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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山을 얻고 활구(活句)를 토하다

남해 금산 보리암에서 일출 직전의 바다를 내려다보다.



九山을 얻고 활구(活句)를 토하다

 

 

송광사 삼일암에서 조실로 있을 때, 효봉스님은 대종사(大宗師)의 법계를 받았다. 이때부터 많은 대중과 신도들은 효봉을 송광사 도인스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엿장수 출신이라고 해서 엿장수 수좌, 한 번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꼼짝않는다고 해서 절구통 스님, 그리고 과거의 경력 때문에 붙은 판사 스님이라는 별명 외에 또 하나의 새로운 별칭이 생긴 셈이다.

 

송광사에서 젊은 수좌들을 돌보고, 한편으로는 신도들을 지도하며 중생교화(衆生敎化)에 힘쓰고 있을 무렵이었다.

“조실스님, 조실스님.”

시봉을 맡고 있는 젊은 수좌의 목소리였다.

“그래, 무슨 일이냐?”

“예, 저, 웬 젊은 처사님이 조실스님을 꼭 한번 뵙겠다고 하옵니다.”

효봉스님이 먼저 방문을 열었다. 방문 앞에는 시봉과 함께 젊은 사내가 나란히 서 있었다.

“예, 바로 이 처사님이신데요.....인사 드리시지요. 우리 조실스님이십니다.”

시봉은 먼저 젊은 사내를 가리키며 효봉스님에게 말하고 나서, 손길을 바꾸었다. 젊은 사내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 예. 인사드리겠습니다, 스님.”

“으음.....그래 들어오시게. 그리고 넌 됐으니 가서 일 보고.....”

 

방에 들어온 낯선 청년은 효봉스님에게 공손히 절 삼배를 올렸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단정히 앉았다. 스물 다섯 살쯤 돼 보이는 나이였다.

“그래, 어디서 온 누구라고 하셨던고?”

효봉스님의 물음에 낯선 청년은, 성이 진주(晉州) 소(蘇)씨요 이름은 봉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살고 있는 곳은 전북 남원이라고 덧붙였다.

 

"그래, 무슨 일로 이 깊은 산골 중을 찾아오셨는고?“

“다름이 아니오라, 경상도 진주에 살고 있는 안거사께서.....”

“안거사? 어, 그래, 그.....진주에 사신다고 그랬지, 아마.....그런데 그 안거사가 어쩌셨다구?”

“예, 저, 안거사께서 송광사 도인스님을 한 번 찾아 뵙고 가르침을 받으라고 하시기에.....”

“가르침을 받으라고 했다니?”

효봉스님이 되물었으나 청년은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잠깐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청년은 자세를 한번 고쳐 앉고 나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사실은.....소생 삭발출가하여 승려가 되고 싶사옵니다.”

“무엇이라구? 중이 되고 싶다.....?”

“예, 스님.”

“에이끼! 이 사람아, 중은 아무나 다 되는줄 아시는가?”

효봉스님은 맨 처음 석두스님이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선 고개부터 가로저었다.

“허지만 스님, 소생은 기어이 중이 되었으면 합니다.”

청년은 수그러진 허리를 더욱 반듯이 펴면서 말했다. 그 목소리 또한 흔들림이 없었다. 서로의 눈이 부딪쳤다.

 

“자네 대체 몇 살이신가?”

“예, 금년에 스물 여섯이옵니다.”

“스물 여섯이라.....?”

“예, 스님.”

“무슨 까닭으로 중이 되겠다고 하시는고?”

“예, 저.....소생은 관세음보살님 은덕으로 목숨을 건졌기에....., 그래서 스님이 되고자 하옵니다.”

“관세음보살 은덕으로 목숨을 건졌다.....?”

“예, 스님.”

 

“대체 무슨 소리던고?”

