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이렇게 유명해질 줄 몰랐어요. 오늘도 한국인 몇 명이 저희를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건넸는데 무척 부끄럽네요.”

지난 13일 충북 보은군 법주사에서 열린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독일 스카우트 대원들이 부주지 각운 스님(오른쪽에서 셋째), 능인문화원장 혜우 스님(왼쪽 끝)과 기념촬영을 했다. 맨 앞줄에는 삭발한 남성 대원 6명과 여성 대원 2명이 보인다. /법주사
지난 13일 충북 보은군 법주사에서 열린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독일 스카우트 대원들이 부주지 각운 스님(오른쪽에서 셋째), 능인문화원장 혜우 스님(왼쪽 끝)과 기념촬영을 했다. 맨 앞줄에는 삭발한 남성 대원 6명과 여성 대원 2명이 보인다. /법주사

지난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 스님처럼 머리를 민 독일 스카우트 대원들은 독일 국기 문양이 새겨진 붉은색 스카프를 목에 두른 채 수문장 교대식을 지켜봤다. 이들은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공식 폐막하고 한국에 남아 템플스테이를 경험한 뒤 “우리도 스님 같은 삶을 살겠다”며 삭발했다. 충북 보은 법주사에 이틀간(12~13일) 머물며 결심한 일이라고 한다. 이날 만난 몇몇은 “아직은 어색하다”며 자신들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독일 대원들이 스님처럼 삭발을 결심한 건 법주사에서 체험한 한국의 불교문화가 감명 깊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은 새벽 예불 때 108배를 하며 의미를 배웠고, 북(법고)과 종(범종)을 직접 두드리며 세계 평화를 기원했다. 불교문화를 배우고 익힌 독일 대원들은 절을 떠나기 전 법주사 능인문화원장 혜우 스님과 차담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삭발을 결정했다고 한다.

대원들과 함께 삭발한 인솔자 조나단 콰이어링(21)씨는 “그 자리에서 대원 중 한 명이 ‘어떻게 하면 스님이 될 수 있나요’라고 질문했고 스님은 한국어로 답변했다”며 “언어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우리 모두 스님의 눈을 보고 그 뜻을 짐작해 고개를 끄덕였다”고 했다. 그러다가 문득 몇몇 대원들이 “스님처럼 살고 싶으니 삭발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들의 진정성에 감동한 혜우 스님은 그 자리에서 눈물까지 보였다고 한다.

지난 13일 충북 보은군 법주사에서 독일에서 온 스카우트 대원 조나 맥(17)군이 삭발을 하는 모습. /법주사
지난 13일 충북 보은군 법주사에서 독일에서 온 스카우트 대원 조나 맥(17)군이 삭발을 하는 모습. /법주사

콰이어링씨는 “처음엔 더 많은 대원이 삭발에 동참하길 원했으나, 혜우 스님이 ‘장난으로 삭발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며 “상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확신을 가진 8명만 머리를 깎게 됐다”고 했다. 삭발식은 법주사 부주지인 각운 스님이 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원 중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머리카락을 잘라주세요”라고 요청한 건 로미 스파노(18)양이었다. 그녀는 “법주사에서 느낀 마음의 평화를 삭발을 통해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고 했다. 스파노양은 “템플스테이 전까지 잼버리에서는 열정적이고 시끌시끌한 에너지를 얻었는데, 법주사의 고요와 적막이 마음에 들었다”며 “절에서는 온전히 나 자신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첫 번째로 삭발한 조나 맥(17)군은 “스님이 나를 첫 번째 순서로 지목해 영광이었다”며 “삭발을 하는 순간에는 ‘행복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여러 감정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고 했다. 맥군은 “삭발 이후 스님이 ‘너희는 업(Karma)을 쌓은 것’이라고 했다”며 “이 말씀이 계속 머리에 맴돈다”고 했다.

한국에 오기 전 불교문화에 관한 동영상을 봤다는 말로 무어(17)군은 “삭발을 통해 세계 평화에 대해 고민했다”며 “스카우트 정신의 근간은 평화이며, 우리가 잼버리를 통해 다른 나라 대원들과 만나는 것도 국가를 떠나서 하나가 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함”이라고 했다. 무어군은 “친한 학교 친구 중 우크라이나에서 독일로 이주해 온 친구가 있다”며 “그 친구는 매일 전쟁 뉴스를 보며 우크라이나를 떠나온 걸 미안해하고 슬퍼한다”고 했다.

동료 대원들의 삭발식을 지켜본 주디츠 알딩거(17)양은 “나라면 하지 못할 대단한 결심”이라며 “삭발을 말리는 대원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들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알딩거양은 “처음 친구들이 삭발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스님이 삭발은 결코 장난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삭발식의 의미를 설명했으나 친구들은 매우 진지했다”며 “이후 엄숙한 상황에서 삭발식이 진행됐다”고 했다.

독일 대원들은 삭발식이 끝난 뒤 법주사에서 받은 전통 찻잔을 머리카락과 함께 간직하고 있었다. 삭발식에 참여한 대원 중 가장 어렸던 데이비드 아만(14)군은 “이 찻잔과 머리카락을 소중히 간직하면서 ‘스님처럼 살겠다’는 내 결심을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독일 대원들은 잼버리 대회 공식 폐막 이후 충북 보은, 강원 양양·속초를 방문했고 서울에서 마지막 관광을 즐겼다. 이들이 독일로 떠난 19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는 법주사 각운 스님과 혜우 스님이 나와 배웅했다. 스님들을 만난 무어군은 출국 직전 “당분간 머리카락을 기를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법주사에서 배운 가르침을 잊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무어군은 “이번 잼버리에서의 경험, 한국 여행의 기억은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며 “매 순간순간이 좋았고, 확실히 한국과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자료제공 :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