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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처럼 암자향한 걸음마다
photo 지리산 능선이 흘러내린 초록의 숲 한복판에 들어선 대찰 화엄사 전경. 경내로 들어서면 높이를 달리하는 공간배치와 법당을 비롯한 20동이 넘는 부속건물의 짜임새가 돋보인다.
명산대찰에 그 산의 암자를 둘러보는 ‘암자 순례길’이 있습니다. 산속 깊이 숨어있는 암자가 수행과 구도의 공간인 것처럼, 그 공간을 건너가는 발걸음마저 수행 혹은 구도 같아지는 길입니다. 순례길이라고 했지만 누가 코스를 짜서 만들어놓은 길은 아닙니다. 정진하는 수도자의 발자국 위에, 기도하는 어머니의 발자국이 여러 번 다져져 만들어진 길입니다. 지리산 노고단 아래 화엄사와 지리산 피아골 아래 연곡사. 두 절집에서 출발해 산내 암자와 토굴을 건너다니는 길을 추천합니다. 마침 부처님 오신 날이 코 앞이니까요. 암자에서 암자로 이어진 산길을 걸으며 초여름 숲 그늘의 청량함을 만끽하거나 청량한 바람 속 작은 암자의 툇마루에 앉아서 풍경소리를 들어보면 어떨까요. 한껏 걸음을 늦추고 내 안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수행을 이유로 걸어 잠근 문 앞에서 돌아서기도 하면서 순례하듯 걸었던 그 길의 이야기입니다.


# 암자를 순례하는 고요하고 순한 길

이름난 절집마다 암자 순례길이 있다. 암자 순례길은 절집이 거느린 깊숙한 산중의 암자를 잇는다. 관광이나 트레킹 공간이라기보다는, 대개 신도들이 소원을 품고 고행처럼 이 길을 걷는다.

소원을 비는 이들은 스스로를 고통으로 밀어 넣는다. 그래야 기도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믿어서다. 그러니 힘들고 거친 길 끝의 암자를 찾아가는 걸음은 그것 그대로 기도가 된다. 깊은 산 속의 외딴 암자를 찾아가는 길이 어렵고 힘들다면, 기도가 더 간절한 이들이 지나갔다는 뜻이다.

여러 곳에 암자 순례길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이름난 것이 ‘지리산 칠암자 순례길’이다. 지리산국립공원에 속한 삼정산(1261m)의 어깨를 오르내리며 걷는 이 길은 까마득한 벼랑에 들어선 암자 다섯 곳과 그윽한 절집 두 곳을 한걸음에 다 들러간다. 길은 도솔암, 영원사, 상무주암, 문수암, 삼불사, 약수암을 거쳐 남원 실상사로 이어진다.

걷는 길이라고 했지만 실은, 길이 멀고 거친 편이어서 산행에 버금간다. 일곱 개의 암자를 다 둘러보자면 산행 거리가 15㎞에 달하니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지리산 종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결심’ 없이는 걸을 수 없는 길이다. 지리산 종주와 함께 지리산 칠암자 순례가 많은 이들의 로망이 되는 이유다. 로망이란 ‘쉽게 달성하는 없는 것’에 달아주는 메달 같은 것이니까.

지리산에는 좀 더 쉬운 암자 순례길도 있다. 노고단 아래 전남 구례의 화엄사를 중심으로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암자를 들르는 ‘화엄사 암자 순례길’이다. 손대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가고자 하면 누구나 갈 수 있는 열린 길이다. 멀지 않은 데다 길이 순한 편이기도 해서 그렇다. 사실 화엄사의 암자는 차로 쉽게 갈 수 있다. 산내 암자 중 가장 멀고 깊고 높은 자리에 있는 연기암까지도 차를 타고 단번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오른다면, 과연 기도가 이뤄질까.