“저, 사실은.....소생, 폐병에 걸려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목숨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소 긴장하는 듯한 효봉스님에게 청년은 자초지종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소봉호는 오래전부터 폐병을 앓고 있는 환자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진주에 살고 있다는 안각천 거사를 만나게 되었다. 바튼 기침을 자주 하는 모습을 보고 안거사가 그 이유를 물었다. 청년이 솔직하게 자신의 병명을 말하자, 안거사는 병의 치료법을 알려주었다. 지리산(智異山) 영원사(靈源寺)라는 절에 들어가서 천수기도를 백일 동안 드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폐병이 깨끗이 없어진다는 얘기였다. 그 길로 청년은 지리산 영원사에 들어가 관세음보살 명호를 부르면서 그곳 스님이 일러주는대로 백일기도를 올렸다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정말로 폐병이 나았더란 말이신가?”

청년의 사연을 귀담아 듣고 있던 효봉스님이 그 결과를 미리 물었다.

“예, 산 공기가 좋아서 그랬는지, 약수가 좋아서 그랬는지, 기도를 열심히 드려서 그랬는지 그 까닭은 자세히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소생은 폐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요.....”

효봉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되는 청년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래서 진주 안거사님을 다시 찾아 뵙고 그 신통한 효험을 말씀드렸더니만, 기왕에 관세음보살 은덕을 입었으니 송광사 도인스님을 찾아 뵙고 가르침을 받으면 더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난 효봉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타이르듯 말했다.

 

“잘못 오셨네.”

“예에? 잘못 왔다니요?”

청년은 허리를 곧게 세우며 두 눈을 빛내고 있었다. 더욱 긴장한 모습이었다.

“이 늙은 중에게는 그러한 신통력이 없으니 그만 돌아가시게.”

“예에?”

 

효봉스님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입을 닫아버렸다. 관음기도를 통해 폐병을 고쳤다는 소봉호는 그러한 효봉스님의 얼굴만 쳐다볼 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삭발출가의 뜻을 품고 먼 길을 찾아온 청년을 앞에 앉혀놓고 송광사 도인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그 청년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었다.

“스님, 제발 소생을 제자로 삼아 삭발출가시켜 주십시오, 예?”

“안 될 소리!”

“소생의 나이가 너무 많아서 안 된다고 하시옵니까? 예?”

“나이 탓이 아닐세. 나도 서른 여덟 살에 머리를 깎았으니까.....”

처음에 스님이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효봉스님은 청년의 나이를 물었었다. 그러나 나이로 말하자면, 효봉스님이야말로 마흔 문턱에 금강산 보운암 뜰 안에 서지 않았던가. 청년을 물리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소생은 중이 될 수 없다고 하시옵니까. 예? 스님?”

 

“자네는 불교를 잘못 알고 오셨네.”

“잘못.....알고, 찾아왔다구요, 스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청년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효봉스님의 표정과 말투는 오히려 담담해졌다.

“자네는 기도를 통해서 그 신통력으로 폐병을 고쳤다고 믿고 있는 모양인데....불교란, 그렇게 신통력이나 가르치는 그런 것이 아닐세.”

“허지만 소생은 분명히 제 병을 고쳤는데요, 스님?”

 

“자네의 병이 나은 것은 신통력 덕분이 아니라, 일구월심 관세음보살을 염한 마음으로 병을 고친 게야. 그 마음으로.....”

“.....마음으로요?”

“머리를 깎고 중이 되는 것은 바로 이 마음을 깨쳐서 번뇌 망상에서 벗어나자는 것. 자네가 생각한 것처럼 신통력이나 얻자고 머리를 깎으면 백번 천번 깎아도 헛된 일이니, 더 어두워지기 전에 어서 산을 내려가시게.”

“아, 아니옵니다. 제발 소생을 중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스님.”

청년 소봉호는 막무가내였다. 효봉스님은 사뭇 훈계조로 말하고 있었으나, 청년은 자리를 고쳐앉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람마다 모두 중이 될 수는 없는 법. 고향에 돌아가서 짓던 농사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세상을 이익되게 하는 좋은 일이니, 그렇게 알고 그만 내려 가시게.”

