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信心銘 (僧璨大師)
[펌] 信心銘 (僧璨大師) | 달팽이 선방 포스트 삭제 2005/12/03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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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芝良☆

 

 
信心銘

 

至道無難 唯嫌揀擇 (지도무난 유혐간택)

但莫憎愛 洞然明白 (단막증애 통연명백)

毫釐有差 天地懸隔 (호리유차 천지현격)

欲得現前 莫存順逆 (욕득현전 막존순역)

違順相爭 是爲心病 (위순상쟁 시위심병)

 

대도는 어렵지 않나니, 편견에 치우치지 말지어다.

사랑과 미움이 없으매, 모든 것이 맑고 숨김 없어라.

털끝 만한 차별하나 일으켜도 하늘과 땅이 무한히 벌어지나니,

진리를 깨우치고자 한다면, 뜻을 펴지도 거스르지도 말지어다.

싫고 좋은 것으로 하여 버둥댐이 마음의 병이니라.

 

不識玄旨 徒勞念靜 (불식현지 도로염정)

圓同太虛 無欠無餘 (원동태허 무흠무여)

良由取捨 所以不如 (양유취사 소이불여)

莫逐有緣 勿住空忍 (막축유연 물주공인)

一種平懷 泯然自盡 (일종평회 민연자진)

止動歸止 止更彌動 (지동귀지 지갱미동)

唯滯兩邊 寧知一種 (유체양변 영지일종)

一種不通 兩處失功 (일종불통 양처실공)

 

세상만사 깊은 뜻을 이해 못할 때, 마음의 평정을 이루려 해도 소용없나니.

도는 광막한 허공처럼 완벽하여 남고 모자람이 없도다.

그러나, 도가 우리의 받고 물리침에 달렸으니, 세상만사 참 이치를 알지 못함이로다.

바깥 세상에 연연하지도 공의 내지각에도 빠지지도 말지어다.

사물의 일치 속에 아웅다웅 하지 않고 잠잠하면, 허상이 스스로 사라지리라.

무위를 성취하고자 행위를 멈추려고 애쓸 때, 바로 그 노력이 행위로 가득 채우나니,

이쪽 저쪽, 어느 한 극단에 머물려 있는 한, 결코 하나를 알지 못하리라.

그 하나 속에 살지 않는 자는 행위와 무위를 모두 이루지 못하리다.

 

遣有沒有 從空背空 (견유몰유 종공배공)

多言多慮 轉不相應 (다언다려 전불상응)

絶言絶慮 無處不通 (절언절려 무처불통)

 

사물의 실재를 부정하면 그것들의 실체를 놓치고,

사물의 공(空)을 가리면 그것들의 실재를 등지느리라.

진리에 대하여 말이 많고 생각이 많으면, 진리로부터 더욱 멀리 헤매이리라.

따라서 말과 생각을 멈추면, 모를 것이 없느니라.

 

歸根得旨 隨照失宗 (귀근득지 수조실종)

須臾返照 勝脚前空 (수유반조 승각전공)

前空轉變 皆由妄見 (전공전변 개유망견)

不用求眞 唯須息見 (불용구진 유수식견)

二見不主 愼莫追尋 (이견부주 신막추심)

裳有是非  紛然失心 (재유시비 분연실심)

二由一有 一亦莫守 (이유일유 일역막수)

一心不生 萬法無咎 (일심불생 만법무구)

無咎無法 不生不心 (무구무법 불생불심)

 

뿌리로 돌아가면 뜻을 얻고, 현상을 쫓으면 근원을 잃나니,

내면의 깨달음을 맞이하면, 현상과 공(空)을 초월하는 것이 있다.

공허한 세계에서 이는 듯한 변화를 우리의 무지는 진실이라 부른다.

진리를 추구하면, 오직 편견에 사로잡힐 뿐이니라.

이원설에 머물지 말고 그런 추구를 조심스레 피하라.

만약 거기에 이것 저것 옳고 그름의 낌새라도 있다면, 본 마음을 혼란속에 잃어버리니라.

모든 이원성은 하나로부터 온 것이니, 이 하나조차 집착하지 말라.

