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송 지난 29일 경기 안성시 칠장사에서 원적에 든 자승 대종사가 생전 남겼다는 열반송. 조계종 제공
자승 대종사 입적 소식에 조계종 “참담한 마음” 총무원장 진우스님 장의위원장으로 5일간 종단장 “생사가 없다 하나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구나.”
대한불교조계종 33·34대 총무원장을 지낸 해봉당 자승 대종사가 갑작스럽게 입적한 이튿날인 30일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인 우봉스님은 “대종사께서 살아 생전 남기셨다”면서 자승스님의 열반송을 낭독했다.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자승스님의 장례절차와 관련한 언론브리핑에 나선 우봉스님은 “종도들과 국민들과 함께 참담한 마음을 금치 못한다”고 말하는 도중 한참 동안 고개를 떨구고 말을 잇지 못하며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뜻밖의 비보가 전해진 이날 조계종 총무원의 분위기는 대종사의 입적 소식을 전한 우봉스님의 표정과 다르지 않았다. 조계종 관계자들은 침통한 얼굴로 걸려오는 전화를 응대했고, 스님들도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문 채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한 불교계 인사는 “워낙 뜻밖의 사고라 뭐라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조계종은 이날 자승스님의 입적에 대해 스스로 몸을 불살라 공양을 바치는 ‘소신공양’(燒身供養)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CCTV와 유서 형식의 메모 외에 자승스님이 왜 숨을 거둔 칠장사를 찾았고, 화재 발생 당시 왜 홀로 요사채(스님들이 거처하는 숙소)에 머무르고 있었는지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지만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분신이란 것이다. 최근까지도 공식 석상에서 “향후 10년 간 대학생 전법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지속하던 중 돌연 입적한 것을 두고 수사당국은 물론 불교계 내에서도 타살 가능성 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무분별한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봉스님은 “종단 안정과 전법도생을 발원하면서 소신공양 자화장을 하심으로써 모든 종도들에게 경각심을 남기셨다”고 했다.
영정사진 자승 스님. 조계종 제공
조계종은 이날 이른 오전부터 총무원장인 진우스님을 중심으로 해인사와 화엄사 등 교구 본사 관계자들이 모여 긴급회의를 갖고 자승스님의 장례를 종단장(宗團葬)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장의위원장을 맡아 직접 5일 간 진행되는 장례를 주관한다. 영결식은 12월3일 오전 조계사에서 봉행하고, 이후 자승스님이 출가한 제적본사인 용주사에서 다비식을 거행키로 했다. 우봉스님은 “분향소는 총본산인 조계사와 제2교구본사인 용주사, 전국 교구본사, 봉은사, 보문사 등에 설치된다”면서 “조문과 분향은 오늘 오후부터 5일 간 가능하다”고 말했다. 진우스님과 장의위원 스님들이 이날 오후 가장 먼저 조문을 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최응천 문화재청장,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등도 이날 차례로 조문을 할 예정이다.
1972년 해인사에서 지관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4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은 자승 스님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행정승으로 손꼽힌다. 분열된 불교계를 묶을 만한 인물이란 평가를 받으며 2009년 역대 최다 득표로 총무원장에 당선됐고, 2013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1962년 조계종이 통합종단으로 출범한 이후 총무원장을 연임한 사례는 있지만, 4년 임기 두 번을 별 탈 없이 채운 것은 자승스님이 유일하다. 갈라진 종단 파벌을 하나로 통합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일각에선 오랫동안 실세로 군림하며 종단의 권력을 지나치게 흡수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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