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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조동종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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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조동종.kr 

한국불교 조동종의 원류...

[중국오세선사에서]                                          1

  한국의 선은 신라 구산선문 즉 9개의 산문이 형성 되면서 부터 전성기를 맞았다. 우리 선불교의 여명을 밝힌 구산선문은 우두선, 북종선, 남종선,     조동선등 다양한 선풍이 중국으로 부터 들어왔다.  그중 석두희천을 시조로 한 조동종은 동산양개 선사와 조산본적 선사에 의해 크게 번성했고 중국의  오종 가풍중에 해당하는 육조 문하에서 탄생된 조동종은 그 계파로 3개의 문파가 벌어졌다. 그중에 조동종, 운문종, 법안종이 바로 그것이다.

  신라말 구산선문중 맨 마지막으로 들어온 수미산문은 이엄진철선사에   의해 해주 수미산 광조사에서 선문을 열면서 비로소 탄생을하게 되었다.
  신라 말기의 가장 혼란한 시기에 탄생된 수미산문은 신라가 붕괴되고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면서 부터 전성기를 맞이 했다.  즉 4무외 대사로 별칭되는 수미산문의 개조 이엄진철선사로 부터 보리사의 대경대사, 정토사의  법경, 무위사의 선각왕사등이 태조의 왕사 였다는 사실만 보아도 당시 얼마나 많은 고려 건국에 영향을 끼쳤는지 짐작이 간다. 또한 주목되는 것은   동산(東山)문하의 뛰어난 선승, 운거산의 운거 도응 선사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4무외 대사인 이엄, 법경, 대경, 선각등이 모두 운거도응의 법맥을 이어 왔다는 사실이다. 운거 도응은 나중에 수미산문을 연 이엄진철에게 첫 대면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서로 이별한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다시 만남이 그리 빠른가."
  이엄스님 답 하기를
  "일찍부터 친히 모신적도 없는데 어찌하여 다시 왔다고 말씀  하십니까."
  이심전심이란 마음에서 마음으로 상통되는 법이다.  운거선사는 이엄스님이 그의 밑에서 6년간 수행하고 있을 때 어느 때 인가 그를 방장실로 불러다음과 같이 일렀다.  "도는 본래 사람을 멀리하지 않으나 사람이 능히 도를 넓히는 것이므로 동산(東山)의 종지가 타인의 손에 있지 아니하며 불법의  중흥이 나와 너에게 달려 있으니 나의 도가 동국(東國)으로 흘러가는구나"   라고 말씀했다.                                                   2
  구산선문의 선사들은 중국에 가서 인가를 받아 왔다. 그때 중국의 선사들은 한결같이"중원의 불법이 동국(東國)으로 가는구나" 라고 말씀하기도 했다.
  구산선문중 맨마지막 선문인 수미산문은 고려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  하면서 전성기를 맞이 했고 그 첫번째 고려왕사가 수미산문의 이엄진철선사였다. 구산선문의 각 산문 따라서 독특한 특징과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대부분의 구산선문의 문파들이 남종선 계통인 것에 비해 9번째 구산선문인 수미산문은 묵조선 계통의 선사상의 흐름을 지니고 있다. 석두 희천선사가 일으킨 조동종은 동산양개와 조산본적를 거쳐 조동종의 3조 운거도응에 의해선풍이 일어난다.
  신라말 신라승들은 대거 운거문하에서 인가를 받고 속속 귀국하여 선문을 일으켰다. 조동선 계통의 선승들로서는 금장. 형미. 이엄. 려엄. 경유등이  그들이다.

  조동선은 신라 말에 들어와서 조선 중기까지 그 맥이 이어져왔다.  일연은 조동선의 요체인『중편조동오위』를 남김으로서 조동선의 부흥을 일으켰고 다시 매월당 김시습에 의해『중편조동오위요해』를 쓰면서 비로소 조동선이 거듭 발전했다.
 
입당 선승들의 구법 경로, 4무외대사의 행적,현존하는 구산선문등 묵조선풍의 원형과 수미산문 형성과 조동종 선사들이 선의 출발지인 숭산 소림사에『조동종구류백가일원비』(曹同宗九流百家一原碑)가 서 있음을 볼 때 당시  조동종이 남쪽뿐만 아니라 북쪽에까지 선풍을 드날렸음을 증명해 주고있다.

중국 조동선의 원류는 동산양개와 조산본적, 운거도웅을 거쳐 천동여정선사에의해 선풍적인 영향을 끼쳤다. 주로 남쪽 지방에서 번성해온 조동선이,  북종선이 유행했던 초기 선종의 발상지인 숭산 소림사에 조동종선사들의  사적비는 당시 천동여정선사 이후 조동선이 유행했던 증거이다.
3  천년전 한국 선불교의 여명을 밝힌 구산선문의 9개 산문중 실상사와    태안사, 봉암사를 제외한 모든 선문들이 폐사 되었다. 이엄진철스님이 개창한 수미산문도 이제 폐사되고 말았다. 수미산의 본산격인 해주 광조사는   고려 후기에 페사 된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그곳에 이엄진철의 비석과 5층 석탑만이 남아있다.

  수미산문의 전성기를 맞게했던 4무외대사의 유적 또한 폐사지로만 존재 할 따름이다. 다만 최형미의 무위갑사만이 남아 있을 뿐 모두 폐사 되었다.

