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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봉 曉峰선사 / 정진오도




*** 효봉노스님  정진오도(精進悟道) ***


** 1926년(丙寅年: 39세)
* 하안거(夏安居)에는 남방의 선지식(善知識), 용성(龍城) 대선사를
친견(親見)하기 위해서 경남 양산의 천성산(千聖山) 내원암(內院庵)까지
운수행각(雲水行脚)을 하다.

* 동안거(冬安居)에는 북방의 선지식인 수월(水月) 대선사를 친견하기 위해, 만주(滿洲)땅 북간도(北間道)까지 운수행각을 하다.

<* 눈 밝은 선지식을 찾아 머나먼 운수행각 끝에 다시 금강산에 돌아왔다.
천근만근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심신(心身)이 경쾌했다.
오직 진아(眞我)의 발견(發見)과 완성(完成)을 위해 매진하기로 다짐하였다. 대장부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요달하기 위한 뚜렷한 목표가 설정되었다. 그 간 눈 밝은 명안종사(明眼宗師)를 찾아뵙는 것도
오로지 견성성불(見性成佛) 만을 위함이었다.>

** 1927년(丁卯年: 40세)
* 금강산 신계사 미륵암(彌勒庵)에서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다.

<* 스님에게는  "엿장수 중 "으로 늦게 출가 입산(出家入山)했기 때문에
 "늦깎기 중 "이라는 별명(別名)이 생겼다.

예나 지금이나 늦깎기로써 여법히 수행 정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공부(工夫)는 스스로 자성자오(自性自悟)하고,
실참실오(實參實悟)해야 된다는 것을 절감하고
스님은 금강산으로 돌아와 용맹정진하기를 거듭 다짐하였다.>

** 1928년(戊辰年: 41세)
* 금강산 신계사 보운암에서 장좌불와(長坐不臥) 용맹정진을 하다.

<* 피나는 용맹정진 끝에 견처(見處)가 있었다.
이를 은사스님에게 말씀드리자,
은사스님의 환한 미소와 점두로  "운봉(雲峰) "이라는 법호(法號)와 함께
다음과 같은 사좌전송(師佐傳頌)을 받았다.
이것이 스승과 제자간에 서로 전수한  "전법게(傳法偈) "다.>

* 西來密旨

不傳受法 示雲峰元明禪師

春至百花爲誰開 東行不見西行利
白頭子就黑頭父 兩個泥牛戰入海

봄이 오니 온갖 꽃, 누굴 위해 피는고
동으로 가면 서로 가는 이익 보지 못하리
흰머리 아들이 검은머리 아버지께 나아가니
두 마리 진흙 소가 다투다 바다에 들어가네.

世尊應化 2555年(1928年) 戊辰 1月 15日
金剛山 神溪寺 普雲禪院 恩法道友 林石頭 說

** 1929년(乙巳年: 42세)
* 금강산 온정리(溫井里) 온천인근의 과수원에  "여여원(如如院)선원 "을
마련하고 장좌불와 용맹정진을 하다.

<* 스님은 가는 곳마다 장좌불와 용맹정진을 계속하였다.
좌선 중에는 한번 앉으면 절구통 처럼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절구통 수좌 "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던 스님에게 하루는 뜻 밖에 돌연변이가 일어났다.
좌선 중에는 결코 미동도 하지 않던 스님에게 하루는 이변이 생긴 것이다.
어간에 앉아 창 밖을 향해 정진하던 스님이
갑자기 자리를 옮겨 돌아앉아 면벽한 것.
뒷날 알게 된 일이지만,
평소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과수원 속에 있는 선원이라,
스님은 늘 창 밖을 향해 앉아 정진하였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출입금지 구역인 선원에 갓 결혼한듯한
신혼부부가 나타나 이리저리 서성거리지 않은가!
의아한 생각에 다시 한번 처다 봐도 어쩐지 낯설지 않은 얼굴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8년 전,
집에 두고 떠나온 장남 (長男)의 모습이 분명하였다.

스님은 그 순간 자신도 모른새 그만 벽을 향해 돌아앉았다.
도심(道心)이 인정(人情)을 등진 것일까!

