나 강한 애착이 생길 때,
대상은 독립적이고 백퍼센트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것으로 보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분노와 집착이 감소되거나 사라지면,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감정이 달라지게 되지요.
예를 들어, 어느 커플이 결혼을 한다고 합시다.
양쪽 모두 상대방이 백퍼센트 아름답고 좋게 보입니다.
이것은 집착으로 인한 투사 때문입니다.
둘 사이에 안좋은 문제가 생기면,
아름답고 좋게 보았던 그런 강한 감정은 줄어들게 됩니다.
하지만 고민이나 분노가 사라지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부정적인 마음이 생길 때,
그 뿌리가 현상을 잘못 이해한 방식에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현상을 보여지는 대로 실체가 있다고 이해하는 것과,
현상에는 진정한 실체가 없다는 점을 인식하는 이해 방식은 서로 모순 됩니다.
이 두가지 의식은 같은 대상을 향하지만, 이해 양식은 전혀 다릅니다.
그러므로 이 두 이해방식은 서로 반대 됩니다.
진정한 독립적인 실체의 부재를 인식하는 의식은 든든한 지원과 기반을 갖춘 반면,
다른 이해방식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이 두 가지 이해방식의 차이입니다.
부정적인 마음은 모두 제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명상이 깊어지면서 분석적인 명상(위빠사나)을 하게 되면,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은 제거 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완전히 제거한 마음 상태를 우리는 "니르바나", "해탈", "적멸"이라고 부릅니다.
해탈이나 적멸은 의식이나 자기 자신이 해체되고 완전히 사라져 소멸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정적인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의미합니다.
해탈은 마음이 완전히 정화된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