화엄사 암자를 ‘순례처럼 걷기’를 권하는 건 초여름 청량한 숲길의 정취를 온전히 즐길 수 있어서 그렇기도 하고, 걷기의 고행을 경험한다는 면에서도 그렇다. 고행은 소원성취의 가능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사유의 깊이와 폭도 키워준다. 오래 걷는 길 위에서 그걸 배운다.

photo 연기조사의 효심과 불심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화엄사의 사사자삼층석탑.



# 고승의 이름을 만나다…화엄사

화엄사 암자 순례길의 출발지점은 당연히 화엄사다. 지리산 남쪽 자락에 자리 잡은 대찰 중의 대찰. 화엄사야 다시 설명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절집이다.

화엄사를 창건한 건 백제 성왕 때 인도에서 왔다는 연기조사(緣起祖師)다. 연기조사는 지금의 지리산인 두류산 중턱에 거북의 몸에 용의 머리를 하고 날개가 있는 ‘연’이란 짐승을 타고 나타나서 화엄사상을 설파했다고 전한다.

그 뒤로 백제 법왕 때는 스님 3000명이 머물렀으며 신라와 고려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중창됐고, 조선 세종 때는 ‘선종대본산(禪宗大本山)’으로 승격됐다.

화엄사를 처음 찾는 이들이 감탄하는 건 절집의 거대한 규모다. 계단식으로 이뤄진 입체적 공간 배치에다 단정한 부속 건물들이 잘 어우러져서 넓은 공간이 조금도 헐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화엄사에서 절집 크기보다 더 놀라워해야 할 것은 곳곳의 유적이고,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절에 새겨진 수많은 이야기이다. 먼저 유적 얘기. 화엄사에는 각황전을 비롯해 국보가 4개, 보물이 5개, 지방문화재가 2개 있다. 어디 유적뿐인가. 봄이면 각황전 옆에 검붉게 피어나는 홍매화도 화엄사의 명물 중 하나다. 늦은 봄에 저 홀로 피는 올벚나무는 천연기념물이다.

화엄사에는 전설 같은 고승들의 이름이 있다. 사사자삼층석탑은 당나라에서 부처님 사리 73과를 가져온 자장율사가 세웠고 각황전 자리에 있었다는 장륙전은 의상대사가 지었다. 사방벽면을 화엄경을 새긴 돌판으로 장식한 장륙전을 지을 무렵, 화엄사는 대도량의 기틀을 마련했다. 명실상부한 대총림(大叢林)으로 인정받았던 신라말 헌강왕 때 화엄사에는 도선국사가 있었다.

고승의 이름 맨 앞에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가 있다. 인도에서 왔다는 그는 누구였을까. 화엄사의 국보 사사자삼층석탑에 연기조사의 모습이 있다. 이 석탑은 일반적인 석탑과는 전혀 다른 양식의 탑. 삼 층 탑을 네 마리의 사자가 떠받치고 있는데, 사자가 받치고 선 공간 가운데에 사람 상을 넣었다. 연기조사의 어머니란다. 그리고 맞은 편에 석등을 이고서 오른쪽 무릎을 땅바닥에 대고 차 공양을 올리는 스님이 연기조사다.

어머니에게 차를 올리는 연기조사의 모습을 상징과 모사를 뒤범벅해 영화 스틸사진의 한 장면처럼 새긴 셈이다. 삼 층 탑이 그냥 하나의 탑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 그리고 장면과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조선 숙종이 각황전이라는 친필 편액을 하사하게 된 연유를 따라가면 문수보살과 공주로 환생한 거지 노파 얘기가 딸려 나오고, 화엄사 경내 부도전 자운 스님의 부도 앞에서는 자운이 연기조사가 타고 온 짐승 연을 본뜬 배를 만들자는 제안을 이순신 장군에게 했다는 설화가 이어진다. 6·25전쟁 당시 절집을 불태우라는 명령을 어겨 불바다가 될 뻔한 화엄사를 지킨 차일혁 경무관의 얘기는 전설 같은 실화다.

photo 화엄사 구층암의 요사채 기둥. 모과나무 두 그루를 켜지 않고 그대로 세웠다.



