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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인도 자이푸르 위파사나 센터 '10일 명상'의 기록
[한겨레] 인도 자이푸르 위파사나 센터 ‘10일 명상’의 기록… 당신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 적 있는가


인도 위파사나
센터에서의 10일 명상 체험. 타인과의 말을 끊고 자신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는
일은 갑자기 숨쉬기가 어려울 만큼 쉽지 않았다. 전문위원의 아픈 마음을
‘수술’하는 열흘간의 생생한 체험.한동안 범람했던
명상 관련 서적이나 인도 여행담을 다룬 서적들의 영향 탓이리라. 흔히 인도
사람들은 세속에는 초연하고 정신적인 삶만을 추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도
여행담에서 장사꾼들의 흔한 말장난마저 철학적 대화로 포장되기 일쑤니 그런
생각이 무리도 아니다. 그런 책들에서 묘사되는 인도가 가끔 낯간지럽기도 하지만
명상이나 요가 같은 것들이 생활에 자연스레 녹아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인도의 가장 오래된 명상법 중의 하나는 ‘위파사나 명상’이다. 2500년 전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명상법으로 전해진다.

고엔카의 두통, 위파사나를 전파하다

위파사나는 파알리어로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이다. 위파사나 명상은
자신을 관찰하는 과정이다. 명상하는 이는 명료한 의식으로 몸과 마음의 변화하는
성질을 계속해서 지켜봐야 한다.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면서 함께 자취를 감춘
위파사나 명상은 인도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인 미얀마(버마)에서 유지돼 왔다.
버마의 수행 전통은 크게 두 대목으로 나눠진다. 레디 사야도 계통과 마하시
사야도 계통이 그것이다. 현재 인도 전역의 위파사나 명상센터는 레디 사야도
계통을 이은 S.N.고엔카가 지도하고 있다. 고엔카(1921~)는 인도인이지만
미얀마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사업가 가정 출신으로 사업에만 몰두하던 그는 어느
날부터 극심한 편두통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적절한 치료법을 찾지 못해 그는
모르핀 주사를 맞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마약중독의 두려움으로 버마를 떠나 세계
각국을 돌아다녀도 진전이 없던 그에게 친구가 권한 것이 바로 위파사나
명상이었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한 그는 당시 미얀마에서 명상을
지도하고 있던 우 바 킨을 찾아간다. 위파사나 명상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하지만 우 바 킨은 고엔카가 신병 치료를 목적으로 명상을 원한다고 하자 그의
명상코스 참가를 거절했다. 위파사나 명상은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지, 질병 치료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다. 고엔카는 아무 사심 없이 위파사나 명상에
참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보수적인 힌두교 가정 출신으로 불교 수행을 하기가
망설여져 코스 참가는 몇달 뒤에나 이뤄졌다.
고엔카는 돌이켜 생각하면 자신이 두통으로 고생하고 어떤 의사도 이를 치료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큰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덕분에 위파사나 명상에 입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위파사나 명상으로 놀라운 결과를 얻은 그는 14년간 스승의
지도를 받으며 버마에서 수행했다. 45살이 되던 1969년 처음으로 인도 뭄바이(옛
봄베이)에 와서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과 친지들에게 처음 위파사나 코스를 열었다.
그 뒤 쇄도하는 요청으로 인도 전역을 옮겨다니며 명상을 지도했다. 불교
수행이지만 어떤 종교나 종파를 강조하지 않는 위파사나 명상은 빠른 속도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1976년에는 뭄바이에서 140km 떨어진 이가뜨푸리에 담마기리
명상센터와 위파사나 국제아카데미가 세워졌다. 오늘날에는 외국으로 확산되어
인도의 45개를 비록해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일본·동남아 등에 35개
위파사나 명상센터가 설립되어 있다.

