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일체유부에 의하면 모든 유위법(有爲法)에는
공통된 두 가지 성질이 있다. 하나는 찰나(刹那)에
멸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존재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에 실유(實有)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성질은 모순된 것으로 여겨지며 이로 인해
다른 부파로부터 격렬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유위법은 모두가 현재의 한 순간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현재에 존재하는 것은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즉 시간적 지속성을 지니지 않는다. 그러나 법이 생기자마자
다음 순간에 없어진다고 해도 엄밀하게 말하면
그 사이에 생기하고, 생기된 상태를 유지하고,
그 상태가 변이하고, 소멸한다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의
네 가지 단계가 있다. 이러한 네 가지 단계를
모든 유위법(有爲法)은 한 순간에 겪는 것이다.
그러나 법(法)이 생기한다고 해도 무(無)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며, 소멸한다고 해도
무(無)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생기(生起)라는 것은 법(法)이 미래로부터
현재로 현현하는 것이며, 소멸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현재로부터 과거로 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에 나타난 이전의 법은 미래의 영역에 존재한다.
현재에서 과거로 사라진 이후의 법은 과거의 영역에 존재한다.
미래의 영역으로부터 나타나 과거의 영역으로
사라지는 동안의 한 순간의 법은 현재에 존재한다.
미래에도 존재하고 현재에도 존재하고 과거에도 존재한다.
법(法)은 삼세(三世) 어디서나 그 자체로서 변함없는
특성을 갖고 존재하고 있다.
즉 법은 삼세(三世)에 실유(實有)한다.
이처럼 유위법(有爲法)은 삼세(三世)에 걸쳐
실유(實有)하지만 그것이 생기하여 현재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한 순간에 불과하다. 그러한 현재의
한 순간 한 순간이 쌓여 경험 세계에서
시간의 흐름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각각의 순간에
생기하는 법(法)은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이것들은 전후 순간을 서로 달리함으로써
경험 세계는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즉 제행무상(諸行無常)한 것이다.
[부처님의 열반지 쿠시나가라]
열반 涅槃 (nirvana)
불교에서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 열반이란, 산스크리트의
‘니르바나’의 음역인데, 니원(泥洹)·열반나(涅槃那) 등으로 음역하기도 하며
멸도(滅度)·적멸(寂滅)·원적(圓寂), 또는 무위(無爲),부작(不作),무생(無生)
등으로도 의역한다. nir(out)+vana(blow)의 어원으로 해석되는
열반의 본뜻은 '불어서 끄는 것' '불어서 꺼진 상태'를 뜻하며,
마치 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고뇌가
소멸된 상태를 가리킨다.
그때 비로소 적정(寂靜)한 최상의 안락(安樂)이 실현된다.
현대적인 의미로는 영원한 평안, 완전한 평화라고 할 수 있다.
남방의 팔리 불교에서는 조림(稠林)이 없는 것으로,
이 경우에도 번뇌의 숲이 없어진 상태를 열반이라고 한다.
부파불교(部派佛敎)에 이르러서는 석가불의 이상화,신격화에 따라
열반에 대한 생각도 변하여, 수행자가 아무리 노력을 하여도
이 세상에 생존하는 동안에는 완전한 열반을 체득하기란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 세상에 생존하는 동안에
얻어진 열반은 불완전한 것(有餘涅槃)이며, 사후에 비로소
완전한 상태에 들어간다(無餘涅槃)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석가불과는 달리 열반의 경지가 아니라
아라한(阿羅漢:궁극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대승불교에서는 유여,무여열반 외에 본래자성 청정열반 (本來自性淸淨涅槃) ,
무주처열반 (無住處涅槃)을 주장하였다.
전자는 일체중생의 심성(心性)이 본래 청정하다는 것으로,
진여(眞如:있는 그대로의 진리) 그 자체임을 달관하여
안심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말하며, 후자는 대승불교에서
이상으로 여기는 열반으로서 생사에도 머물지 않고
열반에도 머물지 않는 것,
즉 열반 비지원만 (悲智圓滿: 자비와 지혜가 원만함),
임운무작(任運無作:아무런 조작 없이 있는 그대로 운용됨)의
불,보살의 상태를 말한다. 결국 열반이 어떤 특별한 경지로서
실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범부(凡夫)의 미혹이며,
열반은 유(有)도 무(無)도 아닌 공(空)으로서
윤회나 열반이나 어떤 구분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의 보살의 활동이 강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