# 구층암 모과나무 기둥을 세운 뜻

국보며 보물에 눈이 팔려 그냥 스쳐 가기 쉬운 곳이 화엄사 암자인 ‘구층암’이다. 구층암은 화엄사 대웅전 뒤쪽으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10분이 채 안 걸리는 곳에 있다. 구층암은 작고 소박한 암자다. 화엄사와 가까워 부속건물이라 해도 될 듯하지만, 엄연히 독립된 암자다.

구층암의 백미는 요사채를 받치고 있는 나무 기둥이다. 이리저리 울퉁불퉁 뒤틀려 자란 모과나무 노거수를 뚝 잘라다가 켜지 않고 생전의 모습 그대로 기둥으로 삼았다.

모과나무 기둥 앞에는 이제 막 꽃이 진 오래된 모과나무 두 그루가 살아있다. 죽어서 건물을 받치는 기둥이 된 세 그루 모과나무와 법당 앞에서 하늘을 받치고 선 살아있는 늙은 모과나무 두 그루. 이건 또 무슨 뜻일까.

옛사람들의 건축에는 뜻이 있다. 동쪽에서 자란 나무는 베어다 동쪽 기둥으로 삼고, 남쪽을 향해 따뜻한 볕을 받고 자란 나무는 남쪽을 향해 세웠다. 그런데 둥글게 잘 깎아낸 기둥 사이에다 죽은 모과나무 그대로를 기둥으로 세운 의도는 좀처럼 읽어내기 어렵다.

구층암 천불전 처마 아래에는 나무로 깎은 거북이와 토끼상이 있다. 토끼가 거북이 등 위에 올라있는 모습인데 투박한 솜씨로 깎아놓은 형상이 마치 민화 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다. 천불전을 지은 목공은 왜 또 이 나무 상을 천불전 처마에다 올려놓았을까.

모과나무를 켜지 않고 기둥으로 삼거나 토끼와 거북이의 조각을 법당의 처마에 올리는 파격은, 그곳이 대중과 교유하지 않고 수도자가 칩거하는 암자이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수행자의 공간에는 신도들의 발걸음도 드물었을 테니 세속적인 미의 기준에 매달릴 필요가 없었을 터. 그래서 구층암을 지은 대목은 불법을 닦듯 스스로 마음이 가는 대로, 기둥을 앉혔을 것이고 민담의 한 대목을 깎아서 처마에 올렸으리라.

photo 지리산 노고단 능선 아래 해발 560m 높이에 자리 잡고 있는 암자 연기암. 연기암은 연기조사가 화엄사를 창건하기 전에 토굴을 짓고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화엄사가 거느리는 산내 암자 가운데 가장 높고 먼 자리에 있다.



# 섬진강을 내려다보는 자리

화엄사에서 출발해 ‘올라가면서’ 암자를 찾아간다면 지장암과 금정암을 거쳐 내원암, 미타암, 보적암, 청계암, 연기암의 순서다. 하지만 길 끝의 마지막 암자 연기암부터 얘기하기로 한다. 산길을 짚어 연기암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오는 것보다는, 계곡을 따라 이어진 치유 탐방로를 따라 연기암까지 바로 가서 ‘내려오면서’ 청계암, 보적암, 미타암, 내원암, 금정암, 지장암의 순서대로 암자를 들르는 것을 추천한다.

화엄사에서 연기암까지 암자로 가는 모든 길이 다 시멘트 포장도로다. 포장도로라고 해도 호젓한 숲 속에 겨우 차 한 대 다닐 정도의 넓이라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 암자 가는 길의 녹음으로 가득한 숲은 지금 피톤치드와 음이온으로 가득하다.

연기암은 화엄사 산내 암자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연기암은 본래 화엄사가 시작한 자리였다. 백제 성왕 때 연기조사가 화엄사를 창건하기 전에 처음 연기암 자리에다 토굴을 짓고 절집을 세워 화엄법문을 내려줬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때 다 불타서 칡덩굴과 가시덤불에 파묻혀 있던 것을 400여 년 뒤인 1989년에 대적광전, 문수전, 관음전, 적멸당, 원응당, 일맥당, 심우당을 세우고 중창했다.