10일 동안 말하지 않기

위파사나 명상센터에서는 10일·20일·30일·45일·60일 코스와 8일간의 대념처경
코스가 실시된다. 명상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10일코스에 등록해야 한다.
10일코스를 세번 거친 뒤에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고, 그 다음 단계도 일정
수준의 명상 경력이 필요하다. 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3일코스도 있다. 필자는
초보자로서 10일코스에 등록을 하고 라자스탄주의 수도 자이푸르에 있는 위파사나
센터를 찾아갔다. 라자스탄주는 사막지역 탓인지 소가 아닌 낙타로 논을 가는
모습이 무척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도시 한복판에서도 키 큰 낙타들이 점잖은
모습으로 수레를 끌고 있다.
자이푸르 위파사나 센터는 도시에서 적당히 떨어진 아름다운 숲 속에 자리잡고
있다. 원숭이와 공작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방문자들의 눈길을 끈다.
아담한 사무실에 들어가니 이미 많은 인도인들과 서양인들이 등록을 하고 있었다.
센터 관계자는 등록을 받기 전 앞으로 10일 동안 지켜야 할 규칙과 시간표가
쓰여진 안내서를 건네줬다. 참가자들은 코스가 진행되는 10일 동안 살생, 도둑질,
성행위, 거짓말, 술이나 마약, 담배 등을 하지 않는 이른바 ‘5계’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쓰기, 읽기, 음악감상도 금지된다. 전화나 팩스, 편지도 보낼 수
없다. 물론 선생의 허락 없이는 사진을 찍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10일 동안
철저히 묵언을 지켜야 한다. 코스 참가자들은 어디든지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몸짓으로 의사를 전달하거나 필담을 나눠서도 안 된다. 하지만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선생이나 보조원들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이 모든 금지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막상 현장에서 이를 실천하려니 새삼 긴장이 되었다.
무엇보다 늦잠에 익숙한 필자에게 새벽 4시에 일어나라는 요구는 가장 큰
부담이었다.
첫날 아침 자명종이 울리기도 전에 번쩍 눈이 떠졌다. 적잖이 긴장을 한 모양이다.
한참 뒤에야 어릴 적 듣던 학교 종소리와 비슷한 기상 종소리가 울렸다. 그 뒤
명상 시간 10분 전에 다시 종이 울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어디서 왔느냐, 이름이
무어냐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은 모두 침묵한 채 명상홀로 들어갔다.
명상홀에는 어떤 종교적 상징물도 놓여 있지 않았고, 참가자들이 앉을 방석만
빼곡히 놓여 있었다. 선생이 앉는 자리가 약간 높은 방석이라는 점이 눈에 띌
뿐이었다. 이번 코스에는 남녀 합해 약 100여명이 참가했다. 명상 지도는 고엔카의
지시와 안내가 녹음된 테이프를 통해 이뤄진다. 코스에 직접 참석하는 선생들은
일종의 보조교사로서, 가끔씩 참가자들을 면담해 진행 상태를 점검한다.
고엔카는 위파사나 명상을 ‘본인이 직접 집도하는 마음의 수술’이라 표현한다.
처음 명상에 참가한 사람들은 힘든 나머지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들겠지만 수술을
받는 도중 도망갈 수 없는 것처럼 명상 역시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특히 육체적
통증 때문이 아니라 마음의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마음의 수술이란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지금껏 수술은커녕 내 마음을 제대로
진단한 적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차라리 이번이 깊고 큰 수술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도 생겨난다.