청년은 고개를 숙인 채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효봉스님의 말이 끝나자, 청년은 고개를 들어 다시 입을 열었지만 한풀 꺾인 낯빛이었다.

“.....사실은 소생, 농사지을 땅 한 뙈기도 없사옵니다, 스님.”

“농사지을 땅도 없다니, 아니 그럼 그 나이가 되도록 무엇을 하고 지내셨다는 말이던고?”

“말씀드리기 죄송하옵니다만, 사실은 소생.....고향에서 이발사를 했었습니다.”

“.....무엇이라구? 이발사?”

 

청년 소봉호가 살고 있던 남원의 조그마한 고을은 옛 이름이 용성이라는 곳이었다. 그 옛고을 이름을 따서 용성이발관이라는 간판을 걸고 소봉호는 사람들의 머리를 깎아주고 있었다. 바로 그 이발관에서 안거사(安居士)를 만났던 것이다. 그후 안거사가 시키는대로 지리산 영원사에 들어가 백일기도를 드린 끝에 오랫동안 앓아오던 폐병이 나았고, 또한 그의 소개로 효봉스님을 찾아와 삭발출가의 허락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 소봉호의 발심(發心)은 이발관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옳은 일이었다.

 

“이발사를 했다.....?”

청년의 얘기를 듣고난 효봉스님의 심경에 약간의 변화가 있는 것 같았다. 효봉스님은 청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

“자네가 정녕 이발사였단 말이지?”

“예.”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줄곧 냉담하게 말하던 효봉스님은 비로소 눈을 크게 뜨고 청년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한참동안이나 무언가에 단단히 사로잡힌 눈빛이었다.

 

남원에서 왔다는 청년 소봉호의 입에서 이발사라는 말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효봉스님은 먼 옛날 부처님의 제자인 우바리(優婆離)존자(尊者)를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바리 존자는 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가운데 지계제일, 계율을 가장 잘 지킨 제자로 알려져 있는데, 이 우바리 존자가 바로 다름아닌 이발사 출신이었다. 당시의 인도는 철저한 계급사회로, 천민으로 분류된 이발사가 업신여김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이발사인 우바리는 어느 날 부처님 앞에 나아가 “이발사는 천민이라서 부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는 것이옵니까?”하고 물었다. 엎드려 묻고 있는 우바리의 양 어깨에 손을 얹고 부처님은 “사람은 태어남에 의해서 귀하고 천한 것이 아니다. 상류사회의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귀한 사람이 아니요, 천민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천한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어디서 태어났건 모두가 평등한 것. 하는 짓이 천박하면 천한 사람이요, 하는 짓이 고귀하면 귀한 사람. .....비록 그대가 이발사라 할지라도 바른 생각, 바른 행동을 하면 귀한 사람이니 나는 그대의 출가를 기꺼이 허락하여 나의 제자로 삼을 것이니라‘하고 말하면서 우바리를 일으켜 세우고 눈물을 닦아 주었던 것이다.

부처님의 제자가 된 우바리는 훗날 계율을 잘 지키고 수행을 열심히 한 끝에 지계제일의 우바리 존자(尊者)가 되어 부처님의 십대제자 가운데서도 단연 우뚝 섰던 것이다.

 

청년 소봉호의 입에서, 농사지을 땅 한 뙈기도 없는 이발사라는 말을 듣는 순간, 효봉스님은 먼 옛날 우바리 존자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효봉스님은 차차 잃었던 두 눈의 초점을 찾아갔다.

“여보게, 젊은이.....”

“예, 스님.”

“그대가 정녕 틀림없는 이발사였겠다?”

“그렇사옵니다만.....왜 두 번 세 번 자꾸 물으시는지요. 이발사는 중이 못 되옵니까?”

