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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심의 공덕은 측량할 수 없나니 삼세 일체 부처님을 만들어내고 세상 모든 즐거움을 이루어 내며 일체의 수승공덕 증장시키고 일체 모든 의혹은 길이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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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 오현 큰스님 법문

무산 오현 큰스님


불명 무산(霧山)

법호 만악(萬嶽)

자호 설악(雪嶽)

1932년 경남 밀양에서 출생

1958년 문성준 스님께 득도

1959년 직지사에서 문성준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수지

1968년 범어사에서 유석암 스님을 계사로 보살계수지

1968년 범어사에서 유석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수지 

제4회 현대 시조문학상 수상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회주 겸 신흥사 주지

(사)만해사상실천선양회 이사장

저서: 시집 '절간 이야기', '심우도', '죽는 법을 모르는데 사

  는 법을 어찌 알랴'외 다수.

 

 

삼보에 귀의 하옵고...

오현 큰스님께서 영남불교대학 관음사에서 설하신 법문입니다.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_()_


[ 법문 ]


여러분은 복이 참으로 많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바른 스승 만나기 어렵다고 했는데 여러분은 사람으로 태어나 바른 선생

우학사주님을 만났으니 여기에 더 바랄 것이 뭐가 있습니까?


『저거는 맨날 고기묵고』, 이게 어디 책 제목이 됩니까? (좌중 웃음) 솔직히 말하면

좀 우습다기 보다는 함량미달이라는 느낌을 갖습니다. 어리광 같기도 하고 투정 같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책을 지은 저자가 우학사주라고 하니 또 정감이 가는 겁니다.

마치 성철스님의 ‘중한테 속지 말라’고 한 속된 말이 화두가 되듯이 우학사주님의

책이름 『저거는 고기묵고』가 여러 사람에게 감동으로 또 법어로 가슴에 와 닿는

것은 그만큼 우학사주께서 정법을 바르게 설하고 바르게 수행을 하셨다는 증겁니다.


법문을 듣다보면 이미 다 들은 이야기, 경전에서 읽어서 다 아는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하품도 나오고 지루할 때가 많습니다.

법사가 법상에 오를 때 보면 금방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질 듯 한데 좀 듣다 보면

졸음이 옵니다. 그러나 하품이 나오고 졸음이 와도 들어야 합니다.


이천년 전에 핀 진달래와 올해 핀 진달래가 빛깔이 다를 수가 없듯이 이천년 전

부처님 말씀이 오늘에 와서 달라지지 않으니 법문도 매양 듣던 그 법문이라, 그 말이

그 말이라 만약에 달라지면 오히려 법문 설하는 사람의 말이 오히려 더 위험합니다.

그러므로 법문은 불조佛祖의 말씀을 근본으로 합니다. 법사에 따라서 표현은 조금씩

달라도 내용은 같습니다. 아무개 스님 못한다는 소리와 아무개 스님 잘한다는 표현도

합니다. 하지만 그건 음식 맛이 조금 다른 것과 같습니다. 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만드는데 공양주 손끝에 따라서 맛이 있기도 하고 맛이 없기도 합니다.

그러나 재료가 같고 영양가는 똑 같다는 것입니다. 음식 맛이 없어도 만든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 먹어줘야 하듯이(좌중 웃음) 법문이 졸리더라도 좀 참고 들어줘야 하니

제 말도 재미가 없지만 좀 듣는 척 해달라는 부탁의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음식의 간을 맞추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더구나 이곳처럼 천명 이상 모이면 짜게

먹는 사람, 싱겁게 먹는 사람 등 간 맞추기가 보통일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저는 오늘

대중적으로 좀 싱겁게 하겠으니 간이 안 맞는 불자님들은 간을 맞춰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좌중 웃음)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어느 때 여행을 하시다가 한 무더기의 뼈를 보시고는

걸음을 멈추시고 큰 절을 올립니다. 그 때 옆에 있던 한 제자가 ‘부처님이시여,

거룩하신 분이 무슨 까닭으로 뼈 무더기에 절을 올리십니까?’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너희들이 보기에는 뼈 무더기일 뿐이지만 이 뼈 무더기의 주인이

과거 전생 나의 부모일 수도 있고 형제 또는 일가친척, 이웃, 제자, 도반, 내지

스승일 수도 있다’고 말씀하시고는 그 뼈 무더기를 화장하시고 그 주위를

청정하게 치웠습니다. 이것은 아함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천도를 왜 해야 하며 천도가 얼마나

좋은 일인가를 마음 깊이 새겨들어야 합니다.