마음이 평정할 때 세상에 아무 허물이 없느니라.

그리고 사물에서 흠잡을 것이 없을 때 마음이 옛날같지 않으며,

분별력이 사라지면 옛마음도 온 데 간 데 없다.

 

能隨境滅 境逐能沈 (능수경멸 경축능침)

境由能境 能由境能 (경유능경 능유경능)

欲知兩段 元是一空 (욕지양단 원시일공)

一空同兩 齊含萬象 (일공동양 제함만상)

不見精추 寧有偏黨 (불견정추 영유편당)

 

객관의 사념이 소멸될 때, 주관의 사념도 사라진다.

그러므로 마음이 소멸됨에 따라 객관도 사라진다.

사물은 주관으로 말미암아 객관이요, 마음은 사물로 하여 존재한다.

이 둘 사이의 상대성도 원래 하나의 공임을 알지어다.

이 공안에서 그 둘은 구별되지 않나니, 모든 삼라만상이 그 안에 들어 있다.

귀하고 천한 것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아니하면 편견이 일지 않을 것이다.

 

大道體寬 無易無難 (대도체관 무이무난)

小見狐疑 轉急轉遲 (소견호의 전급전지)

執之失度 必入邪路 (집지실도 필입사로)

放之自然 體無去住 (방지자연 체무거주)

任性合道 逍遙絶惱 (임성합도 소요절뇌)

繫念乖眞 昏沈不好 (계념괴진 혼침불호)

不好勞神 何用疎親 (불호노신 하용소친)

欲趣一乘 勿惡六塵 (욕취일승 물오육진)

六塵不惡 還同正覺 (육진불오 환동정각)

智者無爲 愚人自縛 (지자무위 우인자박)

法無異法 妄自愛着 (법무이법 망자애착)

將心用心 豈非大錯 (장심용심 기비대착)

 

대도에 살기란 쉽지도 어렵지도 않거늘, 좁은 시야를 가진 자들은 두려워 망설인다.

서둘수록 더디며 집착하면 법도를 잃나니,

깨달음의 이상에 달라붙을 지라도 길을 잃고 헤매이리라.

사물이 있는 그대로 놔두면 오가는 것이 없느리라.

사물의 본성(자기자신의 본성)을 따르면 번뇌없이 자유로이 걸을 수 있으리라.

사고에 얽매이면 진리가 숨나니, 그때 모든 것이 불투명하여,

분별력의 번거로운 수행으로 번민만 불러 일으킬지니,

차별로부터 무슨 득을 보겠는가? 한길로 나아가고자 하면, 감각과 사고의 세계조차 물리치지 말라. 오히려 그것들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참된 깨달음과 같느니라.

지혜로운 이는 목적을 지니지 않거늘,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 얽매인다.

거기에 여럿이 아닌 하나의 진리, 법(Dharma)이 있을 뿐, 차별은 무지한 자의 집착에서 일어난다. 분별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찾는 것이 실수 중의 가장 큰 실수로다.

 

迷生寂亂 悟無好惡 (미생적란 오무호오)

一切二邊 良由斟酌 (일체이변 양유짐작)

夢幻空華 何勞把捉 (몽환공화 하로파착)

得失是非 一時放却 (득실시비 일시방각)

眼若不睡 諸夢自除 (안약불수 제몽자제)

心若不異 萬法一如 (심약불이 만법일여)

一如體玄 兀爾忘緣 (일여체현 올이망연)

萬法齊觀 歸復自然 (만법제관 귀복자연)

泯其所以 不可方比 (민기소이 불가방비)

 

안정과 불안은 망상으로부터 일어나고, 깨달음과 함께라면 싫고 좋은 것이 없느니라.

모든 이원성은 무지한 추론으로부터 온다.

이 꿈같은 것을, 허깨비 꽃같은 것을, 어리석게 붙잡으려 애쓰는가?

얻는 것과 잃는 것, 옳고 그른 것... 그러한 생각들을 한번에 없애 버려라.

눈에 졸음이 없으면 모든 꿈이 저절로 멎을 것이다.