청년의 물음은 또 한번 효봉스님의 마음을 아프게 흔들었고 청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비로소 효봉스님은 손을 뻗어 청년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닐세, 내 그대의 출가를 허락하고 나의 제자로 삼을 것이야.”

“저, 저, .....정말이시옵니까, 스님?”

“내 오늘 당장 그대의 머리를 깎아주겠네.”

“.....감사하옵니다, 스님. 감사하옵니다....”

효봉스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청년의 두 눈은 이미 젖어 있었다.

청년 소봉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리고 공손히 절 삼배를 올렸다. 얼굴을 묻은 땅바닥에는 흘러내린 눈물이 고여 있었다.

 

효봉스님이 문밖을 향해 시자를 부르자, 시봉을 맡고 있는 수좌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오늘부터 이 젊은이도 이 절에 머물 것이니 그렇게 알고 잘 인도해야 할 것이니라.”

“예, 조실스님.”

시봉의 대답이 있자,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청년을 바라보면서 일렀다.

“중 되는 공부를 하려면 절 집안의 법도에 따라야 하는 법. 자네는 이 아이를 따라가서 시키는대로 해야 할 것이야.”

“예, 분부대로 하겠사옵니다.”

대답하는 청년의 눈가에는 아직도 눈물이 남아있었다.

 

“조실스님, .....그러면 삭도하고 가위부터 가져올까요?”

분부를 기다리며 서 있던 시봉이 물었다.

“머리 깎는 건 급할 것 없느니라.”

효봉스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시봉에게 일렀다. 그러자 무릎을 꿇고 앉아있던 청년이 한 발 다가서며 다급하게 말했다.

“아, 아니옵니다, 스님. 머리부터 깎고 싶사옵니다.”

“오늘 당장 머리를 깎겠다고?”

“기왕지사, 스님이 되기로 작정한 몸 한시라도 빨리 머리를 깎고 싶사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후회하려고?”

“아, 아니옵니다, 스님. 후회는 하지 않겠습니다. 절대로.....”

 

어쩌면 여유만만한 효봉스님의 태도에, 한사코 청년은 곧바로 머리를 깎아달라는 것이었다. 잠시 사이를 두고 효봉스님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자네, 정말로 머리를 깎고 중이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는가?”

“무슨.....말씀이신지요, 스님.”

“한 번 머리를 깎고 중이 되면, 고향은 물론 부모형제도 버려야 하는 게야.”

“그건 익히 알고 있사옵니다, 스님.”

“.....게다가 호의호식을 할 수도 없고 부귀영화도 누릴 수 없고, 평생토록 하루에 두 끼만 먹고 나처럼 이렇게 누더기 옷이나 걸치고 살면서 수행을 해야 해, .....그래도 견디겠는가?”

다시 묻는 효봉스님에게 청년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예, 스님. 무슨 일이든 다 견디겠습니다.”

“정 그렇다면 할 수 없구만.....”

효봉스님은 고개를 두어 번 크게 끄덕이고 나서 곧바로 밖에 있는 시자(侍者)를 불렀다.

“삭도와 가위, 그리고 세숫대야에 물을 떠 오너라.”

“예, 스님.”

마침내 남원에서 온 청년 소봉호는 송광사 삼일암에서 삭발을 하고 효봉스님 문하에서 출가 수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 다음해 봄, 음력 4월 초파일에는 효봉스님으로부터 사미계를 받고 법명(法名)을 받았다.

 

근책율의(勤策律儀)라고도 하는 사미계(沙彌戒)는 사미가 출가후 지켜야 하는 열 가지 계율을 말함인데,

그 첫째가 중생을 죽이지 말라는 것이요,

둘째는 물건을 훔치지 말 일이요,

셋째는 음행하지 말 것이요,

넷째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요,

다섯째는 술 마시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섯째가 꽃다발을 쓰거나 향수를 몸에 바르지 말라는 가르침이요,

일곱째는 노래하고 춤추며 풍류를 즐기지 말며 가까이서 구경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여덟째, 높고 넓은 평상에 앉지도 말며

아홉째, 때 아닐 적에 먹지 말 일이요,

열째는 제 빛인 금이나, 물들인 은이나, 다른 보물들을 지니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효봉스님은 사미십계를 설(說)하고 나서 다시 한번 청년의 몸가짐을 훑어보았다.

