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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생애 5강 / 카필라 성을 떠나며

    5강. 카필라 성을 떠나며 ◈

    종교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종교체험의 제현상』이라는 책에서
    종교에 입문하는 사람들의 유형을 크게 건강형(Healthy minded)과
    단절형 또는 병적인 형(Sick minded)으로 나누고 있다.
    건강형이란 종교에 귀의 한 것이 어떤 특별한 동기나 계기보다는
    일반적인 여건에 따라서 평범하게 된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가정에 원래 신앙이 있었다거나
    친구를 따라 절이나 교회에 갔다가
    계속해서 착실하게 다니게 되는 것 등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종교는 삶의 모든 것이 아니라 한 부분에 속한다.

    그런데 반해 단절형(병적인 형)은 이러한 평범한 신앙이 아니라,
    살아가다 그야말로 뛰어넘을 수 없는 큰 벽에 부딪혔거나,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삶에 큰 회의를 느끼고 귀의하는 경우를 말한다.
    나고 죽는 문제, 생의 무상 등은 그런 계기가 된다.
    그들에게 종교란 삶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이다.
    왜냐하면 그런 문제를 풀지 않고는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류 역사상 위대한 종교가들은 모두 이런 유형에 속한다.

    이 분류에 따른다면 부처님은 전형적으로 단절형에 속한다.
    부처님은 삶에 대한 깊은 회의로 인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어떤 삶의 의미도 없다.″고 생각하고
    그 막다른 상황에서 출가를 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개인적 배경을 살펴보면
    일반적인 기준으로 봐서 장래가 보장된 삶이었다.
    그리 큰 나라는 아니었지만 왕위 계승이 보장된 왕자였으며,
    건강하고 총명한 사람이었다.
    야소다라라는 아름다운 부인도 있었고 귀여운 아들 라훌라도 있었으니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상황을 『유연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출가하기 전에 나는 매우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내가 태어난 집에는 연못이 있었고 아름다운 연꽃도 있었다.
    방에는 언제나 전단향의 향기로운 내음이 감돌고 있었으며
    입고 있는 것은 카시 국에서 나는
    최상의 옷감으로 만든 것이었다.
    나를 위한 세 개의 별궁이 있어서 겨울에는 겨울 궁전,
    여름에는 여름 궁전, 봄에는 봄 궁전에서 살았다­­­­­.
    또 비구들이여, 다른 집에서는 하인들이나 식객들에게
    쌀겨에 소금죽을 섞어 주었지만 내 집에서는
    그들에게도 쌀과 고기로 된 식사를 주었다.


    우리들의 눈으로 봤을 때
    그 이상 행복할 수는 없는 조건을 모두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29세에 일체의 것을 모두 버리고 출가를 단행한다.
    당시 인도적 배경으로 출가가 그리 생소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 길은 모든 것을 버리고 혼자 가는 외로운 깅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이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부처님의 출가를
    ″위대한 포기(Great Renunciation)″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 모든 것을 포기하도록 만들었을까?
    그 모든 영화로운 것들을 포기하고 찿고 싶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이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불교의 모든 것이 부처님의 위대한 포기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출가의 동기를 간접적인 원인과
    직접적인 원인으로 구분해 볼 수가 있다.
    먼저 간접적인 원인으로서 싯다르타의 어머니인
    마야 부인이 생후 7일만에 돌아가신 사건을 들 수 있다.
    싯다르타는 풍습에 따라 이모인 마하파자파티에 의해 잘 양육되었지만
    심리적으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생사의 슬픔을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싯다르타의 마음속에 자리하지 못하도록
    임금인 아버지와 이모는 많은 애정과 관심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채워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람이란 그런 것이다.

    또한 싯다르타의 타고난 종교적인 감수성을 들 수 있다.
    그가 열 두살 되던 봄에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인
    춘경식(春耕式)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날은 모든 사람이 즐거워하는 날이었으나
    싯다르타는 이곳에서 충격적인 사건과 마주치게 되었다.

    싯다르타는 농부들이 힘들어하는 모습,
    쟁기를 끄는 소의 고통, 보습에 의해 벌레들이 잘려 나가고,
    어디선가 날아온 새들이 그것을 쪼아먹는 모습 등을 보았다.
    어찌 보면 이것은 대수롭지 않은 평범한 일이지만
    싯다르타에게는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궁전에서는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좋은 것, 즐거운 것만을 보게 하려는 왕의 배려에서 그랬던 것이다.