사실 저에게도 좀 별난 신도들이 와서 ‘천도재는 왜 지냅니까? 사람들이 죽으면

그만이지 귀신이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하는 때가 있습니다.

저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앞에서 말씀드린, 부처님께서 뼈 무더기를 천도하신

경문을 읽어주고, 그리고 이미 여러분도 너무 잘 알고 계시는 백장야호(百丈野狐)

이야기를 해 줍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그 옛날 중국의 백장선사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그날은

공양하지 않고 굶으셨습니다. 그 백장선사께서 설법을 하실 때마다 백발노인이

법당 구석에 앉아 고개를 수그리고 법문을 듣고 가곤 했답니다. 그런데 하루는

법문이 끝나도 가지 않고 백장선사를 찾아와 개인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도 바로 전생에 승려였는데 누가 와서 묻기를 ‘수행하는 승려도 인과因果에

떨어집니까?’ 하고 묻기에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대답을 해서 그만 여우의

몸을 받았다고 말하고는 ‘지금 바라옵나니 백장선사께서 한 말씀을 내려 깨우쳐

주십시오’ 했습니다.

그러자 백장선사께서 다시 물어보라 하니 노인이 ‘수행승도 인과에 떨어집니까?’하고

공손하게 물었습니다. 백장선사는 아주 근엄하게 ‘인과에 어둡지 않느니라’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그 노인이 백장선사의 말씀에 크게 깨닫고는 ‘저는 이미 여우의 몸을 여의었습니다.

이 산 뒤에 죽은 시체가 있으니 죽은 승려의 법식대로 장례를 치러 주십시오’ 하고는

사라졌다고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백장선사가 제자들과 함께 산속으로 가보니

시체가 있어서 그 노인의 유언대로 망승의 예를 다하여 정성껏 다비를 하고 천도를

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선방 스님들이 읽는 책, 선문염송禪門拈頌 등에 전합니다.

우리는 이 짧은 동화 속에서 굳이 다른 법문을 듣지 않아도 천도를 왜 해야 하는지,

인과가 무엇인지, 왜 법문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지 그 까닭을 깊이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사중 스님들께서도 자리하시고-


여러분들은 이미 법문을 많이 들어서 잘 아시겠지만 천도는 영가에게 부처님말씀을

들려주는 의식입니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청해서 영가를 부처님께 떠맡기는

의식입니다. 사람들이 운명했다하면 스님들이 가서 무상계, 금강경 등 경을 읽어주지

않습니까? 

그리고 요령을 떡 들고는 숙연하게 염불을 하면서 영가에게 가르치지요.

이런 것이 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그렇지 해석을 하면은 이렇습니다.

우리 본래의 영은, 우리 마음의 근원은 고요적적하고 적적하다 못해 아주 담적해서

그 모양은 밝고 둥글어. 그래서 선가귀감 같은 곳을 보면 제 1페이지에 ‘이름 지을 수도

모양 그릴 수도 없다’ 고 하고, 무거무금無去無今이라 과거도 현재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 것들이 한문으로 되어있고 목탁과 요령소리가 겹쳐서 잘 알아듣지 못하지만

불경 중에서 제일 좋은 말을 골라서 영가한테 차근차근 가르쳐 주는 것이 재齋입니다.


어떤 법문을 주로 많이 하는가 하면,

‘과거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미래에 태어날 사람이나

영가야, 너만 가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태어나면 늙고 병들어 가게 되어있다.

네가 지금 죽은 것이 아니라 피골 등으로 된 육신을 벗어났을 뿐이다. 이 몸뚱아리 갖고

있을 때 우. 비. 고. 뇌. 근심. 걱정. 질투. 시기. 모함이 얼마나 많았느냐?

세상살이 모든 고통 벗어나 부처님 설법 듣고 부처님 불계 받으니 얼마나 기쁘고

즐거우냐? 석가모니 부처님도 설산동자 시절에 적멸위락寂滅爲樂이란 이 법문 한 말씀을

듣기 위하여 나찰귀한테 몸을 던져버린 적도 있지 않느냐? 이 세상 살 때 맺은 인연,

원결 악연 다 풀고 부처님 따라가 부처님 말씀 잘 듣고 생사고통 없는 안락을 얻어라.

본래 적적 담적한, 고요적적한 그곳이 너의 본래 고향이니라‘

이러한 부처님 말씀을 전하여 영가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어 생사해탈을 얻게 하는

의식이 천도재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그래요, 산 사람도 잘못 알아듣는 한문으로 된 경문을 영가가

과연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하는데 그런 생각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속담에

‘귀신같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귀신은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대육신 몸 가꾸느라고 마음 닦을 여유가 없어요,

입으로는 삼일수심三日修心은 천재보千載寶요. 백년탐물百年貪物은 일조진一朝塵이라

이렇게 염불을 하면서도 정작 천재보는 잊고 일조진에 마음을 다 쏟고 삽니다.