 

“이제 그대는 열 가지 계율을 평생토록 지키겠다고 다짐을 했으렸다?”

“예, 스님. 기어이 지키겠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 남원 청년 소봉호는 사라졌음이요, 그 대신 빼어날 수, 연꽃 연,수련 사미승이 새로 태어났음이니, 오늘은 부처님의 탄신일이자 곧 수련사미의 생일이니라.....”

 

이렇게 해서 효봉스님으로부터 수련(秀蓮)이라는 법명을 받은 분이 바로 훗날의 저 유명한 소구산(蘇九山)스님이었다. 구산(九山)스님은 이후 효봉스님의 으뜸제자가 되었다. 실제로 대중들은 그를 우바리 수좌라고도 불렀으니, 효봉스님이 예견했던 대로 그는 과연 우바리(優婆離)존자가 된 셈이었다.

 

이 즈음, 일본제국주의의 문화정책은 날이 갈수록 흉폭해지고 그 방법이 교활해져 불교계에도 그 여파가 적지않이 불어닥치고 있었다. 이른바 왜색(倭色)승려들의 기승에 못이겨 전국의 많은 사찰에서 쫓겨나는 수행자들이 날로 늘어가는 추세였다. 이에, 조선불교를 조선불교답게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젊은 수좌들은, 날이 갈수록 일본불교를 닮아가는 조선불교계의 타락상에 울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송광사의 젊은 수좌들 사이에서도 그러한 기운은 감돌고 있었다. 하루는 삼일암에 머물고 있는 효봉스님에게 한 수좌가 찾아와서 분을 삭이지 못하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여쭈었다.

 

“스님, 스님께서 속 시원히 말씀좀 해주십시오. 과연 일본 중들처럼 출가 수행자가 여자를 가까이해도 괜찮은 것이옵니까요? 승려가 과연 술을 마시고, 육식을 해도 괜찮은 것이옵니까요? 예?”

따지듯이 묻는 젊은 수좌의 두 눈은 빛나고 있었다. 분노의 불길을 가득 담고 있는 눈빛이었다. 그럴수록 효봉스님의 태도는 담담했다.

“내 이미 기회있을 때마다 계율, 선정, 지혜, 삼학을 고루 갖추라고 일렀거늘 달리 또 무엇을 얘기하란 말이던고?”

“스님! 스님처럼 그렇게 계, 정, 혜, 삼학만 말씀할 때가 아닙니다요.”

 

“남의 허물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를 부처님이 말씀하신 계율에 비추어 봐야할 것이니.....부처님이 출가하신 이후에 여자를 둔 일이 있었더냐? 없었더냐?”

“.....결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부처님이 출가하신 이후에 술을 드신 일이 있었더냐, 없었더냐?”

“결코 없었습니다, 스님.”

“그렇다면 대답은 자명한 것! 누구를 비방하고, 탓하고, 손가락질 하기 전에 부처님이 하신대로만 따르면 될 것이요, 부처님이 이르신대로만 지키면 될 것이니라.”

“.....하오면, 스님.”

 

“잘 들어라. 부처님이 이르신 바를 제대로 지키는 사람이 많아지면 조선불교는 되살아날 것이요, 어기는 자가 많아지면 조선불교는 사라질 것이니, 이 점을 각별히 명심해야할 것이니라!”