연기암은 해발 560m에 자리 잡고 있다. 산 아래를 바라보는 자리에 라마교(티베트 불교)의 상징인 마니차(윤장대)가 있는데, 마니차 앞이 섬진강을 내려다보는 명당자리다.

화엄사 주차장에 세운 안내판에 연기암을 소개하면서 ‘바람과 구름도 연기암에 머물러서 섬진강을 내려다보지 않고서는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적어두었다. 문수보살도 그 풍경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 걸까. 연기암에는 2008년에 세웠다는 13m 높이의 문수관음보살상이 섬진강 쪽을 굽어보고 있다.

연기암 입구에 뜻밖에 아담한 카페가 있다. ‘흰 구름 가는 길’이다. 커피와 함께 대추차와 배도라지차를 판다. 깊은 산중 온통 숲 속의 초록 한가운데 딱 하나 있는 카페다. 멀고 비밀스러운 공간의 고요한 카페라니….

# 화려한 단청과 쓰러져가는 요사채

이즈음 화엄사와 산내 암자에서는 보수 공사가 한창이라 좀 어수선한 편이다. 인법당을 보수 중이라는 청계암은 아예 새로 지으려는 것인지, 암자 건물이 모두 다 사라졌다. 기왕에도 컨테이너에 딸린 작은 법당 건물이 전부였는데, 그것마저 깨끗이 다 비워냈다.

고즈넉하기로 으뜸이었던 보적암도 진입로 공사와 함께 대웅전과 요사채 단청작업으로 어수선하지만 눈길을 붙잡는 것들이 있다. 석탑을 대신하는 듯한 앞마당의 커다란 돌배나무도 인상적이고, 공사 중인 건물 주위로 도열한 훤칠한 소나무도 근사하다.

미타암은 화엄사의 암자 중에서 가장 잘 꾸민 암자다. 법당 앞에 연등도 화려하게 걸었다. 경내에는 연못도 있고 연못 옆으로 불상도 있다. 법당 옆의 장독대와 돌계단에서 세월이 느껴져서 그럴까. 아늑하고 푸근한 느낌이다. 미타암 산신각에는 산신이 모셔져 있는데, 호랑이를 타고 앉은 마고할매다. 마고할매 앞에는 방금 기도하고 간 이가 남긴 자취가 따뜻했다.

미타암 아래에는 금정암이 있다. 금정암은 화엄사를 대표하는 산내 암자다. 화엄사 옆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있다. 조선 명종 때 설응 선사가 창건하고 고종 때 칠성각을 세웠는데, 1991년 화재로 다 불탄 것을 2년 뒤에 중건했다. 과거에는 스님들이 공부하는 선원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절집을 찾은 손님의 처소 등으로 쓰인다.

photo 화엄사 금정암의 주 불전인 반야보전의 문. 문에 새긴 나무와 꽃문양이 화려하다.



금정암의 첫인상은 화려하다. 진하고 선명한 원색의 단청 때문이다. 특히 3층 법당인 극락보전 단청은 화려함의 극치다. 주 불전인 반야보전은 화려한 꽃 문살이 눈길을 확 붙잡는다. 갖가지 색의 나무와 꽃, 그리고 문양을 문살에 새겨놓았는데, 색감이나 형상이 어찌나 화려한지 혀가 내둘러질 정도다. 법당 앞에서 바라보면 이어진 문짝과 문짝이 나무로 짠 거대한 꽃 병풍을 펴놓은 듯하다.

금정암의 눈부신 단청은, 다음에 만나는 암자인 지장암의 다 쓰러져 가는 요사채 건물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금정암의 화려한 법당 앞에서는 형상에 눈에 팔렸다면, 다 쓰러져 가는 지장암의 요사채 앞에서는 건너온 시간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화려한 것이든 초라한 것이든, 무엇을 볼 것인가는 그걸 보는 이들의 마음의 눈에 달려 있는 법. 초라한 곳과 비워진 곳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되는 건, 그 길이 종교와 정신을 순례하는 길이기 때문이리라.