저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러나 영가는 몸이 없으니 한 생각만 일으키면 찰나에

천리도 가고 만리도 갑니다.


옛날 중국의 어떤 선비가 과거를 보러 가는데 중도에서 과거보러 가다가 동상에 걸린

또 다른 선비를 만났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이지만 동상 걸린 그 사람을 두고 갈 수가

없어서 그 동상을 치료해 주느라 날짜를 잊고 넘겨버려 과거를 못 봤습니다.

그래서 둘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헤어지면서 아무 날 우리 한번 만나자고 약조를

했습니다. 그런데 거리가 굉장히 먼 곳이었습니다.

찾아 가기로 했던 동상 걸린 선비가 먹고 사느라 그 날짜를 잊어 버렸다가 만나기로

한 그날 그 약속이 떠올랐습니다. ‘아, 그 친구가 나 때문에 과거도 못 봤는데

이런 약속을 못 지키면 나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 생각을 했지요. 그러나 비행기도

전화도 자동차도 없던 시절에 그 먼 곳을 어떻게 가겠어요?

시간 약속을 도저히 못 지키지요.


한편 한 친구는 멀리서 올 친구를 기다리며 음식을 차려놓고 있는데 친구가 왔어요.

왔긴 한데 보니까 형체가 없어, 그 친구가 하는 이야기가, ‘내가 처자권속 데리고

살다보니 약속날짜를 깜빡 잊어서 미안하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귀신은 천리를

간다는 소리를 듣고 내가 몸을 버리고 왔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몸을 버린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저도 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법문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대중-


그러니까 귀신은 한 찰나에 온갖 것을 다 보고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업을

버리지를 못해요. 부처님 말씀도 잘 듣지 않고 자기가 지은 업을 따라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업을 버리라고 스님들은 여러분이 몰라서 그렇지 매일 천도를

합니다. 절마다 사시불공 올리고는 축원을 합니다. 축원문을 들어보면 먼저 신도

시주자 축원을 하고는 선망부모 누대종친은 말할 것도 없고 하룻저녁에 만 번 살고

만 번 죽는 모든 중생들이 모든 업장 버리고 잘 가라고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공양을 할 때도 오관게를 하고 축원을 합니다.

대중이 많을 때는 발우공양을 하면서 고성으로 여러 스님들이 같이 하지만 혼자

공양할 때도 마음으로 이 음식이 온 것을 관하고, 이 음식을 덕행이 부족한 내가

먹을 자격이 있는가를 관하고 이 음식을 먹는 것은 몸을 살찌우기 위해서가 아니고

도업을 닦기 위해서 임을 관하고 이 음식이 나에게 오기까지 수고한 모든 분에게

축원을 하고 먹습니다.

과일 한 쪽을 먹을 때도, 나무가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열매가 맛이 들어 내 몸에

자양이 되기까지를 명상하고 모든 공덕을 시주자의 선망부모 누대종친, 영가까지

천도축원을 해주고 먹습니다.

얼핏 보면 스님들은 먹고 빈둥거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위해

불공하고 천도하고 법문하는 겁니다. 영남불교대학 학생신도 여러분의 가정에 날마다

좋은 일만 있으라고 우학스님이 ‘저거는 고기 먹고, 저거는 장가가고, 저거는 시집가고,

나는 고기도 못 먹고 내 혼자 우째 살꼬?’ 어찌 보면 투정같은 화두를 던져놓고는

절을 짓고 천도하고 법문해 주는 것입니다. 그냥 웃을 일이 아니예요.

이 절이 아무리 크고 좋다한들 우학스님이 고기 없는 밥 세 그릇 이것 외에

더 먹을 것이 뭐가 있습니까? 이 절을 팔아서 고기 먹고 장가가고 시집가겠습니까?

우학스님이 여기 앞에 계시는 것 같은데 한 번 쳐다보십시오. 누가 어떤 눈 먼 여자가

우학스님에게 시집오겠습니까? (좌중 웃음)

사실 저는 이렇게 우학스님보다는 조금 더 잘나도 시집오겠다는 여자가 없었는데

저렇게 못난 스님께(대중들 폭소) 아, 웃을 일이 아닙니다, 누가 시집와서 고생하겠어요?

거 우리 속담에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키고 못난 중이 절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 졸지 말라고 내가 우학스님 흉 좀 봤습니다.