젊은 수좌는 계속해서 질문을 하려고 입을 벙긋거렸으나, 효봉스님의 간명한 대답에 이내 입을 열지 못하고 머리를 조아릴 뿐이었다. 결국 일본의 한반도 문화말살정책은 제국주의의 최후의 발악이었다. 일본이 패망하고 해방이 되자 조선 불교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효봉스님은 송광사 삼일암에서 조국의 해방을 맞았다.

 

하루는 지나가던 객승이 지나가는 말로, 금강산 도인스님이 전라북도 어느 산골, 다 쓰러져가는 암자에 홀로 계시더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는 소리를 효봉은 전해 들었다.

‘금강산 도인스님이라면 혹시 은사스님이신 석두스님이 아니실까.....?”

이렇게 생각한 효봉스님은 부랴부랴 행장을 꾸려 말로만 들은 두메산골 암자로 달려갔다. 과연, 그 쓰러져가는 암자에는 옛날의 스승 금강산 도인 석두 노화상이 홀로 죽을 끓여 잡수며 부처님을 모시고 계셨다. 효봉스님은 그 길로 은사이신 석두 노스님을 송광사로 모셔왔다. 그리고는 지극한 효성으로 노스님을 손수 시중들었다.

 

“조실스님, 조실스님.....”

시봉의 목소리였다. 효봉스님은 방안에 앉은 채 문밖에 대고 물었다.

“무슨 일이던고?”

“예, 저.....해인사에서 오신 스님께서 조실스님께 문안 드리겠다 하옵니다.”

“해인사에서 누가 오셨다구?”

효봉스님이 방문을 열자, 준수하게 생긴 젊은 수좌가 단정히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합장을 하고 나서,

“예, 소승 문안드리옵니다.”

“으음.....해인사에서 오셨다구.....?”

“예.”

“들어오시게.”

해인사에서 온 젊은 수좌는 효봉스님께 절 삼배를 올리고 나서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조실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고 계시온지요?”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고? 무엇을 말인가?”

다짜고짜 질문부터 던진 젊은 수좌는 효봉스님이 놀라며 되묻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그리고는 더욱 정중한 말투로 바뀌었다.

“조선불교를 새롭게 일으켜 세우자면 과연 무슨 일부터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조실스님의 가르침을 받고자 하옵니다.”

“조선불교를 새롭게 일으켜 세우자면 무슨 일부터 해야할 것이냐?”

“예, 스님.”

 

“그거야, 뭐, 산 속에 들어앉은 이 중이 무엇을 알겠는가마는....지금 우리 조선불교는 불보, 법보, 승보 가운데 승보가 빈약해서 그게 걱정일세.”

“승보가 빈약해서 걱정이시라구요?”

“그렇지 않은가. 부처님이 존귀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보배롭지만, 그 부처님을 제대로 모시고 부처님 가르침을 제대로 깨우쳐서 중생을 제도할 승보가 빈약하니 그게 걱정이지.....”

효봉은 들릴 듯 말듯 혀를 차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의 두 눈은 모였던 빛이 빠져나간 듯 힘이 없어 보였다. 마주앉은 수좌의 당돌한 말에 효봉은 다시금 눈을 치켜떴다.

‘과연 조실스님께서는 제대로 보고 계셨습니다.“

“제대로 보다니?”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희들의 걱정도 바로 그 점입니다. 승려의 숫자는 많으나 그동안 일본 승려들 흉내를 내느라고 술냄새와 고기 비린내에 젖어버린 중들이 너무 많으니.....이래가지고서야 어떻게 조선불교를 바로 세울 수 있겠습니까요?”

젊은 수좌의 말에 효봉스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리고는 두 눈을 들어 천정을 바라보며 푸념하듯 말했다.

 

“그러게 말일세.....이제 일본 사람들이 쫓겨는 갔네만, 너무 많은 사람들을 버려놓고 갔어.”

“그래서 저희들이 가야산 해인사에 새로운 인재를 양성할 목적으로 가야총림을 세웠습니다요, 스님.”