    싯다르타는 춘경식장에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었다.
    저 농부들은 왜 그렇게 힘들어할까.
    쟁기를 끄는 소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통을 받고 있을까.
    보습에 의해 몸이 잘려나간 벌레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런 생각들은 싯다르타의 뇌리에 오랫동안 남이 있었다.
    즐거움만을 알고 지냈던 싯다르타의 머리 속에
    고통이라는 단어가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끝으로 카필라 국의 정치적 위치를 들 수 있다.
    당시 인도는 강대국이 약소극을 병합해 가는 과정에 있었으므로
    카필라 성은 주변의 코살라 국 같은 큰 나라에게
    항상 침략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당시 인도인의 이상은 전륜성왕(轉輪聖王)이나
    종교적 성직자가 되는 것이었다.
    싯다르타는 전륜성왕으로서의 한계를 잘 알았기 때문에
    자연히 종교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나 하는 짐작을 해볼 수도 있다.

    싯다르타가 겪게 된 이러한 경험들은
    그가 나중에 출가를 결심하는 데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뭔지는 모르지만 항상 마음속에 남아있던 허전한,
    그것은 종교적 감수성과 결합되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산처럼 조용히 쉬고 있었다.

    싯다르타가 출가를 결심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생노병사의 문제에 대한 실존적 고뇌와 그에 대한 통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이른바 사문유관(四門遊觀)이다.
    즉, 싯다르타가 동서남북의 네 문을 통해
    바깥세상을 구경하게 되는 일을 말한다.
    이 일은 싯다르타의 마음 속에 잠자고 있었던 화산이
    폭발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하루는 싯다르타 일행이 동쪽 문을 통해 나들이를 갔다가
    성문 밖에서 한 노인을 만나게 된다.
    노인의 얼굴은 주름투성이였고 허리는 구부러진 채
    겨우 지팡이에 의지해 쓰러질 듯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궁전에서는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던 싯다르타는 시종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이에 시종은 나이가 많이 든 사람이라고 했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 저렇게 되느냐?"

    "예. 누구도 나이를 먹는 것으로부터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시종의 말을 듣고 싯다르타는 수레를 돌려 궁으로 돌아와 버렸다.

    다음은 남쪽 문을 통해 나들이를 갔을 때의 일이다.
    길거리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 싯다르타는 또 누구냐고 물었다.
    그가 병자라는 것을 알고 다시 물었다.

    "누구나 병이 들면 저렇게 되느냐?"

    "예. 누구도 병으로부터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싯다르타는 다시 수레를 돌려 궁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 다음은 서쪽 문을 통해 나들이를 갔을 때의 일이다.
    그 때 사람이 죽어 거적에 덮여 나가는 주검을 보고 시종에게 물었다.

    "누구나 죽게 되느냐?"

    "누구도 죽음으로부터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그는 다시 수레를 돌려 궁으로 돌아와 버렸다.
    미음 속에 깊은 고뇌를 간직한 채.

    마지막으로 북쪽 문을 통해 나들이를 갔다가
    출가한 사문을 만나게 된다.
    그는 비록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싯다르타는 그 모습에 마음이 끌리어
    그가 누구냐고 물으니 출가한 사문이라고 했다.
    이때 싯다르타는 자신도 출가해서
    진리를 찿는 수행자가 될 결심을 마음 속에 굳혔다고 한다.

    이 사문유관의 이야기는 극적인 표현이지만
    출가를 결심하게 되는 직접적인 동기가 잘 나타나 있다.
    싯다르타는 다른 사람의 나이든 모습을 통해
    자신도 나이먹지 않으면 안 되는 실존을 통찰할 수 있었고,
    또한 다른 사람의 병들고 죽어가는 모습을 통해
    자신도 병들고 급기야 죽어야만 하는 생사의 문제를 꿰뚫어 본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 부족한 것이 없는 싯다르타였기에
    늙고, 병들고, 죽는 문제와는 무관한 것처럼 보였다.
    또한 그는 젊음과 건강이 넘쳐 있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러했다.
    그러나 삶에 대한 실존적 고뇌와 깊은 통찰을 통해 싯다르타는
    노병사의 근원적인 문제 속에 던져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는 더 이상 궁에 남아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밤중에 몰래 아버지와 아들을 남겨 두고 카필라 성을 떠나게 된다.

    카필라 성을 떠나기 전 싯다르타의 생활은
    일반적인 눈으로 보아서는 매우 행복한 삶이었다.
    부족할 것 하나 없이 모든 것을 갖춘 왕자로서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깊은 통찰을 통해
    돌이킬 수 없는 유일한 시간 속에 던져진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되었으며,
    이러한 통찰이 일체를 버리는 ″위대한 포기″, 즉 출가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유연경』에 보면 부처님이 출가하기 전 자신의 삶을 회상하는 내용이 있다.


    비구들이여, 나는 행복했고
    티끌만큼의 괴로움도 몰랐지만 이런 생각을 했다.
    어리석은 범부는 스스로 늙어가면서
    남이 늙는 것만 보고 자신의 일은 잊은채 그 늙음을 혐오한다.
    자신 또한 늙어 가는 몸이다.
    아직 늙음에서 벗어날 길을 모르면서 남의 늙음을 혐오해도 되는가?
    이는 결코 마땅한 일이 아니다.
    비구들이여 내 생각이 이에 미치자
    내 청춘의 교만은 산산히 무너지고 말았다.

