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佛家)에서는
‘마지막 한마디’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선사들이
입적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내놓는
깨침의 한마디
말입니다.
그걸
열반송(涅槃頌)이라고
부릅니다.
옆으로 누워서 눈을 감고 있는 붓다의 열반상. 석가모니 부처님의 유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백성호 기자
수행의 정점에서
깨달음을 얻었을 때
부르는 노래인
오도송(悟道頌)과
입적하기 직전에
내놓은 마지막 게송인
열반송,
이 두 노래를
불교에서는
매우 중시합니다.
그럼
부처님은
어땠을까요.
2600년 전,
인도에서
입적한 부처님의
마지막 한마디는
어땠을까요.
부처님의
마지막 한마디는
이랬습니다.
“모든 형상은 무너진다.”
“부지런히 정진하라.”
이 말을 끝으로
부처님은 숨을
거두었습니다.
붓다의 열반지인 인도 쿠시나가르에 있는 다비탑. 불교의 4대 성지 중 하나다. 백성호 기자
카필라 왕국이 있었던
인도 북부의 고향으로
향하던 도중에
쿠시나가르라는 곳에서
80세의 일기로
입적했습니다.
대장장이 집 아들 쭌다가
공양한 돼지고기(혹은 버섯요리)를 먹은 뒤
식중독에 걸려서
엄청 고생하다가
결국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쭌다가 겪게 될
자책감과 죄책감을
미리 내다보고,
그걸 다
어루만지고 씻어준 뒤에
부처님은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육신이
무너지는 순간에
던진 한마디가
그랬습니다.
“그대들에게
간곡하게 말한다.
모든 형성된 것들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이게
붓다의 유언이었습니다.
동아시아 선불교의
눈으로 보면
저는 이게
부처님의 열반송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육신이
무너지는 순간에
제자들에게
간곡하게 던진 한마디,
그건
생겨난 모든 것은
무너지게 마련이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부처님은
마지막 순간에
왜 하필
그 말을,
그토록 간곡하게
제자들에게
건넸을까요.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소나기가 내리고,
가을에는
단풍이 들고,
겨울에는
눈이 내립니다.
우리가
꽃과 소나기만 붙잡고
거기에
집착하다 보면
바탕을 보지 못합니다.
사계절 내내
웃고 울고 하다가
인생이 흘러가 버립니다.
인도 중부에 있는 석굴의 불상. 아침 해가 들어오자 경주 석굴암 본존불처럼 불상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백성호 기자
그래서 부처님은
꽃 너머에,
소나기 너머에,
단풍과 겨울 눈발
너머에 있는
바탕을 찾으라고 합니다.
어떤 바탕이냐고요?
꽃이 생겨난
바탕입니다.
다시 말해
꽃의 뿌리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꽃의 뿌리입니다.
소나기와
단풍과
첫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모두의 바탕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그 바탕을 깨달으라고
말합니다.
왜냐고요?
그래야
우리의 삶이
고요해지기 때문입니다.
꽃이 질 때
아프지 않고,
소나기가 멈출 때
서운하지 않고,
단풍이 떨어질 때
허무하지 않게 되니까요.
다시 말해
삶이 여여(如如)해집니다.
본질적으로
평화로워집니다.
그렇게 삶이
여여해지려면
바탕을 깨쳐야 합니다.
그런데
바탕을 깨치려면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모든 형상은 무너진다”는
붓다의 유언을
깨쳐야 합니다.
모든 형상이 무너지는
이치를 깨달을 때
비로소 바탕이 드러납니다.
붓다는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에도 제자들을 향해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일러주었다. 백성호 기자
아무리 생각해도
참 놀랍습니다.
그리고
대단합니다.
식중독에 걸려서
수시로
구토하고 설사하고
몸에는
염증이 퍼져서
고통스러워하며,
육신의 생명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부처님은
사람들에게
뗏목을 건넸습니다.
제자들이
폭풍의 언덕에서
고요의 언덕으로
건너올 수 있도록
인생의 강,
고해의 강을
건널 수 있는
뗏목을 건넸습니다.
그 뗏목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모든 형상은 무너진다.
부지런히 정진하라!”
* 자료제공 : 중앙일보 *