아무튼 크고 작은 불사가 따지고 보면 다 천도입니다. 절 지을 때 쓰는 시멘트 한 포대,

한 장 기왓장에도 영가 축원이 깃들어 있습니다.


일제 때 부산 석암사 혜월스님께 어느 때 어떤 신도가 천도를 해 달라며 소 한 마리

값을 주고 갔습니다. 이 이야기를 여러분은 많이 들어봤을 거예요.

혜월스님은 싱글벙글 웃으며 시장 보러 가는 길에 길가에서 어깨를 들먹이며 울고

있는 젊은 여자를 봤습니다. 혜월스님이 그 여자 가까이 가서 우는 이유를 물어봤더니

그 여자는 빚더미에 집이 넘어가 돌아갈 곳이 없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혜월스님은

소 한 마리 값을 몽땅 그 여자에게 주고 허영허영 절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날 재주가 절에 와서 보니 영단에 공양도 떡도 과일도 올려져 있지 않고

혜월스님 하신다는 법문이,

‘영가야, 배고프냐? 너 먹을 것은 집 없는 불쌍한 사람에게 다 줬다. 조금만 참거라.

내일 모레 큰 재가 있다, 그 때 너도 청할 테니 실컷 먹고 가거라. 너 전생의 빚을

갚은 것이지 그냥 준 것은 아니다. 빚을 갚고 나니 얼마나 좋으냐? 빚이 있으면 빚쟁이

등쌀에 못산다. 괴롭다.’ 이러고 있었는데 그 신도님도 보통 신도님이 아니라

그 후 선암사에 아주 대시주를 했다고 합니다.

그 영가도 업보를 벗었다고 자기 가족에게 선몽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영가를

위해 적선을 해 주는 것이 바른 천도법이라는 의미가 조금 숨어 있습니다.


경전에서는 선인선과 악인악과라고 하여 착한 일을 하면 착한 그림자가,

악한 일을 하면 악한 그림자가 그 사람을 따라 다닌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본인하고 관계없이 어디 가서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소문이 그곳에 남아있고

나쁜 짓을 하면 나쁜 소문이 그곳에 남아있습니다. 이것을 업이라고 하는데 이 업을

삶의 그림자, 행위의 그림자라고 합니다.

이 삶의 그림자는 이승에만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저승까지 따라 갑니다.

이 세상에 살다가 저승에 갈 때는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고 따라 가는 사람도 없지요.

처자권속도 누가 따라 갑니까? 너 없이는 못산다고 부부가 매양 그래도 신랑 죽고 나면

시체라고 그 다음날 불에 태우거나 갖다 묻어 버리거든요,

오직 이승에서 살았던 내 삶의 그림자, 행위의 그림자는 오지 마라 그래도 따라옵니다.

이 행위의 그림자를 벗어나야 윤회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고득락離苦得樂 합니다.

그래서 나쁜 업에서 벗어나라고 계를 설하고 경전을 열고 많은 제불보살을 청하고

염불을 해 주는 겁니다.

그리고 재주가 영가를 위해 대승경전을 구입해 많은 사람들이 보게 널리 법보시를

하고 적선을 하는 겁니다. 날마다 해마다 천도재를 지내는 것은 영가가 지은 업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죽을 때까지 재를 지내 주는 겁니다.

칠월 백중에만 천도를 하는 날이 아닙니다. 물론 백중날은 요즘말로 하면 영가한테는

‘부처님 오신날’쯤 됩니다. 부처님 오신 날 되면 정부에서 감옥에 있는 사람을 가석방

많이 시켜 주듯이 백중이면 절마다 법회를 많이 하고 부처님 전에 많은 불공을

드리니까 영가들이 누리는 혜택이 많다는 것 뿐이지 축원도 재도 매일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결국은 죽어야 합니다. 죽고 나면 살아있는 스님들이나 절에서

천도해 줄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천도되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이 몸 받고

불교 만났을 때 업장 다 소멸하고 가야 합니다. 이 살기 어려운 세상에 그게

가능할까 싶지만, 발원을 하면은 됩니다.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어야 합니다.

발원은 무언가 되고 싶다는 원입니다. 이걸 발원이라 하거든요.

산에 있는 나무도, 풀도 꽃을 피우고 싶고 열매를 맺고 싶습니다. 하물며 사람으로

태어나 불교까지 만나 어영부영 살다가 업에 이끌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냥 어느 날 가는 지도 모르고 따라가긴 좀 억울하지 않습니까?