여여원 선원은 북간도(北間島) 용정(龍井) 사람인
일허(一虛) 김현(金玄)거사가 금강산을 참배하려 왔다가
금강산 도인이라던 석두 선사를 친견한 후,
공부하는 선객을 위해 지은 토굴이었다.
김현 거사의 이모님은 독립투사의 부인으로 불심이 장한 신도였다.
그는 여여원 뒤 편에 독립투사들이 은밀히 오갈 수 있는 은신처를 마련해
보살피면서 조국의 독립을 간절히 염원했던 숨은 독립투사였다.>

** 1930년(庚午年: 43세)
* 금강산 신계사 법기암(法起庵) 뒤에 무문관(無門關) 토굴을 마련하고
 "3년결사(三年結社) " 에 들어가다.

<* 제방의 선지식을 친견해 봐도,
대중처소인 선원에서 대중들과 함께 정진해 봐도,
스님의 마음은 결코 시원치가 않았다.

이 일은 부처님이나 보살이라 해도 결코 나를 대신할 수가 없고,
설혹 스승이나 부모형제라 할지라도 어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설사 절친한 도반이나 눈밝은 선지식이라 해도 나를 대신해줄 수 없었다.
하기에 재출가(再出家)하는 마음으로 재 발심(再發心)하여
용맹정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님은 은사스님께 이같은 간절한 뜻을 말씀드리고,
 "3년결사(三年結社) "에 들어가기를 다짐하였다.
신계사 법기암 뒤 양지바른 곳에 토굴터를 잡았다.
아담한 통나무 단칸방을 마련하였다.

함석지붕으로 풍우를 피하도록 하고,
하루 한끼 공양으로 바리때만 드나들 수 있는 창구와
방 한쪽 구석에 대소변을 볼 수 있는 구멍만을 내놓았다.

토굴에 들어 간 후,
그 출입문마저 흙으로 발라 버리도록 했다.
그야말로 사방이 꼭 막힌  "무문관(無門關) " 토굴이었다.
깨닫기 전에는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 나오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로
무문관 토굴에 들어간 것.

입은 옷에 좌복 3개뿐,
가지고 들어간 살림살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인간의 기본적인 삶마저 저버린 필사적인 용맹정진이 시작되었다.

마치 싯달타 태자가 6년 고행 중 보리수 나무밑
금강보좌(金剛寶座)에서 맹세했던 것처럼,
스님도 금강과 같은 결심으로 대용맹심을 발한 것이다.

그때 은사이신 석두 스님께서는 신계사 법기암에
전답(田畓) 30두락을 사들여 놓고,
그 당시 법기암 암주(庵主)였던 임대원(林大願) 비구니스님에게 부탁하여
3년 결사기간 동안 스님의 하루한끼 공양을 극진히 시봉토록 주선하였다니, 제자를 위한 스승의 그 큰 은혜를 어찌 다 헤아릴 수가 있으랴!>

** 1931년(辛未年: 44세)
* 일일일식(一日一食) 장좌불와 용맹정진을 계속하다.

<* 깨닫기 전에는 죽은 한이 있더라도 결코 토굴 밖으로 나오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피나는 정진이 계속되었다.

사시공양으로 하루 한끼만 먹고 자리에 눕지 않은
1일1식 장좌 불와 용맹정진이었다.
오로지 장부의 일대사인연인 본참공안(本參公案)을 타파키 위한 일념 뿐.
하루하루가 지나고,
달이 바뀌며 춘하추동 사계절이 변하여 갔다.
춥고 더운 것도 잊는지 이미 오래었다.
다만 하루 한 때 사시공양이 들어오는 창구가 밝아지면 날이 새였나 싶었고,
어두워지면 밤이 되었나 여겼다.

이렇게 또 해가 바뀌고
봄이 오고 여름이 왔다.
온 산천에 단비가 포근히 내린 어느 여름 날 아침!
마침내 토굴 벽이 무너졌다.

이젠 그만 나가도 되겠다는 확신으로 토굴 벽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
천근 만근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심신이 가벼워졌다.

온갖 것들이 싱그럽게 빛나고 있었다.
1년 반 동안 자란 텁수룩한 머리와
바싹 여인 몸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걷은 걸음걸이라 어린애 마냥 비틀거렸다.
그러나 안색만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조용한 폭풍과 같은 사자후(獅子吼)가 터져 나왔다.

스님의 오도송(悟道頌)이였다.
이렇게 스님은 법희선열(法喜禪悅) 속에 밝은 빛으로 다시 태어났다.>

*  "오도송(悟道頌) "을 읊다.

海底燕巢鹿抱卵 火中蛛室魚煎茶
此家消息誰能識 白雲西飛月東走

바다 밑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
타는 불 속 거미집엔 고기가 차 달이네
이 집안 소식을 뉘라서 알랴
흰 구름은 서쪽으로 달은 동쪽으로





~ ♪ You Needed Me ♪ ~
2020.03.08 18: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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