수미산문은 국운과 함께 쇠척하여 수대(數代)를 지나 법맥이 단절 되었다.  오늘날 세계불교계를 관망 하건데 중국은 숭산 소림사와 영파(寧枝)의 천동선사(天童禪寺)를 주축으로하여 조동종이 날로 번창하고 있고 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세계적 굴지의 기업들이 매년 사원 모집후 조동종 대본산인 영평사(永平寺)에 묵조선 위탁 교육을 시키고 있고 구미 각국의 불제자들은 남방불교의 소승선과 신비에 쌓인 티베트의 밀교와 조동종 묵조선에 매력의 호기심을 가지고 모여들고 있다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나라 한국으로 눈을 돌이켜 보건데 한국 땅에는 세계종교의 백화점으로 통하나 묵조선이 없으니 실로 통탄 지사가 아닐수 없는 바 수미산문의 이엄진철 대선사의 법통 유지를 흠승(欽承)하여 이 땅에 다시 묵조선 유포의 절실한 필요성을 통감한 4부대중들이 서기 1989년 5월 27일  모여 대한불교 조동종을 중창(重倉)하게 되였다.

그러나 단절된 법맥을 보완 하고자 고심하던 중에 때마침 중국이 개방되자 서기 1994년 7월16일 조동종 종정 박운파 이하 60여명이 중국 숭산 소림사 30대주지인 소림조정 설정복유선사 종복자 기연파(少林祖庭雪庭福裕禪師從福字起演派)의 법손 으로서 조동 제44조이신 청심소희(淸心素喜)대선사를 법사로 모시고 입실 건당한 바 덕(德)자 항열의 건당 증서와 법맥 계보를 각각 수여 받았으므로 이로써 대한불교 조동종은 서천 제82조 동토 제55조 조동 제45조의 확고한 정통 조동종 법맥을 계승한 것이며 1개 종단이 대거 정통 법통을 사법 계승한 것은 한국 불교사상 처음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와 같이 소중한 법통을 영구히 보존 수호 발전 시키고자  입실 건당하여 조선 중기에 사라져 버린 조동종을 재 복원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서 구산  선문의 연구는 한국불교 선종 사상사에 가장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1997년 7월 16일 중국 숭산 소림사 조정에 소희문도회 사법비를   건립하게 되었고 그후 서너차례 종단에서 소림사를 탐방하여 보살계등 크고 작은 행사를 갖게 되었다.

이로써 현재 한국불교 조동종인 대한불교 조동종은 12개교구로써  전국 각 지역 산하에 5백여 사찰과 560명의 스님과 신도가 문화   관광부에 등록이 되어져 있으며 한국불교 종단 협의회에 등록된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등 27개 회원 종단중 11번째 서열이 조동종이며 종단협의회 이사와 감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2006년 조동종의 연구 활동은 조동록을 한글로해석 종용록, 중편조동오위등 조동종의 원류를 찾아서, 한국조동선사, 구산선문, 조동선학론총, 묵조선의연구, 선으로 가는길등 여러권의 책이 나와 있으며 조동종의 묵조선 연구가 활발하게 연구 되어 지고 있다.  

  2000년 7월 28일 현종정 지명 덕찬선사께서 주석하시는 청련사 조정에 소림 문도회 사법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2000년 8월 10일에 강서성 진여사를 종단대표 종정예하 총무원장 이하 간부진 20명이 방문하고 우민사를 참배했을때 주지이신 석순일 방장큰스님께서 환대를 해 주셨음을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그후 종단에서는 종조이신 동산존자 양개 대화상의 열반재일을  맞이하여 서기 2005년 을유년 음력 3월 8일부터 종조 헌 다례재를 성대하게 봉행하고 백일뒤에 강서성에 있는 종조 동산존자 양개화상이 주석 하시던 보리선사를 찾아 종정 지명.덕찬대선사, 총무원장  심월선사등 종단 간부진 10명이 탐방하여 석순일선사 보리선사 주지 스님과 함께 예배 공양 올렸으며 그 자리에서 보리선사에 모셔져 있는 동산 양개선사 사리탑에 분향 예를 올린후에 보리선사 대회의장에서 동산 양개선사 사리탑 근방에 탑을 세워 한중 조동종의 우호를 새겨 길이 보존 하자고 약속을 했으며 우민사에서 한중 조동종간에  결연을 다지는 문서를 우민사 방장이신 석순일 큰스님께서 문구를 직접 적어서 한국 조동종 총무원장 심월스님과 함께 직인을 낙인  하였습니다.

  한국 대한불교 조동종은 불기 2550년 3월 11일에는 종조 진영을 복원하여 종단 간부진 감찰원장 덕우스님, 종회의장 행봉스님, 포교원장 행원스님, 문화원장 덕용스님 네분이 복원한 존영을 우민사에서 석순일 방장스님께 드리자 환영하시며 목각으로 존상을 복원하여  한국과 중국에서 모실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조했으며, 또한 보리선사에 탑 비석을 세울 크기와 문양등은 우민사의 탑을 예로하여 상의하고 한. 중 조동종간에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습니다.
  대한불교 조동종은 종조 동산존자 양개화상 존영을 복원하여 서기 2006년 음력 3월 8일 종조 헌 다례재를 원만하게 봉행하였습니다.

  다시한번 종조탄신 1200주년 기념 대법회에 초청하여 주신 우민사 방장 강서성 불교협회 부회장 보리선사 주지 오세선사 방장이신 석순일 큰스님께 감사드리며 이 자리에 참석하신 중국 불교협회 회장 이신 일성 대선사님과 자리를 같이하신 내외 귀빈 불자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감사 합니다.   
              서기 2006년 5월 23일  
        대한불교 조동종  덕성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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