돈도 좀 많이 모으고 출세도 좀 하고 살다가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어디에서 이런 말을 했더니 어떤 신도가 뒤에서 말하길, ‘저 스님은 스님도

아닌 갑다. 부처님은 무욕청정 무소유라 가르쳤는데 중도 아닌 갑다. 이렇게 입을

삐죽거리는 것을 봤다면서 다른 데 가서는 신도들 보고 돈 벌라는 소리는 하지

말라고 귀띔 해 주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씀입니다만 우리 불교에서 ‘무욕청정 무소유’라는 말은

이 세상에서 내가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불가득不可得이란

말을 깊이 깨닫고 집착하지 말란 뜻이지 아무것도 갖지 말라는 그런 뜻은 아닙니다.

길거리의 거지, 노숙자가 무소유자입니까? 무욕청정한 사람이 아니예요.

토정선생이 말했어요. 세상에서 제일 고귀한 사람은 벼슬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능히 벼슬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하지 않아야 고귀한 것이지,

벼슬은 하고 싶은데 능력이 없어 하지 못하는 사람은 천박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재물도 능히 가질 수 있는 사람이 가지지 않을 때 무욕청정하고 무소유한

사람이지 갖고 싶은 데 못 갖는 사람은 바보 아니예요?


염불하실 때 많이 들었지 않습니까? 백의관음무설설白衣觀音無說說

남순동자불문문南巡童子不聞聞, 백의관음은 설하는 바 없이 설하고 남순동자는

듣는 바 없이 듣는다.

이와 같이 소유하는 바 없이 소유하고 버리는 바 없이 버리는 것이

무소유이고 무욕청정입니다.


최근 세계에서 제일 부자인 사람이 우리 돈 37조원을 사회에 내어놓고 자식에게

유산 물려주면 자식인생 망친다며 물려주지 말라고 한 신문기사를 읽은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읽었을 게요. 이 부자도 불교에서 말하는 불가득의 이치,

이 세상에서 영원히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것,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철저히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 깨달음이 무욕청정한 사람이 그런 돈을 벌어들이기도 하고 남을 주기도 하는 겁니다.


이것을 중국 고대 선사들은 일방일수라는 말로 씁니다. 거둬들일 때는 능히 거둬들이고

버릴 때는 능히 버립니다. 거둬들인다는 생각도 없고 버린다는 생각도 없어,

그래야 돈도 많이 법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욕망과 소유는 다릅니다. 우리가 욕망 버리라, 탐진치 버리라

하는 것은 소유와 다릅니다.

그런 큰 부자, 무욕청정한 부자가 되려면 여러분들은 발원을 해야 됩니다.

절에 와서나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나는 무엇이 되고 싶어’야 합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

학자, 예술가가 되고 싶다, 부처가 되고 싶다, 이름을 얻고 싶다, 하다못해 찹쌀떡

장사라도 하고 싶다는 발원이 있어야 불보살님의 가피가 있고

소원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매일 절에 와서 스님 눈치 좀 보고, 옆 신도 눈치 좀 보고,

시주금을 내가 요거 내 가지고 되겠나, 조금 더 낼까? 축원해주기나 기다리고

이러는 건 잘못된 거거든?

크게 원을 세우면 크게 얻고 작은 원을 세우면 작게 얻는 것 아닙니까?

대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보면 어릴 때 어떤 책을 읽고, 또는

어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도 무엇이 되고 싶다고 발심을 하여 결국은

성공 했다고 합니다.


언젠가 여러분도 봤을 텐데 신문방송 뉴스에 보니, 강원도 평창의 어떤 할머니,

한양대 뒷골목 할머니, 동대문 떡장수 할머니들이 평생 모은 수억이나 되는

전 재산을 대학에 장학금 등으로 기부했다는 미담기사를 읽은 일이 있습니다.

그 기사내용을 보니 기가 차요, 한결같이 삯바느질, 노역일, 떡장수 등을 하여

번 돈들인데 더 큰 감명을 준 것은 그 할머니들은 모두가 배우지 못하고 신랑도

잘 못 만났어요. 신랑들도 배우지 못하고 너무 빨리 죽어버렸어요, 배우지 못해

취직도 못해요. 그래서 배우지 못한 한을 그냥 보통 사람들 같으면 팔자타령이나

했을 텐데 그러기엔 너무 억울해, 그 한을 나처럼 돈 없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공부시키겠다는 큰 원력으로 바꾼 겁니다. 다시 말하면 발원을 한 겁니다.

그 할머니들은 스님의 법문을 들은 일도 없고, 목사 신부님들의 설교도 들은 일이

없었습니다. 다만 그냥 죽기는 억울해, 한을 원으로 생각을 바꾸었던 겁니다.