고개를 끄덕이며 앉아있던 효봉스님의 두 눈에서는 갑자기 광채가 번득였다.

“가야산 해인사에 가야총림을 세웠다고?”

“예, 스님.”

“그거 참,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네. 정말 잘한 일이야.”

“조실스님께서도 정말 잘한 일이라 여기시옵니까요?”

내내 긴장하고 있던 수좌의 얼굴에도 비로소 희색이 돌았다.

“암, 잘한 일이고 말고. 새로운 인재를 키우지 않고서야 어느 세월에 조선불교의 제모습을 찾을 수 있겠는가?”

 

"감사하옵니다, 스님. 그래서 조실스님을 가야총림 방장으로 모셔가려고 소승이 여기까지 찾아왔습니다요.”

“무엇이라구? 이 늙은이를 방장으로?”

조국의 해방과 함께, 장차 이 나라 불교를 새롭게 중흥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판단한 뜻있는 스님들이 모여서 가야산(伽耶山) 해인사(海印寺)에 가야총림(伽耶叢林)을 개설하고, 그 최고지도자인 가야총림 초대 방장(方丈)으로 효봉스님을 모시기로 결의했던 것이다. 해인사에서 온 젊은 수좌는 이러한 종단의 뜻을 전하고자 급히 발걸음을 옮겨왔던 것이다.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효봉스님은 가야총림의 개설에는 적극 찬성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방장(方丈)의 자리에 앉는데 대해서는 놀라움과 함께 극구 사양하고 나섰다.

“만장일치로 조실스님을 모시기로 했사오니 부디 허락하여 주십시오, 스님.”

“나는 싫으이. 아는 것도 별로 없는 내가 어찌 감히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단 말인가? 다른 스님을 모시도록 하게....”

해인사에서 온 젊은 수좌는 두 번 세 번 상황설명을 반복하면서 확고한 종단의 뜻을 전했으나 효봉스님은 극구 사양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불교를 새롭게 일으켜 세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 교단 전체가 이미 추대를 결정한 일이라 본인이 사양만 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효봉스님의 마음을 넌지시 흔들고 나선 것은 이발사 출신의 제자 우바리였다.

“스님, 정말로 안 가시렵니까?‘

우바리는 다시 한 번 스승의 의중을 떠보고 있었다. 스승의 대답은 생각대로였다.

“나는 이 삼일암을 떠나기 싫어.”

‘그래도 가셔야 합니다. 조선불교를 새롭게 일으켜 세울 인재를 키워내자는 일인데, 스님께서 외면하신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스님?”

제자 우바리의 말에 효봉스님은 한발짝 물러서는 듯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게야?”

우바리는 스승에게 더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힘주어 말했다.

“그렇사옵니다, 스님. 꼭 가셔야 합니다.”

‘그러면 자네도 날 따라가서 도와주겠는가?“

‘그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스님께서 분부만 내리신다면 가야산이 아니라 금강산 백두산까지라도 모시고 가겠습니다, 스님.”

효봉은 굳은 결의에 차 있는 제자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다시 말문을 열었다.

 

“.....난 말야, 그 뭐.....방장입네, 조실입네. 그런 게 번거롭단 말이야.....”

“원 스님도 참, 그게 어디 감투입니까요, 스님? 학인 수좌들 뒷바라지 해주고 길을 열어주는 자립지요.”

우바리의 지혜로운 일면이 엿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때서야 스승은 제자의 지혜 앞에서 잠시 말머리를 더듬었다.

“그, 그런가.....? 그, 그럼 자네도 함께 가는 걸세?”

제자는 어느새 스승의 무릎 앞에 고개를 숙이고 알지못할 흥분에 떨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희열이었다.

효봉스님은 송광사 대중들에게 은사이신 금강산 도인 석두스님을 극진히 모실 것을 몇 번이고 다짐한 뒤에야 해인사로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다.


 


2023.03.21 15:51:33 | 내 블로그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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