마음에 아무런 분별이 없다면, 만가지 사물들이 본래 모습대로 하나이다.

이 한가지 본질의 신비를 깨우치는 것이 모든 인연으로부터 풀려나는 것이다.

모든 사물이 동등하게 보일 때 영원한 자아의 본질에 닿는다.

이 까닭없는 무연고(無緣故)의 경지에서는 아무런 비교나 유추가 가능하지 않다.

 

止動無動 動止無止 (지동무동 동지무지)

兩旣不成 一何有爾 (양기불성 일하유이)

究竟窮極 不存軌則 (구경궁극 부존궤칙)

契心平等 所作俱息 (계심평등 소작구식)

狐疑淨盡 正信調直 (호의정진 정신조직)

一切不留 無可記憶 (일체불류 무가기억)

虛明自照 不勞心力 (허명자조 불로심력)

非思量處 精識難測 (비사량처 정식난측)

 

움직이지 않는 움직임과 움직임 속의 부동(不動)을 숙고하라.

그러면 운동의 상태와 휴식의 상태가 모두 사라진다.

그런 이원성이 존재할 수 없거늘 하나인들 어찌 있을소냐.

이 최종적인 궁극에는 아무런 법이나 묘사도 맞지 않는다.

하나된 마음을 위해 도와 조화를 이루면, 모든 자아 중심적인 투쟁이 그친다.

의심과 망설임이 사라지면, 참된 믿음의 삶이 가능하다.

단번에 우리는 속박으로부터 자유롭다.

아무것도 우리에게 매달리지 않고, 우리 또한 아무것도 붙잡지 않는다.

모든 것이 텅비고, 맑고, 스스로 빛나니, 마음 쓸데가 없도다.

여기에 사고나, 감정, 지식이나 상상이 아무 쓸모가 없구나.

 

眞如法界 無他無自 (진여법계 무타무자)

要急相應 唯言不二 (요급상응 유언불이)

不二皆同 無不包容 (불이개동 무불포용)

十方智者 皆入此宗 (시방지자 개입차종)

宗非促延 一念萬年 (종비촉연 일념만년)

 

이 진여법계에는 나도 없고 너도 없다. 이 실재와 더불어 조화롭기 위해서는 의심이 일어날 때 그냥 "둘이 아님"을 말하라.

이 "둘 아님"속에서는 아무 것도 분리되지도, 아무 것도 빼놓지도 않는다.

언제 어느 곳을 막론하고 깨달음은 이 진리로 들어감을 뜻한다.

이 진리는 시간이나 공간 속에서 불거나 줄어듦을 초월하여 있다.

그 속에서는 생각 하나가 만년이라...

 

無在不在 十方目前 (무재부재 시방목전)

極小同大 忘絶境界 (극소동대 망절경계)

極大同小 不見邊表 (극대동소 불견변표)

有卽是無 無卽是有 (유즉시무 무즉시유)

若不如此 不必須守 (약불여차 불필수수)

一卽一切 一切卽一 (일즉일체 일체즉일)

但能如是 何慮不畢 (단능여시 하려불필)

信心不二 不二信心 (신심불이 불이신심)

言語道斷 非去來今 (언어도단 비거래금)

 

여기도 공(空)이요, 저기도 공, 그러나 무한한 우주는 항상 바로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우주는 무한히 크고, 또한 작기도 하다. 아무런 차이도, 한계도 사라지고 경계가 보이지 않네.

있음이 곧 없음이로다. 공연히 논쟁이나 의심으로 허송세월하지 말라.

하나의 사물, 모든 것들이 분별없는 사이에서 움직이며 뒤섞인다.

이 깨달음 속에 살려면 미완성이라 걱정하지 말라.

이 신념 속에 사는 것이 비이원성으로 향하는 길이다.

왜냐하면 비이원성에 사는 사람이 신심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도(道)는 언어를 초월하여 어제도 내일도 오늘이 아닌 마땅히 거기에 있다.

2005.12.22 23:48:21 | 내 블로그 담기
곽명희   진실로 마음에 와 닿는 부처님 말씀... 감사합니다
2005.12.25 08: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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