저는 그 할머니들의 장학금이 37조를 기부한 미국 부자의 돈보다 더 위대한 돈이요,

그 할머니들이 더 위대하게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제 무엇을 발원할 것인가? 내가 나이가 50, 60, 70이 되어 죽을 때가

다 되어 가는데 지금도 될까 하시지만 늦지 않습니다. 무엇을 발원할 것인가

그것은 스스로 자기에게 물어보는 것이 제일 현명합니다.

만약 저에게 묻는다면 [보현십원]을 권하고 싶습니다. 보현십원은 여러분들도

많이 복습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공부하는 마음으로 제가 선창할테니

여러분들이 따라하십시오. 할랍니까? (대중들 예 라고 대답)


예불제경원禮敬諸佛願 ․ 칭찬여래원稱讚如來願 ․

광수공양원廣修供養願 ․ 참제업장원懺悔業障願 ․

수희공덕원隨憙功德願 ․ 청정법륜원請轉法輪願 ․

청불주세원請佛住世願 ․ 상수불학원常隨佛學願 ․

항순중생원恒順衆生願 ․ 보개회향원普皆廻向願 .


보현보살의 열 가지 행원은 보현보살은 다 실행하지만 여러분은 자기 마음에

드는 걸로 한 가지만 실행하면 시방세계를 다 얻는 주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얼핏 이것을 들어보면 보현십원은 산중의 스님이나, 보살 할매들이나 절간에서

예불 찬탄하고 수순하고 찬탄할 일이지 세속 살이에 눈코 뜰새 없는 신도님들이

바빠서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다고 신도들의 사회생활 속사정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보현십원은 절간에서가 아니라, 마을에서

여러분의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요, 행해야 할 발원입니다.


먼저 예경제불원禮敬諸佛願 그러면 부처님에게만 예경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부처님에게는 안 시켜도 예경하니까요. 집에 있는 부모 형제자매 친척 이웃

직장 상사 친구 후배 등 우리 생활 속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공경하는 것이

예경제불원입니다. 모든 사람을 공경하는 것, 그런데 공경하는 일은 돈 드는 것도

아닙니다. 공경 한 번 해봐요. 예경제불원은 공경하는 운동입니다. 공경하는

운동을 보현보살이 벌인 겁니다. 부처님만 맨날 예경하는 건 시킬 것도 없습니다.


그다음 광수공양원廣修供養願, 부처님께는 공양드리라 하지 않아도 드립니다.

부처님께 공양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도 집에 어른 부모 자식 친지, 가난한 사람

없는 사람 밥해 주고 공양 올리고 식사대접하고 불우이웃 돕는 것, 그게 전부 다

광수공양 아닙니까? 일체 중생에게, 그리고 배 고픈 사람에게 공양하는 것 그것보다

더 큰 공양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게 광수공양입니다. 부처님은 배도 고프지 않으신데

보현보살이 뭣 때문에 공양 올리라 했겠어요? 여러분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

그게 광수공양입니다.


칭찬여래원稱讚如來願은 부처님만 칭찬하라는 게 아니예요, 신랑은 부인을, 부인은

남편을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스승은 제자를 상인은 손님을, 서로 서로

만나는 사람마다 나쁜 점은 보지 말고 좋은 점을 칭찬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의 허물은 감추고 남의 나쁜 점만 들추니까 그거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침에 출근할 때 잔소리를 하면 남자가 하루 종일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부인은 그저 장난삼아 ‘일찍 들어 온나’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하루 종일 남편에게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런데 출근할 때 부인이 ‘당신 오늘 미남이다’ 한마디 하면

싱글벙글 집에 일찍 오지 말라고 해도 일찍 옵니다.

그래서 가유현부家有賢婦면 부불조횡화夫不遭橫禍라, 공자가 말씀하길 집에 현명한

부인이 있으면 남편이 밖에 나가서 횡액을 안 만난다고 했어요. 그러니 암만 화가

나는 일이 있더라도 출근할 때는 절대 화를 내지 말고 빙긋빙긋 웃어 주어야

다른데 가서 나쁜 일이 안 생깁니다.

반면에 남자 역시 부인을 칭찬해 줘야 하지요. 서로서로 칭찬해야합니다.

며느리는 시어른을 칭찬하고 시어른은 며느리 칭찬을 하고 또 사제간에 서로

칭찬하는 것, 이것이 칭찬여래원입니다. 이것은 돈이 드는 일이 아닌데도 잘 못해요.


특히 절에 다니는 사람이 조금 고약한데가 있어요, 남 칭찬을 잘 못합니다.

제가 설악산에 있는데 저한테 시주도 많이 하는 돈 많은 보살님이 한 분 계셨어요.