    병들지 않을 수 없는 몸이면서 다른 사람의 병을 혐오하고,
    죽지 않을 수 없는 몸이면서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고 눈길을 돌리는 것은
    결코 마땅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
    나의 건강에 대한 교만은
    산산히 부서지고 생의 교만도 티끌처럼 날아갔다.


    이러한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위대한 포기″를 결행했던 싯다르타의 모습을 여실히 볼 수 있다.
    그는 드디어 스물아홉 살에 출가를 단행하게 된다.
    마침 부인 야소다라와의 사이에서 아들 라훌라를 얻어
    대를 이을 수 있었기 때문에 마음은 한결 가벼웠으리라 생각된다.

    싯다르타는 모든 사람이 잠든 카필라 성을
    마부 찬다카가 이끄는 칸다카란 말을 타고 떠닌다.
    한 경전에서는 부처님의 출가 장면을 아주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부왕과 아내와 아들이 잠든 사이 정든 카필라 성을 떠나면서
    싯다르타의 고개는 자꾸 성을 향해 돌려졌다.
    그런데 갑자기 싯다르타와 카필라 성 사이에 한 언덕이 나타나
    더 이상 돌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이것은 실제로 언덕이 생겼다기보다는
    더 이상 고향을 되돌아보지 않겠다는
    싯다르타의 생각을 나타낸 것이라고 여겨진다.
    정에 이끌리는 마은을 단호하게 돌리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모름지기 출가는 이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참된 출가야말로 어줍잖은 것으로부터
    단호하게 고개를 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욕심내고 성내며, 어리석은 우리의 삶으로부터
    단호하게 시선을 거두는 것이 참된 출가라는 것이다.

    침된 출가는 몸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바르게 섰는가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몸으로 하는 출가[身出家]가 아니라
    마음의 출가[心出家]가 분명해야 참된 출가라는 것이다.
    발심(發心)이 되지 않은 채 겉모습만 달라지고 거처만 옮기는 것과 같이
    외형적인 것만 변하는 것은 가출(家出)일 뿐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카필라 성을 떠나는 젊은 싯다르타의 모습에서
    이것을 읽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일체의 모든 것을 버린 부처님의 출가는
    그저 과거의 한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의 삶에서 의미있게 살려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오늘이야말로 부처님의 출가 정신이 더욱더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는 불자뿐만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살려는 모든 삶들에게 필요한 정신이다.

    출가란 집을 버리고 산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사사로운 일에 매달려 욕심내고 다투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로부터 시선을 돌리는 일대 방향 전환이 바로 출가이다.
    우리를 얽어매는 낡고 묵은 것들을
    훌훌 털고 놓아 버리는 것이 출가이다.
    따라서 출가는 우리들 삶의 마당에서 순간순간 실현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출가절(出家節, 음력 2월 8일)을
    사찰의 중요한 행사로 기념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출가절의 의미를 불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 출가정신(出家精神)을 새기고 살렸으면 한다.

    그러면 우리는 출가절의 의미와 출가 정신을 어떻게 살려내야 할까?

    첫째, 출가절을 자기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해
      위대한 포기로서 진리를 향한 출발을 하였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이 자심을 정직하게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잠시 분주했던 마음을 놓고
      ″과연 내가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고, 바른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반성 없이 우리의 삶이 심화되고 넉넉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자기 성찰을 통해 잘못된 것은 단호하게 물리치는 일,
      이것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출가이다.

    둘째, 출가절을 마음을 대청소 하는 날로 살려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마음속에 대단치도 않은 일들을
      너무 많이 쌓아 놓고 살아간다.
      출가절을 맞이하여 그것들을 한번에 다 털어 버리는 것이다.
      터무니 없이 허황된 욕심, 의롭지 못한 생각, 분수에 맞지 않는 생각,
      미워하는 마음, 분노의 마음, 슬픈 마음,
      이런 것들을 한번에 다 쓸어내는 것이다.
      이럴 때 날마다 새로운 날, 날마다 좋은 날이
      우리 앞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출가 정신을 잘 살리기 위해서는 내 이웃,
    모든 생명과 함께 나누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부처님 혼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받는 모든 중생을 건지기 위해 출가하셨다.
    율장(律藏)에 보면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체의 생명이 생사의 수레에 매여 고통받고 있지 아니한가.
    나는 그를 구하기 위해 출가하였노라."

    부처님은 왕자로서 기득권이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무소유의 삶으로 돌아가 일체의 생명과
    모든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았다.
    따라서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실천을 통해서
    부처님의 출가 정신은 우리들 삶 속에 살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정토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출가 정신이 제대로 실천되는
    우리들 삶의 마당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2019.06.24 23:15:51 | 내 블로그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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