이쯤에서 연기암의 연혁 중 한 대목을 읽는다. “맑은 물줄기가 여울에 부딪치니 화엄법계의 설법이요. 푸른 숲에 사각거리는 대나무 잎새의 청정한 우리 법신의 의상이다. 지리산의 이 모습 그대로가 비로자나불의 대적광이요 정음이로다.” 물소리가 설법이고 댓잎의 색이 불법의 장엄이란 얘기다.

# 연곡사에서 만난 균형과 미감의 정수

이번에는 지리산 피아골의 절집 구례 연곡사 얘기. 연곡사의 사천왕문에는 인상적인 사천왕상이 있다. 부리부리한 눈매로 수미산의 서방을 지킨다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이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누각이 나오는데, 누각에 걸린 현판이 ‘삼홍루(三紅樓)’다.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 지리산을 열두 번이나 올랐다는 남명 조식이 남긴 시에서 따온 이름이다. 가을 단풍의 절정에 피아골을 찾은 남명은 시 한 수를 남겼다.

“흰 구름 맑은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가을의 붉은 단풍 봄꽃보다 고와라/천공(天公)이 나를 향해 뫼(山) 빛을 꾸미시니/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삼홍(三紅)’이란 이름이 유래한다. 온 산이 붉게 물들어 산홍(山紅)이고, 단풍이 맑은 담소에 비쳐 수홍(水紅)이며, 그 계곡에 든 사람까지 붉게 물들어 보여서 인홍(人紅)이다. 단풍의 계절은 아니지만 이즈음에도 연곡사 주변은 붉은 단풍이 그득하다. 절집 주위에 심은 홍단풍 덕분이다. 초여름에도 선명한 붉은 단풍색이 계절을 잊게 한다.

연곡사는 화엄사에다 대면 자그마한 절집이지만, 이 작은 절집에 국보가 두 개, 보물이 네 개다. 그중 압권이 바로 대적광전 뒤쪽에 있는 국보 제53호 ‘동승탑’이다. 국보의 가치가 ‘의미’와 ‘미감’ 이 둘로 가려진다면 동승탑의 가치는 단연코 미감이다.

승탑의 비례와 균형, 그리고 섬세한 조각이 드러내는 미감 앞에서는 누구나 탄성을 토할 수밖에 없다. 승탑에는 구름 속의 용과 포효하는 사자, 가릉빈가와 사천왕상, 팔부신중이 조각돼있다. 단단한 돌을 비누 조각처럼 다뤄낸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연곡사 대적광전 뒤쪽에는 국보와 보물을 둘러보는 ‘연곡사 국보순례길’이 있다. 순례라고 하지만 600m 남짓의 짧은 산책로다. 순례길은 동승탑에서부터 시작해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데, 거꾸로 도는 게 더 낫다. 동승탑은 맨 나중에 봐야 하기 때문이다. 동승탑을 먼저 보게 된다면 다른 것들은 다 시시해 보일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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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바닥으로 쓴 글씨

화엄사로 들어가는 도로에 웅장한 화엄사 일주문이 있다. 일주문의 앞쪽 편액의 글씨는 ‘지리산 대화엄사(智異山 大華嚴寺)’이고, 뒤쪽 편액의 글씨는 ‘해동선종대가람(海東禪宗大伽藍)’이다. 이 글씨는 전북 고창 출신 석전 황욱의 솜씨다. 그는 말년에 수전증으로 붓을 잡기 어렵게 되자 왼손바닥으로 붓을 잡고 엄지로 붓 꼭지를 눌러 쓰는 악필법(握筆法)으로 썼다. 세밀함이 떨어지긴 해도 ‘무기교와 탈속의 필법’이란 평가를 받는다. 국내 최대 크기의 화엄사 일주문 편액은 1988년, 그의 나이 91세 때 쓴 글씨다.

   * 자료제공 : 문화일보 *

2023.09.21 18: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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