지금은 서울로 이사를 가셨는데 한 삼년 전에 저한테 왔어요. 왜 왔냐고 물었더니

사위자랑을 하러 왔습니다. 사위가 뭐가 좋소? 물으니까 우리 사위는 빨래도 잘하고

밥도 잘하고 애도 잘 보고 그런대요. 그래서 나도 ‘요즘 사람들은 다 그런다고

하더라, 사위 참 잘 봤구먼’ 하고 같이 칭찬해 주었지요.

그러고 다시 일년인가 지나서는 ‘스님, 스님’ 하면서 또 왔어요. 이번엔 며느리를

봤는데 저놈의 아들이 보기 싫어서 못 살겠다고 그래요, 왜 그러냐고 물으니,

‘저놈의 자식이 학교 다닐 때 지 엄마가 밥해 줄때는 자기 방 이불도 안 개고 양말도

벗어서는 아무데나 두고 밥 먹은 상도 안 치우던 놈이 장가를 가더니 앞치마를

떡 하고는 밥을 하고 청소를 하는 꼬라지를 보자니 눈꼴이 시려서 더 이상은

못 보겠습니다, 내 죽겠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내가 ‘절에 헛 다녔다, 보살님. 그동안 돈만 갖다 내버렸다.’ 그랬더니

왜 그러냐고 물어요. 그래, 사위가 빨래하고 앞치마 입고 청소하는 모습이 보기 좋으면

내 아들도 보기 좋아야지. 아들 그런다고 며느리 구박해봐, 너거 딸도 그 집 시어른한테

천대받는다 했더니, 그래도 안 그렇대요. 안 그렇기는 뭐가 안 그래요.


그런 거 아닙니까? 그 사위가 앞치마 입고 밥하고 빨래하는 게 보기 좋듯이 아들이

빨래하고 밥하는 모습이 보기 좋으면 보살입니다. 그것이 보기 좋으면 가정이 화목하고

고부간에 갈등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조그마한 것을 못하거든요? 아무 것도 아닌데요.

그래서 보현보살이 중생들을 위해서 이런 걸 하라고 세운 게 보현십원 아닙니까?

부처님께만 불공 올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생활에 아무 이익이 없으면 부처님이 오지 않습니다. 중생이 없는데 부처님이

왜 와요? 중생이 없으면 부처님도 없습니다.

배울 학생이 없는데 선생 혼자 뭐하겠습니까?


참제업장원懺悔業障願이란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잘못하는 걸 사과하는 것입니다.

신랑에게 잘못할 수도 있고, 부인에게 또 친구에게 잘못했을 때 즉시 ‘아, 미안하다.

잘못됐다.’ 사과하는 겁니다. 사과하기 운동이고,


수희공덕원隨憙功德願은 옆에 보살이 시주를 많이 했으니 얼마나 좋아요?

내가 한 것처럼 같이 기뻐하고 또 옆집 학생이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내 아들이

떨어졌더라도 내 아들이 잘 된 것처럼 따라서 기뻐하는 운동입니다.


청정법륜원請轉法輪願은 부처님 법을 널리 전하고 그러면 자연적으로 사람들이

말하길 ‘ 저보살은 절에 다니더니 마음이 곱고 참부처다’ 소리를 듣지요.

그것 자체만 하더라도 늘 법문 하는 것이거든.


상수불학원常隨佛學願은 학문과 불도 닦기를 늘 원하는 것,

그 다음 항순중생원恒順衆生願, 중생은 뭐요? 항시 우리 이웃하고 잘 지내자는 거지요.

보개회향원普皆廻向願, 이와 같은 모든 공덕을 내가 안 가지고 남한테 다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서로 부처님 법 안에서 만났을 때, 불공하고 천도하고 잘 살자,

서로 헐뜯지 말자며 우리가 참으로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어 그렇게 살라고,

살겠다고 발원한 것이 보현십원입니다.


어떤 신도는 이 말을 듣더니, ‘말은 참 좋은데 돈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해요.

맞는 말 같지만도 황금이 히말라야 산 만큼 있어도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마음입니다. 떡장수 할머니처럼 뭔가 뼈 속까지 사무치는 발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옛날 선비들이 그랬잖아요. 코를 찌르는 매화의 향기가 있으려면 뼈 속까지

사무치는 추위가 있어야 한다고 했지요. 돈 가지고는 세상이 안 됩니다.

여기 부처님 계시지만 불기에 돈을 가득 담아서 부처님께 불공하면 부처님이

어떤 생각하시겠습니까? 부처님은 딴 생각 안합니다.

‘아, 저 불자는 복혜가 이만큼 구족했으면 좋겠다.’