6일째에는 숨쉬기가 힘들었다

처음 3일간은 호흡을 관찰하는 아나파나 명상을 한다. 숨을 쉴 때 콧구멍 내부와
입구에 주의를 집중해서 호흡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나
책상다리로 앉아 있는 것이 불편하고 끊임없이 달아나는 마음을 다잡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게다가 옆자리의 인도 아주머니가 계속 들락날락하고 트림을
해대는 것이 너무 신경이 쓰였다. 필자의 산만함을 괜히 아주머니 탓으로 돌리며
원망했으나 그 아주머니는 결국 4일째 되는 날 사라졌다. 한 서양 청년도 중간에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코스 중에 그만두는 사람이 몇몇은 꼭 생긴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자세로 앉아 있는 데 익숙하지 않을 서양 여성들이 의외로
꼿꼿한 모습을 보여주어 많은 자극이 되었다.
3일간의 아나파나 명상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위파사나 명상에 돌입한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피부에 느껴지는 모든 감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코스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다리 통증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의식이 얼마나
명료하게 깨어 있는지에 신경이 쓰일 뿐이다. 7일째부터는 개인명상실이라고 할 수
있는 셀에서 명상 시간을 갖는다. 감옥의 독방이 이렇게 생겼을까 할 정도로 좁은
공간에는 덩그러니 방석만 놓여져 있었다. 셀에서의 시간은 진실로 혼자서 나만을
바라보는 때다. 긴장도 됐지만 한편으로 나태해지기도 해서, 나는 주로 단체로
수행하는 명상홀을 이용했다. 의지가 나약한 사람에게 아무래도 자율은
부담스럽다.
90분이 소요되는 저녁 법문은 영어와 힌디어로 진행된다. 영어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들을 위해 한국어를 포함한 각국 언어로 번역된 테이프도 있다. 영어법문
시간에는 외국인들과 비힌디권 인도인들이 참석했다. 고엔카의 설법은 초보자의
수준에 맞춰서인지 쉽고 재미있었다. 여러 가지 예를 들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어 자주 웃음이 터지곤 했다. 놀라운 것은 낮에 명상하는 동안 생긴 궁금한
점을 명상이 끝나면 보조 선생에게 한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면 그날 저녁
법문에 그 의문사항이 여지없이 언급되었다. 오랜 지도 경험으로 사람들의
마음이나 수준을 꿰뚫고 있는 것이다. 거의 독심술 같아 섬뜩할 지경이었다.
2일째와 6일째가 특히 힘든 것으로 알려졌으나, 필자는 6일째 이상하게 숨쉬기가
힘들어 한동안 바깥을 서성거려야 했다. 꾀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중에 다른 참가자들의 말을 들어봐도 6일째가 고비라고 했다. 7일째부터는
사람들의 자세도 좋아졌고 표정도 달라졌다. 9일째는 선생의 허락을 받고 명상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명상하는 동안에는 작은 소리에도 민감해지는 터라 다른
참가자들에게 방해될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그런데도 선생은 명상하는 동안 꺼둔
형광등까지 켜주며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여자 선생은 너무도 맑은 눈과 피부를
갖고 있어 오랜 명상의 경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듯했다.

유럽인부터 무슬림까지

10일째 마지막 날, 그동안의 명상으로 쌓은 행복을 모든 존재에게 돌리는 자비관
명상을 하고 나면 오전 10시가 된다. 이후로는 묵언이 풀리고 명상홀 바깥에서는
말을 할 수 있다. 묵언을 풀고 싶지 않은 마음에 방까지 홀로 걸어왔다가 숨을
고르고 바깥으로 나가 보았다. 바깥은 눈물나게 아름답고 행복한 한편의 축제다.
그동안의 자신의 경험에 대한 소감들, 나누지 못했던 인사들 그리고 말없는
포옹들이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연령부터 국적까지 무척이나 다양했다. 네명의 이스라엘 여행자들,
영국 여의사, 독일 의사, 폴란드 여학생, 심지어 이란에서 온 3명의 무슬림
여성들도 끼여 있었다. 이란의 한 아주머니는 이번이 벌써 10번째란다. 경찰관으로
재직하다가 정년퇴직한 뒤 명상을 시작했다는 한 인도 할아버지의 말에 노년이
쓸쓸한 한국의 노인들이 떠올랐다. 한 인도 여성은 20년 동안 위파사나 명상을
해온 아버지 영향으로 수련코스에 참석하게 됐다고 말했다. 모녀 혹은 부부가 함께
코스에 참가한 경우도 많았다. 보팔에서 온 의사 모녀 가운데 딸은 그린피스에서
활동하면서 보팔가스사고 희생자들을 위해 일하는 중이었다. 한 시크교도 남성은
마지막 날 근사한 군복을 입고 찾아온 군인들로부터 꽃다발을 받는 것으로 보아
고위직 군인인 듯했다.
위파사나 명상센터들은 철저히 기부금 제도로 운영된다. 명상을 지도하는 선생이나
사무실 직원들, 여러 가지로 명상을 도우며 코스를 함께하는 보조원들도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다. 마지막 날에는 명상수련 참가자들 거의 모두가 성의껏 기부금을
낸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법문과 명상을 끝으로 모든 일정이 끝나게 된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위파사나 명상에 관심이 있었으나 감히 직접 뛰어들 생각은 하지
못했다. 명상 자체를 의심해서가 아니라 명상이라는 지극히 정신적인 일을 해내지
못할 세속적인 자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렇듯 ‘내 주제에 무슨
명상은…’이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한번 참가해보길 권하고 싶다. 사실
명상은 그런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출처:위빠사나수... | 2010.03.21 17:23:20 | 내 블로그 담기
대현심   _(())_
2010.03.21 17:3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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