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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 스님 "맑은 색이 보이니 그저 칠했을뿐"

色이 있는 禪畵 그리는 법관 스님

<세계일보 2006/9/26/화/미술25면>

 

 

법관 스님 "맑은 색이 보이니 그저 칠했을뿐"

 

 

선화(禪畵)란 선승의 법어와 다를 바 없다. 그저 마음이 움직여 툭 던져놓는 한 송이 백련과 같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선화 하면 필묵를 떠올리게 하지만, 오방색의 화려한 선화를 그리는 선승이 있다. 인사동 윤갤러리에서 26일까지 ‘색이 있는 선화’를 선보이고 있는 법관 스님이다.

스님은 ‘맑은 색이 보이니 그저 칠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밤보다 낮에 좋은 색을 잘 고를 수 있듯이 마음이 맑으면 청정한 색이 그제서야 보인다고 한다. 강릉 능가사 암자에 머물고 있는 그는 20여년간 수행의 작은 한 부분으로 선화를 그려 오다가 2년 전 손수 지은 한 평 반의 밀폐된 공간에서 하루 한끼만 먹고 6개월간 무문관 참선을 했다. 밖으로 나오는 날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법의 희열을 주체하지 못해 그려낸 것이 ‘색으로 그린 선화’가 됐다. 염화미소와 같은 것이었다.

“먹의 일필휘지가 돈오(頓悟)라 한다면 색을 칠하는 일은 점수(漸修)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지요.” 그림은 참선과 어쩌면 유사하다. 몰입하다 보면 현실의 자신을 잊고 자아(본성)를 꿰뚫는 어느 순간 맞닥뜨릴 수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자아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몰입이야말로 예도가 아니겠는가.

스님은 세속에서 그림을 배운 적이 없다. 어느 면에서 그림 공부를 하지 않았기에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롭다. “화두를 잡고 참선하는 데 이론과 지식이 필요 없는 이치와 같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그의 선화에선 가을 바람의 향기가 묻어 난다. 인위적인 기교를 탐하지 않은 순정한 정신의 결이 감지되는 것이다. 그런 담백한 기운이 감상하는 이의 마음을 맑게 해준다.

스님이 화려한 오방색을 선호하게 된 이유는 뭘까. “일부러 찾았다기보다 절집의 탱화나 단청의 익숙함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것일 겝니다.”

그는 구상보다 추상을 더 선호한다. “구상은 싱겁다는 생각이 들어요. 규정할 수 없는 깊은 내면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지요.” 선화들은 그래선지 대부분 비구상이다. 더러는 의식적으로 무언가 실재하는 대상을 표현하는 경우도 있으나 구체화하지는 않는다. 마치 숨은 그림처럼 형태를 은폐시키는 까닭이다.

왜 그럴까. 형태를 노출시키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형태에 얽매이도록 하는 것이다. 형태에 얽매이면 그림이 은유하고 상징하는 바를 간파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그림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산과 강이 있고 논과 밭이 있으며, 사람과 동물이나 곤충이 있고 풀과 나무도 있다. 말 그대로 만유의 세계인 것이다. 형태의 윤곽을 선으로 단숨에 그린 다음 그 안을 채색으로 메우는 기법인 구륵법(鉤勒法)을 채택하고 있는 것도 선화에선 이례적이다.

“눈으로 보는 모양(스타일)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지요. 눈만 쉽게 채워주려는 세태에 마음을 채워주고 싶은 것이 저의 작은 바람입니다.” 그는 좋은 그림은 마음을 다듬고 맑게 밝히는 데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러지 못한다면 먹을 것 다 먹고 할 것 다하면서 건강 유지를 바라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반문한다.

어찌 보면 박생광 화백의 그림이 밝고 화려하게 환생한 느낌마저 준다. 예술의 길이란 타고난 천형이란 말이 있다. 다시말해 거부할 수 없는 본성과 같은 것이다. 그림을 통해 만날 수 있는 본성, 그 또한 수도의 한 방편이 아닐까. (02)738-1144

편완식 기자

 

불인별곡(不忍別曲) - 조수미
2006.09.26 14:40:36 | 내 블로그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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