이 반면에 돈도 십 원도 없는 사람이 공양도 못 올리고 절만 계속하면 부처님은

어떤 생각을 하시겠어요? 부처님은 ‘저 불자는 마음을 저렇게 다 비워서 좋다’

그러시겠지요. 그렇습니다. 학문적으로 깊이 들어가면 이것이

불교학에서의 중도사상입니다.


시간이 다 되어가니 정리를 하자면, 보현십원 중에서 한 가지를 골라 발원하면

누구나 다 시방세계를 얻을 수 있다는 그런 말씀을 제가 드립니다. 이 한 가지만

실천하면 돈도 들어오고,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모든 것이 다 연결고리로 연결되어

있어 진리의 몸을 얻고 날마다 좋은 날이 되고 하는 일마다 좋은 일이 됩니다.

가는 곳마다 불국토가 되고 하는 일마다 불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피로하지 않습니다. 내가 밥장사를 한다고 하면, 손님한테 밥을 해 줄때

부처님께 공양 올린다는 생각으로 하면 피로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돈을 번다고

생각하니까 피로한 겁니다.

그러니까 보현십원의 정신에 마음을 두고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든, 돈을 벌겠다

생각하면 힘이 드니까, 직장 생활도 내가 이 회사를 도와준다는 생각,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하면 피곤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천도재는 참 잘 됐습니다. 제 법문이 시원찮아서 그렇긴 합니다만, 좀 싱겁게

하긴 했는데 천도재 올리는 공덕은 한량없습니다.

천도재는 경에 의하면 모든 부처님의 숨겨진 뜻이 있습니다. 그것을 한문으로

제불밀의諸佛密意라고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법문도 아니고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이야기,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그저 듣고 하는 이야기인데 참으로 큰 법문은 저 벽암록에서

그러길, 천성부전千聖不傳이라, 천명의 성인도 못 전한다고 그랬습니다.

우리가 듣고 보고 깨닫고 안다는 것은 거울 속의 그림자에 불과해,

그 거울을 탁! 깨어버리고 그 안에 것을 알 면은 됩니다.


마치면서 게송을 하긴 해야 하는데 나는 초성이 안 좋아 못하니까 해석만

하고 내려가겠습니다.

저 야부선사가 이 세상의 삶을 다 보고는 시를 썼어요, 어떻게 썼느냐?

이 세상을 바다로 보거든? 경전에서도 이 세상을 고해, 바다라 그래요.


천척사륜직하수千尺絲綸直下垂 일파재동만파수一波?動萬波隨라,

천척이나 되는 바다에 파도가 하나 생기면 뒤이어 일파만파 파도가 일어나,

여기 여러분들도 어디 가서 말 한마디를 해 놓으면 말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왔다 갔다 하지요. 그런데 그렇게 살다가 늙었어, 그걸 이제 비유 들기를,

야정수한어불식夜靜水寒魚不食, 밤이 깊어 물이 차니 고기가 안 물린다, 뜻이 뭐냐면

이 세상에서는 구해도 구해도 내가 원하는 것은 구해지지 않아, 원하는 것은 영원히

내 것인 것이 없어 그럼 어쩌겠느냐?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니라,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갔다는 겁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바람부는 산사/정목스님

2006.10.27 13:30:39 | 내 블로그 담기
대현심   좋은 말씀 잘 읽었습니다. 일일이 제 의견을 말하고 싶은 곳이 많긴 한데,
특히 신도분이 다른 신도분들께 돈벌라고 하지 말라는 귀뜸을 스님께 했다는데,
부처님 말씀에 하지 말아야할 몇 가지 행위를 삼가하면 부자가 능히
될 수 있다고 하셨죠? 예를 들면 술, 놀음 ... 나태함 .. 저의 경우
부자가 못되는 이유는 단연 <나태함>이 원인인듯 ... ^^
2006.10.27 13:55:25
대현심   그리고 원을 하면 이루어 진다는 내용은 현재 과학적으로도
충분히 증명된 내용이죠? *The Pygmalion effect 라고 하버드의 심리학
교수인 Rosenthal 교수의 실험에 의해 입증이 되었죠?
법문 내용이 너무 좋습니다. 알찬 내용 감명 깊었습니다.
재 비용을 영가의 업을 닦는데 사용하신
지혜로우신 스님 이야기 등등 ... ... . ^^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_(())__(())_
2006.10.27 14:02:49
묘경   좋은 내용, 법문에 인용해야 겠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2006.10.28 00:04:48
적조월   감사합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_()()()_
2006.10.28 13:04:48
하영욱   k
2007.01.09 14: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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